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태영 윤세영 창업회장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등록 2024.01.15 10:02:38수정 2024.01.15 10:09:2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자구안은 볼 것도 없고, 협력사와 수분양자들을 볼모로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악의적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지난해 12월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한 직후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평소 점잖은 말투와 태도로 '신사'라는 평을 얻었던 그가 한껏 격양된 말투로 "태영건설 하나만 잃고, SBS 등 알짜 계열사들은 지키겠다는 꼼수가 아니냐"며 한마디 더 붙였다.

아파트 브랜드 '데시앙'으로 시공 능력 16위의 중견 건설기업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예견된 결과였다. 지난 3~4년간 부동산 호황기에 기대 아파트 수주를 늘리면서 발행한 PF 보증서가 침체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위기에 처한 태영건설을 구하고자 구순의 윤세영 창업회장이 채권단 앞에 직접 나서 눈물로 호소했다. 윤 회장은 채권단 설명회에서 "이대로 태영을 포기하는 것은 저만의 실패로 끝나지 않으며 협력사, 계약자를 비롯해 채권단에도 아픔과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윤 회장은 "1년 내내 유동성 위기로 가시밭길을 걷던 태영은 결국 흑자 부도 위기를 맞았고, 창립 50주년의 영광은 고사하고 망할 처지가 됐다"며 "믿고 도와주신다면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해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채권자들의 워크아웃 동의를 간곡히 요청했다.

윤 회장이 구순의 노구를 이끌고 태영건설을 살리겠다며 채권단 앞에 직접 나서 눈물로 호소까지 했으면 채권단의 얼어붙은 마음도 녹아내릴 법한데, 눈물의 효과는 온데간데없다. 태영그룹의 이후 행보는 그 눈물의 의미를 더욱 헷갈리게 했다. 윤 회장 일가의 사재 출연이나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 매각에 대한 언급은커녕,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대여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가 보증한 채무 890억원만 먼저 갚았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맹탕 자구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총선을 앞두고 미칠 경제적 파장과 협력업체, 수분양자들을 볼모로 '알아서 하라'는 식이나 다름없었다. 500여 협력업체와 하청업체가 줄도산하고, 수분양자들의 피해를 버젓이 알면서도 강 건너 불 보듯 배짱을 부린 것이다.

태영그룹은 채권단을 비롯해 금융당국, 대통령실과 총리까지 나서서 '자기 뼈를 깎는 자구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서자, 마지못해 무릎을 꿇었다. 태영그룹은 채권단에 추가 자구안을 제출했다. 워크아웃 전제 조건으로 채권단이 제시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1549억원)의 태영건설 지원 ▲에코비트 매각추진 및 매각대금의 태영건설 지원 ▲블루원의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62.5%) 담보제공 등 4가지 자구안 이행을 재확인하고, 필요하면 지주사 TY홀딩스, SBS 지분까지 내놓겠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돌이켜보면 태영그룹이 우선 '첫 패'를 던져놓고, 여론 추이에 따라 자구안의 방향과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뻔한 속내를 의도적으로 숨기려 하지 않았는지, 그 얄팍한 산술을 구순의 눈물로 포장해 국민을 상대로 엄포를 놓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워크아웃의 전제조건은 기업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진의를 두고 여러 말들이 나온다. 기업 회생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거액을 내놓는 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도, 사재 출연은 차입금을 상환하고,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는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자구노력이자, 경영실패에 대한 오너의 책임 있는 자세다.

태영그룹의 워크아웃이 우여곡절 끝에 개시됐다. 워크아웃이 개시되기 전까지 태영그룹 행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 대신, 어떻게든 소나기를 우선 피하고 보자는 속셈이 여실히 드러났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또다시 어설픈 꼼수를 부려 명예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마저 스스로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부디 구순의 나이로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윤 회장의 눈물이 SBS 등 알짜 계열사들을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얄팍한 술수가 아니었기를 바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