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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 태극전사' 대거 등장 첫 올림픽…"순혈주의 약화"

등록 2018.02.24 14: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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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뉴시스】지난 20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 댄스 경기에 출전한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선수. 2018.02.20.

【강릉=뉴시스】지난 20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 댄스 경기에 출전한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선수. 2018.02.20. 


30년 전 서울올림픽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상
4년 전 소치 때도 귀화 태극마크 단 1명…이번엔 19명
"한민족 순혈주의 깨졌다고 볼 순 없지만 약화 방증"
자국 대표선수 뽑는데 출신 국적 안 따지는 나라 많아
"국경 구분 무의미 글로벌 시대…민족 관념 재고해야"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어? 한국 국가대표가 한국인이 아니네?"
 
 얼마 전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종목의 프리 댄스 경기에 나선 한국 국가대표 남자 선수 알렉산더 겜린(25)을 TV로 시청하던 국민 다수가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요인 아리랑을 배경으로 빙판 위에서 한복을 입고 연기를 펼친 겜린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민족(韓民族)'이 아니다. 지난해 7월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얻은 미국인이다. 사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민유라(23)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이민 2세로 재미교포 출신이다. 

 남녀 아이스하키의 주역인 캐나다 출신 맷 달튼과 미국 출신 랜디 희수 그리핀, 모두 러시아 출신인 인티모페이 랍신·안나 프롤리나·에카테리나 에바쿠모바는 한국 대표로 바이애슬론에 출전했다.

김마그너스는 노르웨이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크로스컨트리 대표로 설원을 달렸다. 독일 국가대표 출신 에일린 프리쉐는 루지 여자 싱글 부문에서 한국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등 다양한 국적 출신인 외국인들이 역대 어느 올림픽에서보다 국가대표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강릉=AP/뉴시스】지난 18일 강원도 강릉 하키센터를 찾은 관람객들이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서 체코와 스위스 남자 하키 예선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 2018.02.18

【강릉=AP/뉴시스】지난 18일 강원도 강릉 하키센터를 찾은 관람객들이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서 체코와 스위스 남자 하키 예선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 2018.02.18

  선수 뿐만이 아니다. 남녀 아이스하키 팀을 이끌었던 백지선(미국) 감독과 새러 머리(캐나다) 감독,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은 네덜란드 출신 밥 데용 등 외국인 코치·감독들도 더러 있다.

 30년 전 서울올림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푸른 눈', '노란 머리'의 낯선 외국인이 평창 올림픽 전 대거 귀화하면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인 선수가 설 자리를 빼앗은 셈’, '돈 주고 메달을 사는 것’ 등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지만 평창올림픽에는 국가대표 144명 중 19명이 귀화 외국인 선수로 채워졌다. 심지어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25명 엔트리 중 외국인이 7명에 달한다.

 불과 4년 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때만 해도 귀화 외국인 선수는 화교 출신 공상정(여자 쇼트트랙)이 유일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자국 대표선수를 뽑는데 출신 국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올림픽위원회(USOC)는 자국 선수의 인종, 출신국적을 규정상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고 있지만 평창올림픽 선수단 243명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시아계 미국인이 각각 10명씩 차지했다.

 한때 우리나라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단군 신화를 숭배하고 한민족·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역사의 근간으로 삼아 국가대표 구성 또한 고유의 정체성을 당연시했다.
【강릉=뉴시스】지난 12일 강원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B조 조별 예선 2차전 남북 단일팀과 스웨덴의 경기를 응원하는 국민들의 모습. 2018.02.12.

【강릉=뉴시스】지난 12일 강원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B조 조별 예선 2차전 남북 단일팀과 스웨덴의 경기를 응원하는 국민들의 모습. 2018.02.12. 

최근에는 파란 눈동자, 노란 머리, 검은색 피부 등 갈수록 다양한 인종·국적 출신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순수 단일민족 국가의 개념은 희석되고 다문화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시대 흐름을 반영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내재된 뿌리깊은 순혈주의를 허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경 구분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시대에 한민족이라는 관념에 얽매이는 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종목에서 실력이 약한데 메달 획득이 취약한 종목 위주로 외국인 선수를 받아들인 평창올림픽을 놓고 순혈주의가 깨졌다고 볼 순 없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국제 결혼과 결혼 이주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도 순혈주의가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평창올림픽에 외국인 귀화 선수들이 많이 참여한 것도 이런 큰 흐름에서 약화된 순혈주의를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을 낯선 이방인으로 비유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이 늘고 있지만 배우자가 백인인지 혹은 흑인인지 피부색깔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도 온도차가 있다.
  
 젊은 세대의 결혼 기피, 신생아 출산 급감에 따른 인구 감소를 걱정하면서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조선족이나 각국 이민자에 대한 관심이나 포용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독도 한국 영유권 관련 연구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호사카 유지 교수는 2003년 귀화한 한국인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일본인으로 생각한다.
【평창=뉴시스】지난 11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남자 스프린트 10km 경기에서 역주하는 대한민국 티모페이 랍신의 모습. 2018.02.11.

【평창=뉴시스】지난 11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남자 스프린트 10km 경기에서 역주하는 대한민국 티모페이 랍신의 모습. 2018.02.11.

정부에 따르면 10년 이상 국내에 장기 정착하는 다문화가정 비율이 늘어나면서 다문화가족의 자녀 수도 20만명에 달한다. 다문화 가정 자녀 대다수가 7~12세의 초등학령기에 진입했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포용하지 않고 한민족이라는 '울타리' 밖에 방치하게 될 경우 우리나라도 머지 않아 사회에 불만을 품은 '외로운 늑대(Lone Wolf)'를 걱정하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치안당국도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우려하며 주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단일 민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우리'라는 용어로 자국민과 외국인을 구분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면서 "미국만 해도 다양한 국적 출신이 모여 살고 있는 선진국 아닌가.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 민족'이라는 용어를 가급적 쓰지 않고 순혈주의를 깰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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