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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장도 사원도 ~님…무엇을 위한 파괴인가

등록 2021.12.15 09:50:46수정 2021.12.15 17: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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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장도 사원도 ~님…무엇을 위한 파괴인가

[서울=뉴시스] 이인준 기자 = 최근 몇 년간 재계에 유행처럼 번진 연공서열의 파괴는 '직급의 파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SK그룹은 계열사마다 '매니저', 'PL(프로젝트리더)' 등으로 단순화했다.

LG그룹은 '~님', 삼성전자도 호칭을 '프로' 등으로 통일했다.

카카오 등처럼 직급을 없애고 아예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서열과 직급 체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직급 파괴 확산은 능력주의 인사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요즘 재계에서 30대 임원, 40대 사장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연공 중심의 과거 기업 문화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재벌가 승계가 가속화되면서 그런 경향은 더 짙어졌다.

호봉제도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 옷이 됐다.

아무래도 세월만 가면 승진이 보장되는 인사 제도에 공감할 사람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한 곳에 성과만큼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성과급'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

올해 초 SK하이닉스가 촉발한 성과급 논쟁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5조원의 영업이익을 낸 하이닉스는 임직원 연봉의 20% 수준으로 성과급을 책정했다가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영업 실적이 좋지 못했던 전년 특별기여금과 같은 수준이라며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최태원 회장이 30억원의 연봉을 반납하고, 성과급 규모를 확대하며 논란이 일단락됐지만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공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태를 고려하면 당연하다는 반응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대기업 고액 연봉자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난도 있다.

문제는 회사와 직원 간 갈등의 원인이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구글, 애플 등 실리콘밸리식 인사 제도를 수입해와 인사·성과 관리 제도에 반영하고 있다.

대체로 불필요한 관리는 최소화하고, 자유와 책임은 극대화하는 것이 골자다. 사실상 성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무한 경쟁의 시장형 성과주의다. 수평적 조직을 표방하지만, 연봉은 극단으로 수직적이다.

반면 젊은 층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공정하지 않거나 성취를 느끼지 못하면 미련 없이 회사를 등지기도 한다. 단순히 돈만 많이 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전 세계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가 된 것도 이러한 변화의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은 직급의 파괴는 임원 수를 줄이기 위한 승진 수요 억제, 성과주의는 조직 슬림화를 위한 성과 관리 강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열심히 부르짖는 '성과주의'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성과주의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직급 파괴를 통해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지고, 조직의 창의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직급 파괴 행렬에 동참했다가 다시 복귀하기도 한다. 책임자가 명확지 않아 효율이 떨어지고, 업무 혼선이 생기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다. 연공서열·직급·호칭 파괴가 혁신을 위한 혁신, 습관성 혁신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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