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대 언어학자, 누가 옳은가···훈민정음 복원 쟁점
【서울=뉴시스】 1997년 최세화 교수의 복원안(왼쪽), 2015년 박대종 소장의 복원본
문화재청 “8월28일 뉴시스의 ‘문화재청이 복원한다는 훈민정음, 이래서 예산낭비’ 보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드립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첫 두 장의 결실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아직까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의견은 없습니다.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위조’의 문제는 이용준의 의도적인 훼손이 사실로 인정되어야 하나, 관계전문가에 따르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보존 상태로 미루어보아 앞 두 장이 없는 채로 오랜 기간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또한 전적은 문화재이기 이전에 실제 사용했던 실용품으로서, 일반적으로 낙장된 부분을 보수하여 사용하거나 접힌 책장의 안쪽 이면지를 타 용도로 사용한 사례는 빈번합니다. 이러한 전적의 일반적인 용례와 당대 학문적 수준을 고려한다면, 1940년경에 이루어진 이용준·김태준의 훈민정음 낙장 보수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에 문화재청은 누리집의 문화재 설명에서 훈민정음의 앞 두 장이 1940년경에 복원된 부분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는 것으로 갈음하였습니다.
*김태준(金台俊 1905~1949): 국문학자. 경학원(현 성균관대) 등에서 조선문학 강의. 이용준(李容準) : 경북 안동 이한걸의 셋째 아들. 경학원(현 성균관대) 김태준에게 수학. 훈민정음을 발견하고 간송 전형필에게 훈민정음을 판매함.
-개인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않고, 연구용역을 발주함으로써 예산을 낭비했다는 주장에 대해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현재 그 내용을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다양한 이본(異本)이 존재하는 언해본과 달리, 결실된 앞 두 장을 유추할 수 있는 방증자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훈민정음이 지니는 국민적 관심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정본(定本)’을 제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본’은 관련 학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가장 타당한 정설로서 제작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연구용역의 과업내용에 충분한 의견 수렴을 위한 학술대회 개최 등을 포함하였습니다.
한편 개인의 연구성과에 대한 문화재청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보낸 답신(청장과의 대화방, 2016.3.30)은 그간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고, 향후 관련 학계에서 활발한 논의를 통해 진일보된 연구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라는 답변이었음을 참고바랍니다.
【서울=뉴시스】 국보70호 간송해례본 중 진품인 해례 18-2과 4-2쪽의 합성(위), 간송본 중 이용준이 손으로 쓴 복원안(위작) 부분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박대종 “훈민정음 예산낭비 기사와 관련한 문화재청 해명에 대한 반론”
먼저 왜곡된 훈민정음을 바로잡아 향후 국어 교육자료 등 올바른 활용을 위한 토대를 갖추기 위해 2007년 훈민정음 언해본 정본작업에 이어 금번 훈민정음 해례본 정본작업에 착수키로 결정한 문화재청의 좋은 취지에 깊은 공감의 뜻을 표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국보 1호로 지정하자는 많은 국민들의 목소리가 증명하듯, 그 가치와 국가적 상징성 면에서 다른 문화재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극히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그런 관계로 지난 국정감사 때 이종배 의원이 강력히 제기한 훈민정음 제목을 ‘御製(어제)’가 들어간 ‘御製訓民正音’으로 원상회복시켜야 되는 사항을 포함하여, 차제에 기존의 오류들을 철저히 제대로 바로잡자는 의미에서 2017년 8월28일 ‘문화재청이 복원한다는 훈민정음, 이래서 예산낭비’ 제하의 뉴시스 기사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해당 기사에 나오는 당사자인 저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유형문화재과에 의해 작성된 8월29일자 해명자료를 읽고 몇 가지 안내말씀과 반론을 제시하오니,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째, 일제치하 시 일본이 훈민정음(한글)을 말살하려 한 주된 이유는 ‘훈민정음이 곧 우리 민족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훈민정음 책자는 유형적이면서 동시에 정신, 곧 무형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유형문화재로만 생각하고 거기에 깃든 엄청난 무형적 정신요소를 간과하는 담당자가 일처리를 할 경우, 일을 그르칠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2007년 문화재청 언해본 작업은 실패하였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문화재청장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아래에 설명 드리는 최소한의 기초적 사항을 인지해야 실무자들을 올바로 이끌 수 있습니다.
둘째, 세종 때 제작된 훈민정음은 순한문으로 된 ‘해례본’과, 그 중 앞부분을 정음으로써 해석한 ‘언해본’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둘 모두 세종대왕이 지은 맨 첫 장이 멸실 또는 변형되어 있어 세종대왕 당시대로 정확한 복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복원에는 ‘복원안’과 ‘복원본’의 두 가지가 있는데 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원안은 세종대왕 당시 원본 글씨와 편집이 아닌, 말 그대로 복원본으로 나아가기 전 시안을 의미합니다. 복원본은 훈민정음 해례본(1446)의 글자체와 편집 그대로 최대한 가깝게 구현된 것을 말합니다.
셋째, 그런 의미에서 현재 국보 70호 앞부분에 마치 뻐꾸기 알처럼 들어가 있는 1940년 이용준의 복원본 2장은 그 뒤쪽 나머지 진품 31장의 글씨체와 편집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복원본이 아니라 복원안입니다.
처음 공개하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여진 ‘ㅇ, ㅁ, ㅂ, ㅎ’ 등에는 세종대왕의 표기 규칙이 담겨있습니다. 사진에서와 같이 국보 70호 간송해례본 중 진품에 해당하는 해례 18-2쪽을 보면, ‘ㅁ’의 가로 길이와 세로 길이는 ‘ㅂ, ㅇ’과 완전일치합니다. 그러나 1940년에 이용준이 손으로 쓴 부분을 보면 ‘ㅁ’과 ‘ㅂ’의 세로 길이가 서로 다르며, 가로 길이도 달라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체가 아님이 명확히 입증됩니다. ‘ㅇ’도 ‘ㅁ’과 가로 길이가 다르며, 도구를 써서 그린 진품과는 달리 손으로 쓴 가품임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용준이 필사한 부분은 위작이라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그 위대한 정신과 서법 규칙이 드러나 있지 않고 임의대로 조악하게 쓴 것을 국보로 지정해놓고 있는 기가 막힌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이번 해명 시 “1940년경에 이루어진 이용준·김태준의 훈민정음 낙장 보수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에 문화재청은 누리집의 문화재 설명에서 훈민정음의 앞 두 장이 1940년경에 복원된 부분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는 것으로 갈음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용준의 그것이 복원본(정확히는 ‘복원안’)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오탈자와 잘못된 편집, 잘못된 글씨체로 훈민정음의 정신과 규칙이 훼손된 ‘위작본’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정부는 올바른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오로지 복원된 부분만 밝히고, 그것이 위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매우 부당한 처사입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복원본이 문제가 아니라 위작본이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2007 문화재청 언해본도 결과적으로 위작본이기 때문에 뉴시스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 위작의 문제가 우리 어문을 교란하고 우리 국민들의 정신을 오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정본 프로젝트를 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2017년 8월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덕종어보가 1924년에 제작된 것은 환수 직전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1924년 기사를 보고서 파악했다”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한 것은 매우 적절하고 국민들에게 납득이 되는 해명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 고궁박물관에서는 덕종어보가 환수되기 전까지 1924년에 제작된 어보임을 확정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과학적 조사(표면성분분석)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환수 받은 이후 과학적 조사를 한 결과 조선 시대와 성분재료가 다름을 확인하여 환수된 덕종어보가 1924년에 제작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서울=뉴시스】 ①보물 제745-1호 월인석보 내 언해본 ②2007 문화재청 언해본 ③정우영 교수가 잘못 제시한 언해본 ④2015 박대종 언해본
넷째, 언해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문화재청은 “다양한 이본(異本)이 존재하는 언해본”이라 하였는데, 정본 제작에 쓰이는 언해본은 오직 보물 제745-1호 서강대본 하나뿐입니다.
2007년 문화재청 언해본은 동국대 정우영 교수의 잘못된 복원본을 그대로 수용한 것입니다. 국정감사 시 이종배 의원이 조선왕조실록과 보물 제745-1호 월인석보 내 훈민정음 언해본을 근거로 제시하며 강력 주장한 것처럼, 언해본과 해례본 모두 권두 서명은 ‘세종 임금이 지은 글’임을 뜻하는 ‘御製’가 포함된 ‘御製訓民正音’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정본 제작에 쓰이는 ①보물 제745-1호 월인석보 내 언해본은 붉은 색 박스 부분이 나머지 다른 부분과 글씨체와 글자 간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국어학자들이 세종대왕이 돌아가시고 나서 묘호인 ‘世宗’을 더 추가하는 과정에서 해당 목판 부분을 파내고 칸을 조정하여 새로 편집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랏말싸미’부터는 세종대왕 당시에 제작된 것이고 그 이전은 세조 때 다시 편집된 것이어서 학자들이 세종대왕 당시대로 복원하고픈 욕구가 생겼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종대왕의 묘호는 ‘世宗’이지 ‘世宗御製’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①에서 ‘世宗’ 두 글자를 뺀 ‘御製訓民正音’이 세종 당시 본래의 권두서명이 됨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우영 교수는 자신의 논문과 문화재청에 제출한 ‘훈민정음 언해본 이본 조사 및 정본 제작 연구’(2007) 66~67쪽에서 ③을 제시하면서 제목에 御製를 집어넣게 되면 “모두 1줄이 밀려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언해본 전체 체제가 뒤바뀌게 된다 ··· 권두서명은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진다”고 하면서 ②를 정본으로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뉴시스 ‘훈민정음과 어제훈민정음···세종의 원제는?’(2015.12.1)과 ‘75년만에 바로잡았다, 세종대왕 ‘어제’ 훈민정음(2015.12.2)‘에서 보도되고, 학회지 ‘한글+漢字문화’ 2016년 1월호에 게재된 저의 논문 ‘훈민정음 어제서문의 복원’에서 입증한 것처럼 ④번 사진을 보면 ‘御製’를 집어넣어도 칸이 전혀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이로써 국어학계의 훈민정음 권두 제목 논쟁은 완전히 종식 정리되었습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정우영 교수의 잘못된 안을 그대로 수용한 2007 문화재청 언해본은 제목부터 잘못된 위작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뉴시스에서 2007년 당시 국가예산이 낭비된 것을 지적하였고, 나아가 그 잘못된 것을 정직하게 인정치 않고 해례본 정본 사업을 강행할 경우 또 4000만원의 예산이 낭비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마지막으로, 문화재청이 이번 설명자료에서 “개인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않고, 연구용역을 발주함으로써 예산을 낭비했다는 주장에 대해”라고 한 부분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1차 복원본이자 위작본인 1940년경 이용준의 복원본도 개인의 연구성과이고 2007년 문화재청 언해본 또한 동국대 정우영 교수 개인의 연구성과입니다. 저의 것은 복원안과 복원본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하면, 복원안의 경우 안병희 교수와는 몇 글자가 다르고 최세화 교수와는 단 한 글자만 다르니 제 개인의 연구성과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복원안에 입각하고 세종대왕의 독특한 서법규칙을 그대로 반영하여 만든 복원본은 제 개인의 온전한 연구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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