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예산 부족으로 고시원 참사 못 막았다
현재 서울시내 고시원 1300여곳 사각지대
올해까지 214곳에 자동 물뿌리개 무료 설치
서울시 "관련 예산 대폭 편성 못해 차등 둔 것"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날 화재로 8시40분 현재 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2018.11.10. [email protected]
서울시는 6년전부터 무료설치 지원사업을 펼쳐왔지만 결국 참사를 막지 못했다.
현행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2009년 7월부터 운영된 고시원을 대상으로 물뿌리개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된 서울시내 고시원 1300여곳은 물뿌리개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위험성을 감지한 시는 2012년부터 '노후고시원 안전시설 설치 지원 사업'에 착수했다. 시는 2012년 7개 고시원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92곳에 물뿌리개를 무료로 설치했다. 올해는 214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예산은 모두 33억여원이 투입됐다.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국일고시원도 당초 서울시 지원사업 대상이었다. 국일고시원 운영자는 이번 참사가 발생하기 약 3년 전인 2015년 지원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건물주인 하창화 한국백신 회장과 동생은 '건물을 팔려고 내놨다'는 이유로 물뿌리개 설치를 거부했다.
그 결과 물뿌리개 설치는 무산됐다. 시는 '해당 고시원 운영자와 건물 소유주가 다를 경우 사전에 소유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는데 국일고시원이 이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가 무료 설치 조건으로 내건 사항이 건물주 동의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가 제시한 까다로운 조건이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시는 물뿌리개 무료 설치 신청요건으로 ▲2009년 7월 이전부터 고시원 운영 ▲소방안전시설 설치현황이 현행기준에 미달 ▲취약계층 50% 이상 거주 등을 제시했다.
시는 또 신청 시 제출서류로 기본신청서 외에 ▲고시원 사업자 등록증 ▲안전시설 설치 설계도서와 공사내역서 ▲기존 안전시설 완비증명 ▲건축물 등기사항증명서 또는 임대차계약서 등을 요구했다.
게다가 건축법 위반 건축물이나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위반한 고시원 사업자의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신청서류를 내는 과정에서 고시원 임대료·보증금 액수가 그대로 노출되는 탓에 매출규모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점도 건물주 입장에서는 부담이었다.
나아가 무료설치 혜택을 본 고시원은 설치시점으로부터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해야 하는 조건까지 떠안아야 했다.
이 같은 까다로운 조건 탓에 정작 환경이 더 열악한 고시원들은 지원대상에서 빠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현상은 설치 의무화 이전에 지은 서울시내 고시원 1300여개 중 210여개에만 물뿌리개가 설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화재위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당초 취지도 무색해졌다.
시가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는 예산 부족 탓에 1300개 고시원 전체에 한꺼번에 물뿌리개를 설치할 수 없었고 결국 우선순위를 둬서 연차적으로 설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시 관계자는 "전체 고시원 1300개에 다 설치할 요량으로 예산을 대폭 편성했으면 조건없이 지원할 수 있겠지만 (고시원들이) 서로 (무료 설치)하려고 하는 상황이니 어느 정도 차등을 두고 경쟁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시가 예산을 과감하게 편성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내년 2월까지 서울시내 고시원 5840개소와 소규모 건축물 1675개소를 긴급점검하겠다는 계획 역시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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