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고비사막 같은 세상, 서로 몸을 기대 '나는 재미있는 낙타'[리뷰]

등록 2023.12.09 04:00: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바위가 팬케이크처럼 쌓여있고 모래가 파도치는 곳.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를 오르내리는 춥고도 더운 곳….

막이 열리면 무대 위 고비사막처럼 팍팍한 세상에 두 마리의 낙타가 있다. 토끼처럼 작았던 낙타는 점점 몸을 키운다. 살아남으려고, 잘 살려고…. 혹을 만들어 에너지를 저장하고, 콧구멍을 막을 수 있게 진화해 모래먼지를 피한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면 낙타 두 마리는 서로 몸을 기댄다. 사막의 공기보다 시원한 서로의 몸으로 더위를 식힌다.

국립극장이 시청각 장애인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실화를 담은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를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렸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 장애의 양상마저 다른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애니)이 평생을 함께하게 되는 과정을 두 마리 낙타에 빗대 그려낸 베리어프리 음악극이다.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가난한 아일랜드 이주민의 딸로 태어난 애니는 여덟살에 시력을 잃고 다리를 저는 남동생 지미와 함께 빈민구호소에 버려진다. 동생이 죽고 혼자 남은 애니는 맹학교에 입학해 점자를 배우고, 수술을 받아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다. 졸업 무렵 가정교사직을 맡게 되고 물건을 던지고, 사람을 때리는 등 마치 짐승같던 어린 헬렌을 만나게 된다.

배우 겸 작가로 활동하는 한송희가 애니 역, 배우이자 소리꾼인 정지혜가 헬렌 역을 맡았다. 판소리와 노래를 부르는 듯한 운율감 있는 대사로,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의 극을 발랄하고 리드미컬하게 이끈다.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다. 두 명의 배우와 함께 3명의 수화통역사, 4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 시각, 청각적으로 대사를 전한다. 타악·전자음악·마림바·고수 등 4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함께 올라 때로는 청량한, 때로는 발랄한 연주를 선보이며 두 배우와 긴밀하게 호흡한다. 영상을 통해 타악과 전자음악의 리듬, 진동을 시각화하고, 우퍼 스피커로 진동을 전달한다.

교차하는 이야기 속 두 사람은 놀랍도록 닮았다. 후천적인 장애부터 배움에 대한 흘러넘치는 열기,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외로움이 차오를 때는 '펑' 터트리는 유년시절의 성격, 동생의 요람을 뒤집었던 사건까지 판박이다.

한송희와 정지혜는 주인공은 물론 주변 인물도 모두 연기한다. "낙타, 손을 내민다" 등 지문에 해당하는 말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물론 "나는 지금부터 지미(앤 설리번의 남동생)입니다"라며 어떤 주변 인물을 연기하는 지를 꼼꼼하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 죽은 앤 설리번의 남동생 지미역을 소화할 때는 한 쪽 다리에 나무 방울을 달아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들도 지미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헬렌이 키우던 카나리아 '티미'가 죽은 후 작별인사를 보낼 때 멀리서 들려오는 나무방울 소리는 애니와 헬렌의 공감대를 극적으로 그려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음악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사진=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애나의 노력으로 의미 없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던 헬렌은 점차 언어를 익혀가고, 책을 읽고, 지식인으로 변해간다. 물 펌프에서 처음으로 '물'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깨닫는 유명한 애피소드 역시 음악과 함께 생생하게 표현된다. 함께 성장하는 헬렌과 애나의 모습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긴다.

두 배우는 이번 공연을 위해 한글 자모음이나 알파벳, 숫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는 지화를 배웠다. 이를 통해 애니가 헬렌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헬렌이 세상과 소통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톡톡 튀는 자막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글자의 크기와 그래픽 등으로 인물의 감정상태와 말의 뉘앙스를 표현한다. 1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