'스포츠 샛별부터 만학도까지' 수성고 부설 방송통신高 인기
개교 1975년, 50주년 눈앞…졸업생 5000명 이상 배출
만학도에 교육의 기회 제공…스포츠 선수들 입학 증가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수성고등학교 전경. 2023.11.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눈에 잘 안 들어올 때도 있지만 교우들과 학창시절의 추억을 쌓으면서 즐겁게 다니고 있습니다."
경기 오산시에 사는 장경자(74) 씨는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바로 대학 입학이다. 그는 6년 전, 평생 한(恨)으로 남아있던 학업의 끈을 이어나갈 결심을 했다.
부산 태생인 장 씨는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사는 서울로 상경해 초등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시험에 합격하고도 아쉽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성인이 되고 결혼과 함께 가정을 꾸린 뒤 자녀들이 성장할 때도 학업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집 근처에 다닐 수 있는 방송통신학교를 알아봤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를 통학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꿈을 미뤄야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칠순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장 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방송통신학교 입학안내 광고를 보게 됐다. 자녀들을 다 키우고 노년을 보내고 있던 그는 이번이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장 씨가 살던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방송통신중학교가 운영됐다. 그는 즉각 신입생 모집절차를 알아본 뒤 만학도로서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됐고, 정규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한 끝에 당당히 졸업장을 따냈다.
현재 장 씨는 수성고 부설 방송통신고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경기도 내 처음으로 1975년 문을 열어 개교 50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졸업한 학생 수는 5000명이 넘으면서 경기남부권을 명실상부 대표하는 오랜 전통을 지닌 방송통신고 역사를 자랑한다.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수성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명패. 2023.11.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방송통신고에 다니는 동안 결석과 지각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하게 학교생활에 임했다. 내년에 졸업을 앞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진지하게 대학생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방송통신대에 입학할 계획으로, 자신이 흥미를 갖고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알아보고 있다.
장 씨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저에게 중학교를 못 보내주신 것을 계속 미안해 하셨고, 저도 마음 한 켠에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남아 있었다"며 "그런데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학교도 무상이고 선생님들도 편하게 대해주셔서 학업에 대한 부담보다 함께 학창시절에 만들지 못한 추억을 뒤늦게라도 쌓는다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처럼 방송통신고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만학도들이 다니기 때문에 그만큼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에 대한 재학생들의 애정도 크다.
한 달에 2번씩 일요일에 출석해 대면수업이 이뤄지는 날에는 '사랑이 꽃 피는 교실'이 된다. 아침 등교 전부터 각자 싸온 간식을 서로 나눠 먹으면서 얼굴을 못 본 동안 겪었던 다른 학우들의 근황을 비롯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다.
요즘처럼 김장철에 접어들면 각자 가정에서 담근 김치를 삶은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도시락으로 싸갖고 와서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이 풍성한 상차림이 차려진 근사한 식당으로 변신하게 된다.
늦깎이 학생들이 모인 만큼 나이대도 10대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뻘인 70대까지 전 연령 대에 걸쳐 있다. 수성고 부설 방송통신고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총 329명이 재학 중이다.
이들은 한 달에 2번씩 정해진 일요일에 직접 학교에 출석, 하루에 8교시까지 대면 수업을 듣는다. 학년당 출석일수는 22일로, 나머지 68일은 온라인으로 원격수업에 참여하면 된다. 이 때문에 주중에는 생업이 바쁜 사람들도 학교생활 병행이 가능하다.
방송통신고에서는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고령자들도 다니는 점 등을 고려해 일반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대신 한국교육개발원이 제작한 교육콘텐츠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학교 측에서는 이들이 학습에 어려움을 겪어 또 다시 학업을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데 주안점을 둔다.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 만큼 부류도 제각각이다. 부자(父子), 부부, 자매 등 일반 학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조합이다.
대부분 중장년층들로 주 중에 일반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실을 그대로 공유해 수업을 듣는다. 이들은 손주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학교에 나오는 날이면 교내는 물론 교정 밖까지 솔선수범으로 환경미화 활동을 벌인다.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수성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정에 조성돼 있는 독수리 동상. 2023.11.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스포츠 선수들의 입학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수성고 부설 방송통신고에는 올해 치러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골프 단체전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민솔(2학년)·임지유(3학년) 선수를 비롯해 골프 송채무(1학년), 최정원(3학년) 선수도 다니고 있다.
학생 선수들은 개인 훈련에 집중하면서도 학교생활까지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방송통신고 장점으로 꼽는다. 우수한 학생 선수들은 각종 대회에 수성방통고 소속으로 출전하면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학교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일부 학생 선수들은 서울권 주요 대학에 입학하기도 한다.
골프 종목의 임지유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절차를 계속 밟으면서 대학도 나오고 싶어서 방송통신고에 다니고 있다"며 "학교 생활에 딱히 어려움은 없고 즐겁게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수성고 부설 방송통신고 관계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학업의 열정을 불 태우면서 건강하게 졸업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며 "교실도 평소 학생들이 청소하지만 일부 어지럽혀져 있을 때가 있는데, 어르신들이 주말에 수업을 마친 뒤에도 한 번 더 청소하기 때문에 학교에 오셨다가 가면 너무 깨끗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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