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루틴이 하정우를 만든다
10년만에 내놓은 세 번째 연출작 '로비'
골프 접대 나선 스타트업 대표 이야기
"지난 10년 감독으로서 정체성 찾았다"
"골프 하면서 느낀 묘한 흥미를 소재로"
"코미디는 세상을 보는 나의 방식 같아"
"좋은 작품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에서"
![[인터뷰]루틴이 하정우를 만든다](https://img1.newsis.com/2025/04/03/NISI20250403_0001808933_web.jpg?rnd=20250403144900)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배우 하정우(47)가 2013년과 2015년 영화 '롤러코스터'와 '허삼관'을 연달아 내놨을 때만 해도 어쩌면 앞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연기를 한 영화와 연출을 한 영화가 엇비슷한 비중으로 채워질 것 같았다. 연출에 도전한 배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처럼 단기간에 감독으로서 영화 두 편을 내놓은 전례는 없었고, 이 행보는 앞으로 감독으로 인정 받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였다. 그런데 그는 '허삼관' 이후 연출을 잊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간 출연한 영화만 13편, 이 중 1000만 영화가 3편, 800만명 이상 본 작품이 1편, 700만명 이상은 2편, 400만명 이상 1편일 정도로 그는 최고 흥행 배우였다.
그런 하정우가 10년만에 감독으로 돌아왔다. 새 영화 '로비'(4월2일 공개)는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를 생각 나게 하는 하정우스러운 코미디물이다. 그가 연기 외에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인터뷰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넉살과 능청과 호흡과 말장난을 버무린 듯하다. '롤러코스터' 같다는 건 말하자면 '로비'가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내놓은 영화 같다는 얘기다. 하정우에게 '연출작을 다시 내놓는 데 왜 10년이나 걸렸냐'고 묻자 그는 "감독으로서, 연출자로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다시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계속 시나리오를 개발했죠. 파파라치 언론사를 다룬 작품은 3고까지 끝낸 상태였고, LA 한인타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구상했죠. 그러다가 멈춰 세웠습니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더라고요. 자꾸만 상업적 성공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흥행도 중요하죠. 하지만 시작을 그렇게 하게 되니까 뭔가 불순함이 느껴졌달까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 나한테 맞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마침 그때 골프를 시작했던 때였고,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롤러코스터'처럼 풀어보자고 한 거죠."
'로비'는 골프 접대에 나선 사업가의 이야기다. 윤창욱(하정우)은 전기차 충전 관련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 회사 대표. 그가 이 사업을 계속 이어가려면 국가 주도 4조원 규모 스마트 주차장 사업을 따내야 하는데, 업계 라이벌의 막강한 로비력에 밀려 기회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제 그는 실력으로 인정 받겠다는 신념을 버리고 정부 실력자에게 골프 접대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영화는 윤창욱, 접대 받는 정부 관계자, 이 인물과 윤창욱을 연결해준 기자, 프로 골퍼가 함께 라운딩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하정우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에 골프를 처음 배웠다. 그는 골프장이라는 광활한 공간 안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소수의 사람이 모여 아무도 듣지 못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상황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골프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골프장 밖에서 드러내 놓지 않는 내밀한 욕망을 발산하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그런 거죠. 밖에선 인품이 대단하다고 알려진 분이 골프장에만 들어오면 극악무도해진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자주 봤어요. 그렇게 '운동을 빌미로 모인 이들이 어떤 일을 꾸며가는 이야기'를 떠올린 겁니다."
![[인터뷰]루틴이 하정우를 만든다](https://img1.newsis.com/2025/04/03/NISI20250403_0001808935_web.jpg?rnd=20250403144922)
접대 혹은 로비, 수조원 규모 국책 사업, 갑과 을, 조작, 뇌물 등 진지하고 심각하게 풀어내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감독 하정우는 이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고, 덜 불편하게 풀어낸다. '로비'의 끊이지 않는 수다와 호들갑은 처음엔 낯설어 보일 수 있어도 일단 관성이 생기고 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맞장구 치게 된다. 하정우는 "아마도 그 시각이 제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극 중 윤창욱의 사촌동생 호식이의 대사를 얘기했다. "인생은 다 우연 아닌가요."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건 중요합니다. 하루하루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할 겁니다. 그런데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삶을 멀리 떨어져서 볼 때 과연 그게 통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있어요. 어쩌면 이 세상은 그저 자연법칙대로 흘러가는 것인데, 어쩌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주기대로 흘러가는 것인데, 우린 그 인생 전체를 관장할 수 없으니까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 같은 겁니다. 그게 저에게는 코미디로 보였어요. 블랙코미디요."
분명 코미디 영화이지만 하정우는 이 작품을 어떤 영화보다 진지하게 찍었다고 했다. '로비'엔 하정우와 함께 김의성·이동휘·강해림, 박병은·강말금·차주영·최시원, 곽선영·박해수·송하늘·현봉식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수두룩하다. 하정우는 이들에게 코믹하게 할 필요 없이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촬영 전 수도 없이 대본 리딩을 하며 대사를 맞춰갔다. 전체 리딩만 10번, 장면 별로는 수십번 씩 리딩을 반복했다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봐도 연출가가 배우 연기를 정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아마도 그건 제 연기 스타일이 반영된 것 같아요. 철저히 준비하고 계산해서 정확하게 연기하려는 게 제 스타일이니까요. 그리고 이 영화엔 많은 캐릭터가 나옵니다. 계산과 약속이 없으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효율적으로 가지 못하고, 어쩌면 그 목적지로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통제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봤던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정우는 예술이라는 게 즉흥적으로 탄생할 수 없는 거라고 했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야 무언가 좋은 게 나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제가 운동선수의 루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운동선수와 루틴을 말한 것처럼 하정우는 운동선수가 매일 혹은 매주 경기에 나서는 것처럼 올해 하반기에 또 다른 연출작 '윗집 사람들'을 내놓을 계획이다. 층간 소음 문제로 만나게 된 두 부부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역시 코미디물이다. "아직 감독으로서 제 정체성이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엔 이른 것 같아요. 올해가 지나고 나면 무언가 보일 것 같습니다. 코미디만 할 생각은 없어요. 액션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킹스맨'처럼 양복 입은 사람들이 나오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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