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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원샷한솔 "'장애 조작' 논란, 어차피 계속될 것"[일문일답]

등록 2023.05.26 04:34:36수정 2023.05.26 08: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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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아니냐" 주장에 복지카드 인증

가정 4번 변했지만…"엇나간 적 없어"

"장애 얻고 절망…한 달 만에 부활"

"17년만에 수급자 벗어나…뿌듯"

"'점자 골드버튼' 빨리 받고 싶어"

[서울=뉴시스]지난 19일,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원샷한솔 제공) 2023.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지난 19일,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원샷한솔 제공) 2023.05.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강운지 리포터 = "장애를 가진 사람은 참 무던해져야 해요. 그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후천적 중증 시각장애인이자, 구독자 60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원샷한솔(본명 김한솔)은 '시각장애를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021년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저 시각장애인 맞아요…' 영상에서 "시각장애 아닌 것 같다" "복지카드 까면 인정하겠다" "시력이 없다는 걸 인증해라" 등의 악성 댓글을 직접 읽은 후 자신의 장애인 복지카드를 꺼내 보였다.

그래도 의혹이 계속되자, 지난해 11월에는 '의사한테 주작 걸린 시각장애인의 반응' 등의 영상을 게재해 논란을 익살로 승화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장애를 가진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런 일(논란)을 겪었다면 힘들었을 것 같다"면서 "어차피 계속될 얘기다. 오히려 강하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원샷한솔은 9세 때 친어머니와 이별한 후 두 번째, 세 번째 양어머니를 거쳤다. 13세 때는 친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큰어머니, 큰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됐다. 총 네 번의 가정 변화를 겪은 셈이다.

사춘기 아이로서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비뚤어지거나 엇나간 적 한번 없었다. 그는 "'어렸을 때 노란 노약자 우대권을 써본 것'과 '공놀이를 하다가 창문을 깨뜨려 5만원을 물어준 것'이 인생 최대의 반항"이라고 언급했다.

시력을 잃었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실의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나는 정말 시각적인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했고, 버스에 타서 창문 밖을 보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그냥 뭔가를 바라보는 게 참 좋았는데…"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재기에 걸린 시간은 불과 30일이었다. 그는 "큰어머니가 우시는 소리를 듣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일어나서 점자를 배우고, 복지관에 가서 컴퓨터도 배웠다"고 회상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보여주고 싶었다. '반드시 (큰어머니, 큰아버지를)행복하게 해드리겠다'는 마음이었다."는 설명이다.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17년 만에 수급자를 벗어나게 된 사연도 전해졌다. 그는 "13살 때부터 수급자였는데, 유튜브 수익이 나면서 수급자 기준을 넘었다. 어떻게 보면 내 힘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낸 것"이라면서 뿌듯해했다.

원샷한솔은 "빨리 점자 골드버튼을 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몰리 버크(Molly Burke)라고, 골드버튼을 받은 외국 시각장애인 유튜버가 있다. 외국에도 있는데 우리나라에 없을 이유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뉴시스]지난 19일,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원샷한솔 제공) 2023.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지난 19일, 시각장애인 유튜버 원샷한솔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원샷한솔 제공) 2023.05.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아래는 원샷한솔과의 일문일답.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느낀 게 있다. 한국 사람들은 장애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고, 또 불쌍히 여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다. 미디어 속 장애인은 늘 같은 모습으로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 삶이 그렇게까지 불행한 것 같지 않았다.

그때쯤 미국 뉴욕에 갔다. '장애인 직업 다양성'이라는 프로젝트인데, 장애인들의 직업 등을 인터뷰하는 대외 활동이었다. (뉴욕에는)정말 다양한 직업군에 장애인이 있고, 이에 대해 아무도 개의치 않더라. 이거는 미디어에서 비롯된 인식의 차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한 달 반 정도 후에 바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에 다녀온 경험이라는 말.

"맞다. 왜냐하면 거기에 한국 장애인들도 있었다. 그분들이 말하길, 처음에는 미국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대해서 서운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됐고, 그렇게 아이비 리그에 가고 회계사나 애널리스트가 됐다. 그걸 듣고 '나도 못 할 게 뭐냐. 유튜브 해보자'라고 생각해서 채널을 개설하게 됐다."

-'사회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한 점이 놀랍다. 사람들은 보통 이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나.

"그런가. 그런데 나는 한국이 좋았고, 한국 사회도 좀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때는 장애인권 동아리 '가날지기'를 만들어서 교내 시설을 바꾸곤 했다. 건대입구역 인근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배리어 프리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문턱의 높이, 문의 넓이, 화장실 유무, 점자 메뉴판 유무 등을 조사한 거다. 한국 사회도 대학처럼 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점자를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때마다 굉장히 기분이 좋다."

-지난 4월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만났다. 소감은 어땠나.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더 많이 말할 수 있겠다' 오롯이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시장님은 거의 말 못 하게 하고, 내가 계속 말했다. 함께 영상까지 찍었으니 이제 변화할 거라고 생각한다. 안 하면 사람들이 뭐라 할 텐데…"

-당시 오 시장도 미비한 도로 시설을 보고 당황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맞다. 그래서 촬영 끝나고 '이거 한 번으로 안 된다, 또 하셔야 한다'고 했다. 일단 함께 버스를 타야 한다. 왜냐하면 서울시 장애인 버스요금이 이제 무료가 되는데, 그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정작 장애인들은 버스에 타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점자 실버버튼'을 받았다. 어떤 기분이었나.

"정말 꿈인가 싶었다. 6개월 동안 (유튜브 측에) 이야기해서 점자로까지 결국 받아냈다. 그때도 댓글로 사람들이 '괜찮다. 받아야 한다'고 해 주니, 나도 든든한 마음에 계속 요구했던 것 같다. 빨리 점자 골드 버튼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실제로 외국에는 '몰리 버크'라고, 골드버튼을 받은 시각장애인 유튜버가 있다. 외국에도 있는데 한국에 없을 이유는 뭔가."

-이젠 알아보는 시민들도 많을 것 같다.

"요즘 많이 알아보신다. 마스크를 거의 눈알까지 써도, 뒤통수만 보고도 알아보시더라. 사인을 요청하면 물론 다 해 드리는데, 감사하면서도 민망하다. 내 글씨가 거의 그림이라서 '이걸 받아도 괜찮으신가?' 싶다."

-영상 댓글은 하나하나 읽나.

"웬만해서는 다 읽는 편이다. 시간 날 때마다 음성으로 듣는다. 그래서 친구들이 나한테 '주식 하냐'고 한다. 내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듣고 있으니까."

-시각장애인으로서 일상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을 꼽자면.

"환경이 잘 안 갖춰져 있는 부분들이 다 불편하다. 가령 가전기기도 그렇고, 요즘에는 좋은 게 나왔다 하면 다 터치니까. 세상이 편해질수록 내게 불편한 것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또 음료수에 점자를 쓸 거면 '콜라' '사이다' 이렇게 해 놔야 하는데 '음료' '탄산' 이렇게 돼 있으니 의미가 없다. 옷을 사야 하는데 그냥 '옷'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 건 그냥 만져보면 아는데…"

-일종의 '구색 맞추기'인가.

"맞다. 점자 블록도 쭉 이어져야 하는데 왜 끊겼다가 자꾸 생기는지, 그냥 보여주기식인가 싶다. (사람들이)'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그럼 법을 바꿔서 환경을 변화시켜야 하지 않나. 왜 굳이 법에 사람이 맞춰야 하나. 그런 게 참 안타깝다."

[서울=뉴시스]원샷한솔은 지난해 11월 '의사들이 나를 시각장애인으로 보지 않는 이유..?' 영상을 올렸다.(사진=원샷한솔 유튜브 영상 캡처) 2023.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원샷한솔은 지난해 11월 '의사들이 나를 시각장애인으로 보지 않는 이유..?' 영상을 올렸다.(사진=원샷한솔 유튜브 영상 캡처) 2023.05.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시각장애인을 연기한다'는 조작 논란이 일었는데, 그다음 콘텐츠에 일부러 '주작' 키워드를 넣는 등 쿨하게 응수했다. 비결이 뭔가.

"(조작 관련 내용은)어차피 계속될 이야기다. 물론 내게 부정적인 이야기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이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시각장애인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런 걸 경험했다면 힘들었을 것 같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참 무던해져야 한다. 그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저리 꺼져!' 하며 강하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들이 무심코 하는 말 중 당혹스럽거나 불쾌한 것이 있을까.

"'우리 정상인과 너희는 다르잖아' '너희를 만날 사람이 누가 있겠냐' '너흰 불행하잖아' 이렇게 단정 짓고 판단하는 말투다. 이제 당혹스럽지는 않지만 움찔한다. 그럼 정상적인 사람은 대체 누구며, 정상의 기준은 뭔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내가 짜증을 내면 그것도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안타깝다."

-그 사람의 시야가 그만큼 좁은 거니까.

"맞다. 그럼 나는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해서 콘텐츠 대본을 쓴다."

-혹여 시혜적으로 비칠까 봐, 시각 장애인을 섣불리 도와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태도가 바람직한 건지 궁금하다.

"좋은 것 같다. 그냥 잘 가고 있는데 굳이 도와줄 필요도 없고, 정말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심플하게 '혹시 도움 필요하세요?' 이 정도면 괜찮다."

-그냥 한마디 묻는 정도면 불쾌하지 않다는 말.

"맞다. 근데 괜찮다고 했는데도 '도와줄게, 이리 와'하며 실랑이하거나, 막 잡아끄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엔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이거 불편한데…'(라는 생각이 든다). 휠체어 탄 친구들은, 그냥 서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밀기도 한다고 한다."

-시각이 제한되면 다른 감각이 강화된다는 얘기가 있던데, 혹시 맞나.

"강화라기보다는 더 민감해지는 것 같다. 사실 시각이 있는 사람들도 고요한 숲속에 있거나, 명상을 하면 청각에 예민해지지 않나. 그런 것처럼 다른 감각을 더 집중해서 활용하게 되는 거다. 근데 이건 내가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라서 그런 거고, 선천적인 친구들의 경우는 청각이 '발달한다'고 해도 될 정도의 사례가 간혹 있다. 보편적으로는 그게 오히려 희귀한 케이스다."

-혹시 특별히 예민하게 느끼는 소리도 있나.

"나는 사람 목소리와 말투에 예민해진다. 말투의 변화나, 그 속에 담긴 감정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것 같다. 내가 그 사람을 알 방법이 오롯이 그것뿐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내 감정을 어떻게 네가 제일 빨리 아냐'며 놀라워한다."

[서울=뉴시스]원샷한솔은 지난해 에세이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을 출간했다.(사진=원샷한솔 제공) 2023.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원샷한솔은 지난해 에세이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을 출간했다.(사진=원샷한솔 제공) 2023.05.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건국대학교 경영학과를 가게 된 배경도 궁금하다.

"고등학교에서는 계속 사회복지학과와 특수교육학과를 쓰라고 했다. 그래서 그 두 개와 함께 경영학과를 썼다. 그런데 웬걸, 세 군데에 다 붙은 거다. 선생님들은 '경영학과 가서 도대체 뭘 할 거냐'면서 날 설득했고, 교감 선생님은 진짜 한 달 동안 날 끌고 다녔다. 그래도 난 경영학과에 가야겠다 싶었다. 왜 그동안 (시각장애인은)아무도 안 갔다는 말만 할까. 그렇다면 내가 가겠다. 고생은 내가 해 보자"

-학교생활은 어땠나.

"진짜 힘들더라. 오티를 갔는데 조가 15명씩 20개였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교재는 다 그래프에다, 계산기를 두들기는 시험도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계산기를 사용해 달라고 하고, 머릿속으로 암산해서 불러줬다. 그래프도 칠판에다가 크게 그려 달라고 해서 교수님 앞에서 나 혼자 풀었다. 그렇게 경험을 해 보니 비로소 '이게 필요하다. 이렇게 해 달라'고 말할 수 있더라. 사실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한 건지 그냥 학교에 건의하러 간 건지 모르겠다. 진짜 5년 동안 건의만 하다가 나온 것 같다."

-학우들에게 특별한 존재였을 것 같다. 교내 유명 인사이지는 않았나.

"그랬을 수도 있다.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 학과 페이스북에 다른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몇 학번 누구입니다' 이렇게만 쓰는데, 나는 한 서른 줄 썼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한솔이고요. 15학번이고 시각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먼저 와서 인사해 주셔야 하고…'"

-재학 당시 직업적 목표는 뭐였나.

"솔직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복지관에 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스스로 아무리 질문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말할 때 재밌어하더라. 그냥 대화도 재밌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도 재밌다. 그래서 유튜브를 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유튜브를 통해 이룬 '실적'을 꼽자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게, 나는 13살 때부터 수급자였다. 그런데 유튜브를 하면서 약 17년 만에 수급자를 벗어났다. 어떻게 보면 내 힘으로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어 낸 거다."

[서울=뉴시스]원샷한솔은 지난 1월 '제가 갑자기 실명할때 어땠어요? 큰엄마, 큰아빠가 나를 키워준 이유' 영상을 올렸다.(사진=원샷한솔 유튜브 영상 캡처) 2023.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원샷한솔은 지난 1월 '제가 갑자기 실명할때 어땠어요? 큰엄마, 큰아빠가 나를 키워준 이유' 영상을 올렸다.(사진=원샷한솔 유튜브 영상 캡처) 2023.05.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어렸을 적부터 큰엄마, 큰아빠와 함께 살았다고 알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특별히 반항하거나 실의에 빠진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까지는 반항한 적이 없다. 큰엄마, 큰아빠가 하는 이야기면 정말 잘 들었다. 그냥 그들을 믿었던 것 같다. 어릴 때 노란색 지하철 우대권을 써본 것, 그리고 축구공을 벽에 차다가 유리창을 깨뜨려서 5만원을 물어준 것. 그게 내 인생 최대의 두 반항이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실의에 빠졌다. 왜냐면 나는 정말 시각적인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했고, 버스에 타서 창문 밖을 보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그냥 뭔가를 바라보는 게 참 좋았는데…그렇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때 큰 엄마가 우시는 소리를 듣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일어나서 점자를 배우고, 복지관에 가서 컴퓨터도 배웠다.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꼭 갚겠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드리겠다'는 마음이었다."

-혹시 가장 존경하는 멘토가 있나.

"처음 시각장애인이 됐을 때 눈이 안 보인다는 게 부끄러워서, 복지관에서 고개를 항상 숙이고 다녔다. 거기 다 안 보이는 사람이었을 텐데…그때 비장애인 선생님 한 분이 '고개 들어도 된다'고 말해주셨고, 늘 함께 시간을 보내주셨다. 그런 일관된 모습 속에서 믿음이 생겼다. 그때 '나도 이 사람처럼 누군가의 힘든 부분을 좀 유머 있게, 가볍게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을 멘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팬과 시청자에게 한마디.

"내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말이 '선한 영향력' 다섯 글자다. 왜냐면 이 세상을 바꾼 건 여러분이다. 여러분이 댓글도 많이 써주고, 건의도 해주고, 각종 기관에 메일도 수백개씩 보내 줬다. 덕분에 세상이 변했다.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좋은 세상에 빨리 살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

살면서 예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기쁜 일들도 있더라. 두려움 속에서 즐거움을 바라보면서, 다 같이 힘내면서 살아 보자."

◎튜브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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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지 리포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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