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니까 특별히 소개해줄게"…감정을 파고드는 '돼지 도살 스캠'의 덫
체이널리시스 '2025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 발표
지난해 전세계 가상자산 스캠 피해액 최소 14조원
'AI 스캠' 폭발적 증가…관련 서비스 매출 1900% 증가

【서울=뉴시스】일러스트=전진우 기자
[서울=뉴시스]송혜리 기자 = #"요즘 너랑 얘기 나누는 게 너무 즐거워. 사실 나 이 얘긴 아무한테도 안 하는데,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비공개로 운용하는 가상자산 투자 플랫폼이 있어. 최근에 이걸로 수익률 200% 넘게 본 친구도 있어. 너도 관심 있으면 내가 초대해줄 수 있는데, 최소 입금은 1000달러부터야. 너니까 특별히 소개해주는 거야."
미국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기업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가상자산 스캠(사기) 피해액이 최소 99억달러(약 14조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기승을 부린 스캠 유형은 고수익을 미끼로 자금을 유도하는 '고수익 투자 스캠(HYIS)'과, 장기간 신뢰를 쌓아 피해자를 속이는 '돼지 도살 스캠(Pig Butchering Scam)'이었다. 이들 유형은 전체 스캠 유입 자금의 각각 50.2%와 33.2%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특히 HYIS는 여전히 가장 큰 자금 유입을 기록했지만, 수익 규모는 전년 대비 36.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돼지 도살 스캠'은 전년 대비 약 40% 수익이 증가하며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고전적인 고수익 투자 스캠이 주춤한 사이, 감정적 조작과 정교한 접근 전략을 앞세운 '돼지 도살 스캠'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확산되는 '돼지 도살 스캠'…소액 다건화로 진화
사기범은 피해자에게 암호화폐 투자를 권유한다. 초기에는 수익이 나는 것처럼 꾸며 점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게 만든 뒤 결국 모든 자금을 빼앗는다. 이 수법은 돼지를 살찌운 뒤 도살해 고기를 얻는 방식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이 스캠으로 인한 수익은 전년 대비 약 40% 증가했으며, 입금 건수는 무려 210% 증가했다. 반면 평균 입금액은 5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상이 다수로 분산되고 있으며 전략 역시 대중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과거에는 수개월에 걸쳐 관계를 형성한 후 고액을 노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금에는 지불액이 줄더라도 피해자와 관계를 형성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 더 많은 피해자를 노리는 수법이 늘고 있다. 키워드로는 '채용' 이나 '재택근무'등을 활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돼지 도살 스캠은 주로 동남아시아의 조직범죄 네트워크에서 비롯됐으나 현재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주 등으로 번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6월 인터폴이 나미비아를 포함한 전 세계 스캠 조직을 대상으로 대규모 작전을 전개했다. 나미비아 조직은 88명의 청소년을 스캠 범죄에 가담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12월에는 나이지리아 청탁 방지 기관은 투자스캠를 벌인 혐의로 중국인 48명과 필리핀인 40명을 체포했다. 이에 앞서 2023년 10월에는 페루 경찰이 페루로 인신매매된 말레이시아인 43명을 구출했다. 이들은 현지 스캠 조직에 의해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었다고 말레이시아 당국은 밝혔다.
폭증하는 'AI 스캠'…생성형 AI가 사기 범죄의 도구로
실제 AI 기반 범죄 서비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무려 1900% 이상 급증했으며, 약 200달러(약 28만원)에 판매되는 얼굴합성 서비스도 확인됐다.
엘라드 포크스 체이널리시스 사기사고 방지 제품 부문 책임자는 "생성형 AI는 인간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고수익, 저비용, 고확장성 사기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금융 기관에 대한 주요 위협인 스캠을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생성형 AI는 합성 및 가짜 신원 생성을 용이하게 해 스캠 범죄자가 실제 사용자를 사칭하고 신원 확인 절차를 우회할 수 있게 한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한 스캠범은 지난해 10월 22일 AI 소프트웨어를 구매한 뒤 3일 만에 첫 스캠 대금을 받았고, 9일 후인 10월 31일에는 또 다른 대금을 수령했다. 이는 AI 기술이 스캠 실행 속도와 효율성을 얼마나 높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체이널리시스 측은 "스캠 대응은 예방과 사후 집행 모두에 중점을 둬야 하며, 이를 위해 강력한 수사 자원 확보와 정부 및 지방 당국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상자산 ATM에 대한 규제와 같은 조치는 스캠 위험을 완화하고 소비자 보호에 기여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법집행기관, 규제당국, 민간 부문 간의 긴밀한 협력이 병행돼야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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