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계약직 아나운서들, '직장내 괴롭힘' 1호 진정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첫날 노동청 진정
"아나운서들 격리·방치 생활…직장 괴롭힘 유사"
【서울=뉴시스】계약직 아나운서들이 머물고 있는 MBC 상암 사옥 12층 공간의 사진. (사진 = 류하경 변호사 제공) 2019.07.15.
이날 MBC 16·17사번 계약직 아나운서 측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는 아나운서들이 현재 겪고 있는 처분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저촉된다며 서울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MBC는 2016년과 2017년 11명을 계약직 아나운서로 뽑았다. 당시 MBC는 노조와 갈등을 겪고 있었고 MBC노조는 2017년 9월께 파업에 돌입했다. 2017년 12월 최승호 사장이 취임하며 경영진이 교체됐고, 이들 아나운서는 지난해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 3월 서울서부지법에 해고무효 확인 소송과 함께 근로자지위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들은 채용 당시 MBC가 형식적으로만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한 것일 뿐 사실상 정규직으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채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MBC 측은 기간제법상 계약직으로 뽑은 것이며, 이후 2018년 일반 신규채용과 별개의 특별채용 기회까지 줬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아나운서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지난 5월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가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 효력이 없다"며 "해고무효확인 사건의 판결 선고 시까지 채권자들(아나운서)이 채무자(MBC)에 대한 근로자의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는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아나운서들은 지난 5월27일부터 MBC 상암 사옥으로 출근했지만 사실상 방치돼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류 변호사에 따르면 이들은 기존 아나운서 업무공간이 있는 9층이 아닌 12층에 마련된 별도 사무실에 모여있다. 주어진 업무도 없고 사내 전산망도 차단됐으며, 정해진 시간에 출근과 퇴근을 하지만 근태관리도 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예시로 ▲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승진·보상·일상적인 대우 등을 차별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돼 있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음 ▲업무에 필요한 비품(컴퓨터·전화 등)을 주지 않거나, 인터넷·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함 등을 들고 있다.
MBC 해직 아나운서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는 것이 류 변호사의 주장이다.
류 변호사는 "당사자들은 차라리 해고당하는 게 낫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다"며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에 맞춰 MBC 측의 노동인권 의식에 책임을 묻고자 진정을 넣기로 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직장 내에서 지위 등을 이용한 괴롭힘을 금지하고 신고자나 피해자를 부당하게 처우할 수 없도록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올초 고용노동부가 개정 근로기준법을 공포했고, 이날부터 시행된다.
법에서 정의한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나 노동자가 직장에서 지위·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누군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에게 신고하면 사용자는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괴롭힘이 확인된 경우 조치해야 하고, 피해자에 대해선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
노동계에서는 형사법 등에 규정되지 않아 방치돼왔던 괴롭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첫발을 뗐다고 평가한다.
직장갑질 119 최혜인 상임노무사는 "상사에게 폭언을 들은 경우 형법상 모욕죄 적용이 가능하지만, 모욕죄는 다른 사람들이 그 폭언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공연성'이 충족돼야 한다"며 "단둘이 있을 때 이뤄진 폭언은 모욕죄 처벌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퇴사를 종용하거나 장기자랑을 시키거나 회식과 음주를 강요하는 것 모두 처벌이 어려웠다. 이제는 모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해 신고가 가능한 일들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현행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불이익을 줄 때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사업주가 신고를 받고 대응하지 않을 시엔 규제할 방법이 없다. 대응 의무는 있지만 의무 미이행에 대한 벌칙 규정은 없는 것이다.
최 노무사는 "여기에 신고자 신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고, 사업장 내 자율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때 행정관청이 개입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한계"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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