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바다와 하늘을 껴안고 ‘바스 미술관’[이한빛의 미술관정원]
[사진=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마이애미 비치에 위치한 바스 미술관 전경. 아르데코 스타일의 건물 위에 실비 플루어리(Sylvie Fleury)의 네온 작품 Eternity Now (2015)가 걸렸다. *재판매 및 DB 금지
[마이애미=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우리 미술관엔 작품을 보고자 하는 사람만 오는게 아니예요. 우연한 관객도 있지요. 슈퍼마켓에 가려고 나왔는데 어쩌다보니 오는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실비아 쿠비나 바스 미술관 관장)
매년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가 열리는 곳. 마이애비 비치의 중심엔 바스미술관(Bass Museum)이 있다. 쿠비나 관장의 말대로 미술관은 미국 최대 관광지인 마이애미해변과 가까워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리고 마이애미 비치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이 늘 찾는 공원인 콜린스공원을 미술관 앞마당으로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트바젤이 열리는 12월이면 전국에서 찾아온 아트 피플들로 붐빈다. 마이애미만큼이나 다양한 곳,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바스 미술관이다.
설탕 사업가 컬렉터의 기부로 탄생
회화, 판화작품을 직접 만들기도 했고, 작곡은 물론 글도 썼다. 이렇게 예술을 사랑하던 부부가 1963년, 이민자로 정착 오랜 기간 살았던 마이애미 비치에 작품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기증품은 회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500여점에 달했고, 시는 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공립도서관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Bass Museum of Art’로 개관했다. 기증품을 받되, 운영은 시에서 하는 공립미술관으로 1964년 출발했다.
[사진=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미술관 앞 정원이자 공원인 콜린스 파크엔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 ‘마이애미 마운틴’이 놓였다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관은 개관과 동시에 찬사를 받았다. 아르데코스타일의 빌딩도 그렇지만, 관광객이 몰리는 사우스 비치, 호텔이 빼곡히 들어선 곳에 공립미술관이 문을 열면서 마이매미 지역이 예술 허브가 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 때문이다. 실제로 1985년 마이애미 시티 발레단이 설립됐고, 1987년에 뉴 월드 심포니가 출범했다. 2002년부터는 아트바젤 마애이매 비치도 이곳에서 열린다.
그러나 개관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미술관은 논란에 휩쌓였다. 컬렉션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1973년 5월 7일 ‘마이매미 비치, 논란의 바스 미술관 폐쇄’기사에 따르면, 마이애미 비치시(市)는 보티첼리, 엘 그레코, 프란츠 할스, 렘브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 작품 50여점을 포함해 500여점을 기증 받았지만, 이에 대한 진위논란이 거셌다. 이에 시민 대표인 맥스 도브린 부인은 독립적인 감정평가를 1969년 뉴욕아트딜러협회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도브린 부인은 이런 주요 작품들을 포함한 컬렉션을 1961년 유럽에 판매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감정에 나선 뉴욕아트딜러협회는 1969년 가을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바스컬렉션이 이 협회에 알려진 미술관 중 가장 노골적이고 만연한 잘못된 라벨을 포함하고 있다고 믿습니다(…)이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 마이애미 비치시의 의무다” 사실상 위작임을 인정한 것이다. 시는 존 바스가 사망한 1978년, 미술관 폐쇄를 결정했다.
‘퍼포밍 퍼스펙티브 : 대화하는 컬렉션’ 전시전경. 비올라를 연주하는 1700년대 여성 초상화 앞 백남준의 ‘TV 첼로’ 가 놓였다 *재판매 및 DB 금지
폐쇄를 딛고, 재개관
개관 60주년을 맞아 지역신문 마이애미 헤럴드와 인터뷰에 나선 캠버 전 관장은 “바스가 리노베이션한 건물이었지만 손댈 곳이 많았다. 온습도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대형작품을 전시할 만큼 큰 전시장도 없었다. 심지어 미술관 정원이자 시민들이 자주 찾는 콜린스 공원은 마약 사용과 마약 거래가 만연했다”고 회상한다. 마이애미 비치가 당시엔 그다지 여유로운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 예산도 거의 받지 못했다.
캠버 관장은 시 의원을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는 한편 본인이 직접 기부금 모금에 나서기도 했다. 쉬운일은 아니었을테지만 그는 “이것이(미술관이) 이 도시의 진정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성취감이 들었다”고 말한다. 2001년에는 전시공간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일본 건축가인 아라타 이소자키(Arata Isozaki)의 설계로 1만6000제곱피트(약 1500평)이 늘어났다. 두 번째 리모델링은 2015년. 데이비드 굴드(David Guild)의 설계로 현재의 모습에 이른다. 2년의 공사 끝, 미술관은 거의 2배로 그 규모가 커졌고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설로 거듭났다.
논란의 컬렉션, 과거와의 대화로 풀어내
우고 론디노네가 우뚝.. 시민에게 돌아온 미술관
사계절 초록이 우거진 마이애미 비치의 풍경 속 론디로네의 작품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찰떡같이 어울리는 그런 모습이다. 콜린스 공원은 미술관 바로 앞이라 미술관 정원으로도 보이나, 미술관은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택한 것 처럼 보인다. 빽빽하게 야외 조각작품을 놓기보다 임팩트 있는 작품 하나로 사람들에게 이야기거리를 준다. 누군가는 잔디밭에서 햇볕을 즐기며 요가와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작품이 들어가 풍경의 느낌이 바뀐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스테인레스 알루미늄 프레임. 카롤라 브라보의 ‘부재와 존재 사이’(2023) *재판매 및 DB 금지
특별할 것 없는 이 풍경은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특별한 노력으로 빚어진 결과물이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과 마약거래상들이 진을 치던 공원이 현대미술의 성지가 되기까지 그 과정이 절대 쉬웠을리가 없다.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수 많은 이의 지지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올해로 60년을 맞은 미술관의 다짐도 비슷하다. 쿠비나 관장은 “일부 문화권에선 60년을 한바퀴 도는 완성의 시간으로 본다”며 “우리 미술관은 예술기관이자 지역사회의 센터로 자리매김해 왔다.
개방성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다. 퇴근 후에도 사교활동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박물관의 변화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와 현재가 전시실 안에서 만난다면, 미래는 미술관 밖에 있다.
그것을 어떻게 끌어 들이느냐가 지금 미술관들의 고민이리라. 정답은 없지만 정답에 가까운 답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고 론디노네를 바라보며 요가를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계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같은 베이스를 깔아 주는 것. 예술의 가장 큰 힘은 미묘하고도 조용하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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