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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뱀 이야기 아시나요…"신성한 귀신" vs "퇴치의 대상"

등록 2025.02.02 14:31:05수정 2025.02.02 15: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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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푸른 뱀의 해 시작

뱀 신앙 근원은 무속서 확인



[서귀포=뉴시스] 입춘 절기를 하루 앞둔 2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보문사에 12간지(干支) 가운데 을사년(乙巳年)을 상징하는 뱀 조형물이 서 있다. 2025.02.02. photo@newsis.com

[서귀포=뉴시스] 입춘 절기를 하루 앞둔 2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보문사에 12간지(干支) 가운데 을사년(乙巳年)을 상징하는 뱀 조형물이 서 있다. 2025.02.02.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푸른 뱀' 해인 을사년(乙巳年)이 입춘인 3일부터 시작이다. 명리학, 역학에서는 한 해의 출발을 입춘으로 본다.

나무에 해당하는 을(乙)은 푸른색과 성장을 나타낸다. 푸른 뱀의 해로 불리는 이유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입춘이 드는 시간은 3일 오후 11시10분이다. 이 때  대문에 '입춘대길' 등의 글을 걸기도 하고 부적을 새로 교체하기도 한다.

뱀을 지혜와 변화를 상징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인 점도 현실이다.

이런 인식 외에도 제주에서는 뱀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있는데, 뱀을 '신성한 귀신'으로 여기는 풍습이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뱀을 신으로 여겨 죽이면 재앙이 따른다는 믿음…성리학자에게는 퇴치의 대상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뱀, 독사, 지네가 많은데 만일 회색뱀을 보면 차귀(遮歸)의 신이라 하여 죽이지 말라고 금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이 지리지에 대정현의 성황사를 일명 차귀당이라고 하고 뱀과 귀신에 제사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차귀(遮歸)는 사귀(蛇鬼)의 잘못이라고 기록했다.

조선 중기 문신인 김정(1486-1521)은 1520년 제주 유배의 생활을 기록한 제주풍토록에서 "(제주 사람은)뱀을 신이라 여겨 받든다. 뱀을 보면 술을 바쳐 빌며 감히 쫓아내거나 죽이지 못한다"고 전했다.

조선 선조의 7남 인성군의 셋째 아들로 1628년부터 1635년까지 제주유배를 한 이건(1614-1662)은 "구렁이와 뱀을 보면 돌아가신 조상의 신령과 같이 여겨 반드시 고운 쌀과 정수(淨水)를 뿌리면서 빌며 절대 죽이지 않는다. 만약 혹자가 죽이면 그 사람은 반드시 재앙이 있어 발뒤꿈치를 움직이지 못해 죽게 된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제주사람들이 뱀을 신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성리학으로 무장한 조선 사대부에게는 뱀은 그저 '퇴치의 대상'이었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입춘에 현관이나 대문, 몸에 지니는 부적. 2025.02.02.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입춘에 현관이나 대문, 몸에 지니는 부적. 2025.02.02. ijy788@newsis.com

김정은 "먼 곳에서 보아도 반드시 죽인다"고 했고, 이건도 "내가 8년간 있으면서 큰 구렁이를 죽인 것이 수백이고, 작은 뱀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재앙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천은(天恩)을 입어 생환하였다"고 전했다.

유학자들에게 뱀을 신으로 모시는 것은 ‘미신’으로 여겼으며, 교정하거나 교화해야할 부분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제주에서 뱀을 신으로 신봉한 유래는 무속신앙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김상헌(1570-1652)의 '남사록' 등 여러 고문헌에는 제주에서 "음사(淫祀)를 숭상한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무속신앙의 뿌리는 깊고, 널리 퍼져 있었다.

뱀 신앙의 뿌리는 무속

이런 제주의 무속신앙은 자연현상이나 인문현상을 지배하는 일반신, 마을의 수호신인 당신, 집안의 수호신인 조상신 등에 대한 '본풀이'를 하는 굿을 통해서 구현된다. 본풀이는 근본을 푼다는 뜻으로, 심방(무당을 이르는 제주말)이 굿을 할 때 제상 앞에서 노래하는 신의 내력담을 말한다.

[제주=뉴시스] 열두 수호신 가운데 여섯 번째 뱀신 조각상.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제주=뉴시스] 열두 수호신 가운데 여섯 번째 뱀신 조각상.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여러 신 가운데 뱀신은 일반신, 당신, 조상신에서 모두 거론될 정도로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뱀의 모습을 한 '칠성'이 집안의 부를 이루게 해주는 신(神)으로 좌정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칠성본풀이'를 통해서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집 뒤편에 자리잡은 '밧칠성', 고팡에 들어가 곡물을 지키는 '안칠성'을 모시기도 한다.

뱀 신앙의 칠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명과 복을 기원하는 대상인 도교의 '칠성신'과는 다르지만, 일부 역할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 뱀신의 출현경로를 분석해보면 김녕굴의 '괴노깃또' 뱀신은 재래신이고, 이에 비해 여드렛당신(또는 토산당신)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뱀신, 칠성안집은 중국에서 온 뱀신, 차귀당신은 열대지방에서 흘러온 뱀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뱀신을 모시는 마을 당신으로는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여드렛당이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당에 좌정한 뱀신은 딸에서 (시집가는)딸로 이어지면서 모심을 받고, 뱀을 죽이거나 모심을 중단하면 재앙을 당한다는 서사를 갖고 있다.

토산리 여성이 전도 각지로 시집가면서 뱀신을 모시는 여드렛당이 은밀하게 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지금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남아있더라도 은밀하게 모심이 진행되기 때문에 알기가 어렵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 서귀포시 한 마을의 여드렛당. (사진=뉴시스DB)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 서귀포시 한 마을의 여드렛당. (사진=뉴시스DB) ijy788@newsis.com


뱀 신앙,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

제주의 한 민속학자는 "뱀이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아먹는 등 이로운 존재이었기에 뱀을 신으로 받들어 모셨을 것이라는 추론이 있고, 북태평양 해양문화의 뱀 신앙의 유입이라는 견해도 있다"며 "뱀 신앙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환경과 농경·어업문화, 그리고 공동체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귀포=뉴시스] 입춘 절기를 하루 앞둔 2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보문사에 12간지(干支) 가운데 을사년(乙巳年)을 상징하는 뱀 조형물이 서 있다. 2025.02.02. photo@newsis.com

[서귀포=뉴시스] 입춘 절기를 하루 앞둔 2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보문사에 12간지(干支) 가운데 을사년(乙巳年)을 상징하는 뱀 조형물이 서 있다. 2025.02.02. photo@newsis.com


지금도 제주지역에서는 올레길이나 오솔길, 둘레길 등에서 쉽게 뱀을 접할 수 있다. 곳곳에 '뱀 조심'이라는 안내 문구가 있을 정도다. 이주민이나 장기체류객들은 뱀들의 출현에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한다.

고온다습한 기후환경, 땅 밑에 틈이 많은 화산섬 지질구조, 풍부한 먹이 등의 조건이 뱀이 서식하기에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제주에 서식하는 뱀은 도마뱀, 줄장지뱀, 대륙유혈목이, 누룩뱀, 실뱀, 유혈목이, 비바리뱀, 쇠살모사 등 8종이 관찰됐다.

이 가운데 비바리뱀은 1981년 한라산 사라오름 근처에서 처음 확인됐으며 현재까지 북방한계선인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ijy78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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