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잃어버린 신을 찾아서
요즘 국정 교과서로 나라가 들썩인다. '종북' '친일' '독재'에서 자유롭지 않은 어른들이 선거철이 다가오니까 좌우진영논리에 따라 그러는 것이라는 한 중학생의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비아냥이 오히려 범상치 않게 들린다. 이젠 '쉬운 해고' 대 '넘치는 재벌의 사내 적립금' 등 민생 문제를 보다 더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한 노동운동가의 말에 자비로운 우리 부처님의 심금도 떨릴 것이다.
우리는 정말 지금 꼭 하나의 교과서 문제만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가? 이미 충분히 좌우 진영의 설명은 들었고 결국 역사의 평가는 예외없이 우리 또는 후대에게 맡겨진 권리가 아닐까? 잘 만들면 후대에도 참고할 만한 또 한권의 '국정 교과서'가 될 것이다. 아니면, 걱정대로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치부로 남을 수도 있다. 아무리 뻔히 보인다고 해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은 인간이 예측하고 재단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이미 종교에서는 신의 말씀에 대한 단일화가 이뤄졌는데, 왜 역사 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뒤늦게 자각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아는 부처님의 말씀인 불교 경전도 몇 차례에 걸친 결집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성경조차도 그 유명한 니케아 공의회를 거친 것이다.
4세기 초 로마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기 325년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를 기독교도에게 요구한다. 예수를 하느님의 동질이라고 주장하던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예수의 인성을 주장하던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물리친다. 이때 27권의 신약정경이 정해지고 그 이외의 복음서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한 이집트 수도자가 숨긴 '도마복음'이 1600년이 흐른 1945년 이집트 농부 모하메드 알리 삼만에 의해 발견된 것에는 27권에 의해 부활될 수밖에 없었던 예수의 의지가 담긴 것일까?
사랑, 믿음, 소망이라는 선한 교리로, 고도의 헌신과 희생을 실천한 수많은 성현을 탄생시킨 기독교가 그 교리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천년간 반인륜적 학살과 차별을 행했다는 역사적 평가도 있다. 그래서 창녀 마리아 집에서 접대받은 것에 분노하며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항변이나 '네가 메시아라면 너 자신을 구하고 우리 민족을 구하라!'고 외친 '사반의 십자가'의 내용이 더 공감되기도 한다고 박규현은 전한다.
도마복음은 신이 잠든 미로의 문을 여는 열쇠다. 2000년 전 인간의 모습으로 신의 말씀을 전하던 예수. 그가 남긴 말씀은 신약성서 27서에 담겨서 전해져 왔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손으로 제도화한 경전이었을 뿐 살아있는 말씀은 아니었다. 2000년 동안 지상에 '신의 평화'가 내려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신은 인간이 만든 토털로지(tautology), 즉 동어반복이라는 미로에 갇혀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2000년이 지나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도마복음.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세계 공멸의 위기가 고조되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지 않았을까? 의심 많던 도마가 전하고자 했던 예수 말씀은 무엇일까? 2000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도마복음을 실마리로 우리는 신이 잠들어 있는 미로를 탐험하고자 한다. 과연 구원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걸까? 우리는 그저 믿음만으로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우리의 원죄는 과연 무엇인가? 2000년이라는 시간과 동서양이라는 공간을 뛰어넘는 말씀의 힘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한국발도르프협동조합 박규현 이사장의 책 '도마복음, 잃어버린 신을 찾아서'(수신제)를 만나보면 될 것이다. '어린 왕자'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책에서 '내 안의 구도자'를 함께 만나보자.
※이 칼럼은 사부대중 모두가 맑고 밝은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한 자성과 쇄신 등 공익적 목적으로 전문가와 사부대중의 염려와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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