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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물질, 우주의 조연 아닌 주연?"…초기 우주 블랙홀 만들었을까[사이언스 PICK]

등록 2025.04.26 10:00:00수정 2025.04.26 1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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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없이 태어난 블랙홀…암흑물질이 자외선 유도해 직행 붕괴 촉진

우주 진화 순서도 뒤바꿀까…'블랙홀이 은하보다 먼저' 가능성

빛 없이 작용하던 암흑물질…초기 우주서 빛·열 방출 주도 가설

태양 질량의 수백만배에서 수십억배에 달하는 초거대 블랙홀 상상도. (사진=NASA) *재판매 및 DB 금지

태양 질량의 수백만배에서 수십억배에 달하는 초거대 블랙홀 상상도. (사진=NASA)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중력으로만 그 존재가 확인되고 우주의 구조를 유지하는 조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됐던 '암흑물질'이 초기 우주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기존 천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초기 우주의 '초거대 블랙홀'을 우주의 약 26.8%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만들어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26일 학계에 따르면 캐나다 맥길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논문 공유 아카이브(arXiv)에 기존 우주론이 설명하지 못했던 초거대 블랙홀의 생성 과정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거대한 별이나 은하가 생겨나기도 전인 우주 탄생 직후 나타난 초거대 블랙홀들을 암흑물질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최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을 비롯한 첨단 관측 장비들은 젊은 초기 우주에서 등장한 초거대 블랙홀들을 잇달아 발견하고 있다. 빅뱅 이후 '고작' 수억년 만에 태양 질량 수십억 배에 달하는 블랙홀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초거대 블랙홀들의 존재는 기존 천문학 이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별이 탄생하고 죽어 블랙홀로 진화한 뒤 주변 물질을 흡수해 초거대 블랙홀로 성장하기까지는 통상 수십억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발견된 초거대 블랙홀은 우주가 막 생겨난 지 몇억년 만에 이미 완성형으로 등장했다. 이론적으로 성장할 시간 자체가 부족했음에도 성장을 끝마친 셈이다.



이는 단순한 관측의 문제가 아니다. 초거대 블랙홀이 우주 초기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기존에 추정했던 우주 진화의 순서를 뒤엎게 한다. 은하가 먼저 생기고 그 중심에 블랙홀이 자리 잡는다는 가설과 달리 블랙홀이 은하보다 먼저 형성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우주의 구조 형성과 진화를 설명하는 기존 모델이 근본적으로 수정돼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결국 초기 우주에는 현재까지 인류가 파악한 것과는 다른 방식의 블랙홀 생성 경로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맥길대 연구팀은 이 다른 방식의 블랙홀 생성 경로로 암흑물질을 꼽았다.

기존에는 암흑물질이 우주 구조를 떠받치는 '중력의 그물망' 정도로 인식됐다. 암흑물질은 빛도 내지 않고 전자기적 상호작용도 없으며, 오직 중력으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은하의 회전속도나 중력 렌즈 현상 등을 통해 그 존재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맥길대 연구진은 초경량 암흑물질이 초기 우주의 가스 구름을 직행 붕괴(direct collapse) 형태로 유도해 별의 탄생을 거치지 않고 곧장 초거대 블랙홀로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이 언급한 초경량 암흑물질은 알려진 가장 가벼운 입자인 중성미자보다도 수십억배 더 가벼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연구진의 가설에서는 초경량 암흑물질이 가벼운 만큼 개별 입자라기보다는 파동처럼 퍼질 수 있는 특성을 가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같은 초경량 암흑물질은 양자 유체처럼 작용하며 은하보다 훨씬 큰 규모에서 밀도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특정 밀집 영역에서는 공명을 일으켜 에너지가 점점 증폭되고, 궁극적으로는 광자(빛)로 바뀔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가설이다.
은하 한가운데 놓여 빛을 흡수하고 있는 초거대 블랙홀의 모습. (사진=NASA) *재판매 및 DB 금지

은하 한가운데 놓여 빛을 흡수하고 있는 초거대 블랙홀의 모습. (사진=NASA) *재판매 및 DB 금지

거대한 별이 없는 초기 우주에서 블랙홀이 생기려면 대규모 가스 구름이 중력에 의해 붕괴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분자 수소(H₂)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데, 수소는 냉각 효율이 뛰어나 가스를 식혀버리게 된다. 이는 구름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별 무리로 바뀌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가스 구름이 거대한 블랙홀이 되지 못하고 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스구름이 별로 바뀌어버리면 블랙홀이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초기 우주에서는 블랙홀로의 진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거대 블랙홀이 되기엔 '별이라는 중간단계'가 방해물이 되는 셈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외선(UV)이다. 자외선은 분자 수소를 파괴해 냉각을 억제하고 구름 전체가 분열 없이 붕괴되도록 해 블랙홀로 직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초기 우주에는 자외선을 낼 별이 없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 지점에서 초경량 암흑물질이 광자로 바뀌며 자외선 방출을 유도하는 '임시 광원'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암흑물질이 빛으로 바뀌는 과정은 공명 상태에서 촉진된다. 특히 이 과정이 가스 구름 내부의 난류와 열평형화 현상과 결합되면 낮은 에너지의 광자가 점점 고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즉 초기 우주에 별이 없더라도 자외선을 뿜어낼 수 있는 '빛'은 존재했고, 그 빛의 공급원이 바로 암흑물질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가설은 아직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동료 평가도 거치지 않은 초기 연구 단계다. 다만 연구진은 제한된 조건 하에서 이 가설이 실제로 동작함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초기 우주에 초경량 암흑물질이 충분히 존재하고, 특정 밀도 분포를 이뤘을 경우엔 자외선 발생과 블랙홀 직행 붕괴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다.

만약 초기 우주의 초거대 블랙홀 형성에 대한 이번 가설이 향후 직접 관측이나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뒷받침된다면 암흑물질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뒤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껏 우주 구조의 무게 중심 역할만 해온 줄 알았던 암흑물질이 우주 진화의 가장 격렬한 과정인 블랙홀 탄생까지 주도했을지, 수십억년 전 초기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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