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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근의 반려학개론]책임에 값을 매긴다고요?

등록 2021.09.17 0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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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길거리 고양이 '밥'을 입양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마약 중독자 제임스 보웬의 실화를 담은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A Street Cat Named Bob)에 출연했던 고양이 '밥' 2020.06.17.

[서울=뉴시스] 몇 년 전 일이다. 한 중년 여성 반려인이 푸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반려견은 며칠 전 한 동물보호소에서 데려온 유기견이었다. "좋은 일 하셨다"고 하면서 반려인과 얘기를 나누다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반려인은 그곳이 유기동물을 구조해 보호하다 좋은 가정을 찾아 입양시키는 곳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갔다. 손쉽게 펫숍에서 분양받을 수 있었으나 동물 보호 활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유기견 중 마음에 드는 아이가 눈에 띄어 입양을 결정하자 보호소 측이 50만원을 요구했다.

당시 펫숍에서 '순종' 푸들 강아지가 20만~30만원대에 팔렸다. 그분이 입양한 푸들은 순종도 아닌 '혼종'이었고, 나이도 3세로 추정됐다.
 
그런 개를 50만 원에 입양하라고 하니 황당했다. 이유가 뭔지 물어보니 그 유기견이 구조돼 지금까지 각종 예방접종을 받고, 질병 치료를 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부담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시중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가방 등 각종 반려견 용품들도 시중가보다 더 비싸게 사게끔 유도했다.

자신의 품 안에서 행복해하는 푸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던 반려인은 도저히 입양을 포기할 수 없어 무통장 입금해주고 데려왔다. 그래도 여러 가지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사실을 필자에게 토로했다.

이 일과 내용은 다소 다르지만, 최근 유기묘를 둘러싸고 '책임비' 논란이 불붙고 있다.
 
책임비는 유기묘를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 받는 돈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입양한 유기묘를 책임감 있게 잘 키우겠다는 각오를 담은 돈'이라는 뜻이다. 통상 5만~10만원인데 일종의 약속이니 입양해서 얼마 동안 잘 키우는 것이 확인되면 반환한다. 그러나 요즘 책임비 논란은 일부 유기묘 구조자라는 사람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자신이 임시 보호 중인 유기묘를 소개하면서 입양을 권하는데 이때 무려 몇십만 원 수준 책임비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더구나 이 책임비는 '임시 보호하면서 들어간 비용'이라고 규정해 반환 의사가 사실상 없음을 시사한다.

사실 유기묘든, 유기견이든 '거리의 아이'를 구조해 임시 보호할 때 적잖이 희생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 점은 누구나 알고 있고, 어떻게든 보상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스스로 비용으로 계산하고, 엉뚱하게 책임비라는 명칭까지 가져다 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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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길냥이

더 큰 문제는 일부 구조자는 책임비를 선정할 때 묘종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코리아 숏헤어처럼 흔한 묘종의 경우 책임비가 별로 없지만, 아주 가끔 등장하는 인기 묘종엔 높은 책임비가 매겨진다.

누구나 탐내는 비싼 품종이라서 책임비가 비싸고, 코숏이라서 책임비가 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판단이다.

농림부는 6월 "허가 받지 않은 사람이 돈을 받고 동물을 주는 행위는 판매 행위다"며 유기묘 책임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농림부가 이렇게 판단한 것은 책임비를 빙자한 사실상의 동물 판매를 우려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책임비가 본래 취지에 걸맞다면 오히려 양성화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 구조자가 임시 보호하면서 들인 비용은 그 이름이 책임비이든, 새롭게 불리는 '고밥비'든 정부에서 일부라도 보조해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유기견과 유기묘, 안타까운 아이들이다. 이들이 최대한 빨리 좋은 반려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동물 보호'다. 책임비 갖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사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아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계절도 점점 겨울로 향한다.

윤신근
수의사·동물학박사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

dryou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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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수의사 윤신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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