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대홍수는 '예고된 재난'···개발규제 거부해 피해 자초
【스프링(미 텍사스주)=AP/뉴시스】미 텍사스주 스프링에서 28일(현지시간) 허리케인 하비가 퍼부은 폭우로 홍수가 발생해 주택이 지붕께까지 물에 잠겨 있다. 2017.8.29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하비가 쏟아낸 사상 최대규모의 강수량이다. 하지만 환경 및 개발 전문가들은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의 습지(바이유)에 자리잡고 있는 휴스턴과 그 주변 지역이 과다한 개발로 자연의 조절 능력을 파괴하는 바람에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
한마디로, '예고된 재난'이란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번 대홍수 사태를 계기로 휴스턴 시의 무제한적 개발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높아질 것으로 WP은 전망했다.
멕시코만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휴스턴은 1800년대 중반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난히 홍수 피해를 자주 겪었다. 멕시코만 해수면과 거의 비슷한 높이인 버팔로 늪지대(바이유)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지가 평평하고 진흙토양인 점도 홍수에 취약한 이유다.기록에 따르면, 휴스턴은 도시 건립 이후 지금까지 무려 30번이 넘는 크고작은 홍수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코퍼스 크리스티=AP/뉴시스】허리케인 하비의 영향으로 28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코퍼스 크리스티 해안가에 물이 들이치고 있다. 2017.08.29
'조닝 법'이란 땅의 사용용도에 따라, 개발 범위를 지정해놓은 법을 가르킨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거지역' '상업지역' '산업지역' 등의 개념은 미국의 '조닝 법'에서 나온 것이다. 1916년 뉴욕주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조닝제도를 실시했고, 미국 내 거의 모든 주는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휴스턴과 주변 지역에서는 이 '조닝 법'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 WP에 따르면, 미국 대도시들 중 조닝 법을 시행하지 않는 곳은 휴스턴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휴스턴은 그동안 '무한대 개발'을 벌일 수 있었다.
실제로 휴스턴은 스스로를 '한계가 없는 도시(city of no limits)'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시 정부와 주민 대다수는 여전히 무제한 개발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조닝 법' 도입 여부를 놓고 세 차례나 주민투표가 치러졌는데 번번히 부결됐을 정도이다. 마지막 투표는 1993년에 치러졌다. WP는 휴스턴 등 텍사스 주민 대다수가 21세기에도 여전히 '거친 서부(wild west)'의식을 뿌리깊게 가지고 있어서, 모든 형태의 규제를 개인자유권 및 소유권의 침해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휴스턴 시 정부는 토지 소유자의 개발권을 제한하는 '조닝 법'을 시행하지 않는 대신, 물의 유입을 통제하기 위한 수로와 댐 시스템 등을 설치하는 식으로 홍수 대책을 취해왔다.
문제는 갈수록 홍수의 빈도가 잦아지고, 피해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역대 홍수 피해 규모 중 휴스턴은 5~6위권을 차지한다. 연방 정부가 지급한 전국 홍수피해 지원금이 평방마일당 평균 3000달러인데 비해, 휴스턴은 무려 50만 달러일 정도이다.
그런데도 휴스턴 인근 해리스 카운티 정부 관계자들은 WP에 여전히 토지 개발 규제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주장을 뒷받침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해리스 카운티 경우 2010년 이후 최소 7000채 이상의 주거 건물이 새로 세워졌다. 이중 대다수는 홍수 위험이 높은 저지대이다.
텍사스 A&M 대학의 샘 브로디 박사는 "휴스턴은 그 어떤 규제에 대해서도 적대적 반응을 나타낸다"면서, 바로 이런 점때문에 "지금까지 폭우 대응 시스템이 만들어진 적이 한번도 없다"고 WP에 말했다.
【디킨슨( 미 텍사스주) = AP/뉴시스】 27일 미국 텍사스주 디킨슨 시의 라 비타 벨라 요양원에서 휠체어 탄 노인들이 가슴까지 차오른 물 속에 앉아있다.트루디 램프슨 원장은 이 사진을 휴대전화를 이용해 소셜미디어로 널리 알려 입원 노인들을 최우선으로 구출하게 할 수 있었다. 2017.08.29
휴스턴 인구는 2015년 현재 약 220만명이다.12년전인 1995년 당시보다 25% 늘었다. 인근 해리스카운티 경우엔 같은 기간 인구가 42% 늘어 440만명에 이르고 있다. 인구가 늘면 개발지가 더 많아지고, 홍수를 자연조절해주는 강이나 습지가 더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해리스카운티의 해안가 습지 중 약 30%가 매립돼 그 위에 건물이 들어섰다고 WP은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휠체어에 탄 노인들이 물 속에 잠겨있는 사진으로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디킨슨 시의 라 비타 벨라 요양원이 전형적으로 저지대에 세워진 건물이라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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