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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②백신은 '핵무기급' 전략자산…패권 겨루는 백신외교

등록 2021.08.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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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미국이 동남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코백스를 통해 기부한 백신. (사진: 미 국무부) 2021.8.25. *재판매 및 DB 금지

[런던=뉴시스]이지예 기자 = "거대하고 신속한 작전이다.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미국에서 본 적 없는 대대적인 과학·산업·물류적 노력이 될 것"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작년 5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초고속 작전'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가장 먼저 개발하기 위해 민관을 총동원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은밀한 작전은 인류 최초의 핵무기라는 결실을 맺었고, 미국의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곧 종전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2차 대전 이후 인류 최대의 위기로 불리고 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세계 각국의 사회·경제를 초토화하면서 '보건 안보'는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로 새롭게 떠올랐다.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이 포스트코로나 시대 국제사회의 권력 지형을 좌우할 열쇠로 주목받는 이유다.

스페인 싱크탱크 엘카노 로열 연구소는 2차 대전 당시 핵무기 개발은 미국에 전 세계적 권력과 패권을 안기는 결과를 낳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백신은 과거 핵무기와 같은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백신이 지정학적 경쟁의 또 다른 '무기'가 됐다는 얘기다.

패권 경쟁에 들어선 미국과 중국 모두 팬데믹 시대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략 자산으로서 백신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앞다퉈 자국산 백신 개발에 성공한 양국은 백신 영토 확장을 위한 외교전에도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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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AP/뉴시스]필리핀에 중국산 백신을 실은 화물기가 도착한 모습. 2021.8.20.


美 "2차 대전 민주주의 무기고…이제 '백신 무기고' 되겠다"
미국은 전후 시대 패권국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백신 선도국'이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를 제외하면 화이자, 모더나, 얀센(존슨앤드존슨) 등 현재 주요 선진국들에서 통용되고 있는 백신 3종은 모두 미국 제약업체들이 개발했다.

미국 국무부의 '코로나19 백신 기부' 현황을 보면 미국은 26일 기준 백신 1억1479만470회 분을 총 73개국에 기부했다. 한국 등 동아시아·태평양 10개국 및 대만, 유럽·유라시아 4개국,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27개국, 중동·북아프리카 4개국, 남·중아시아 8개국, 서반구 19개국 등이다. 기부 대상은 미국의 핵심 동맹·파트너이거나 개발도상국들이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진·사망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때문에 당초 '자국민 백신 우선접종'을 강조하며 백신 나눔을 꺼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내 접종률이 올라가면서 올해 2분기부터 '백신 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이달 26일 기준 미국 전체 인구의 52%가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미국은 백신 8000만 회분을 해외에 공급한다는 계획을 지난 4~5월 사이 연이어 발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로 백신 5억 회분을 92개 저소득국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차 대전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의 무기고였던 것처럼 코로나19 팬데믹과의 싸움에서도 우리가 나머지 세계를 위한 백신 무기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 노선을 뒤집어 미국의 국제 리더십을 복원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백신 외교도 대외 관여를 확대하고 다자협력 무대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형태다. 미국의 기부 물량 대다수는 유엔이 주도하는 국제 백신 협력체 코백스(COVAX)를 통해 배포된다. 리사 엑켄윌러 국제생명윤리학회(IAB) 부회장은 더힐 기고문에서 "미국이 단순하고 무모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더 큰 글로벌 보건 연대를 향해 도덕적 태세를 전환했음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백신 외교는 뜻이 맞는 자유민주주의 동맹·파트너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한다는 외교안보 전략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4자 안보 협의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는 3월 화상 정상회의에서 '백신 파트너십'을 합의하고 제조 역량 확대와 인도태평양 지역 내 접종 지원을 이끌기로 했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 차단을 위해 G7과 추진하는 '더 나은 세계 재건'(B3W) 구상을 통해서도 전 세계 백신 보급을 위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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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말레이시아에 미국이 기부한 코로나19 백신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 미 국무부) 2021.8.25. *재판매 및 DB 금지


中 "인류 건강 공동체 함께"…'보건 일대일로' 박차
코로나19 확산세를 먼저 잡은 중국은 미국보다 한발 앞서 백신 외교에 돌입했다. 8월 초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이 작년 9월부터 100개국 이상에 대한 기부와 60여 개국 수출을 통해 7억7000만 회분 넘는 백신을 세계에 제공했다며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큰 공급 규모라고 밝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안에 전 세계에 백신 20억 회분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이 개발한 시노팜, 시노백 코로나19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AZ, 얀센 등 서구권 백신과 나란히 세계보건기구(WHO)의 긴급사용 승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비서구권 백신 중 WHO 승인을 받은 건 중국산 백신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중국 백신 역시 코백스를 통해 저소득 국가들에 풀리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미국과 유럽이 자국민 우선 접종에 집중하는 사이 자국산 백신으로 동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 세계 구석구석의 개도국들에 적극적으로 물량 공세를 펼쳤다. 또 '인류 보건 건강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자국 백신이 '전 세계 공공재'라고 선전하고 있다.

자오수이성 미국 덴버대학 교수는 중국의 백신 외교를 분석한 '이스트 아시아 포럼' 기고문에서 "백신을 개도국에 보급하면서 자국이 코로나19의 기원이 아니라 감염병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처음 공식 보고된 뒤 전 세계에 퍼졌다.

중국의 백신 외교는 시진핑 주석의 대외 전략 사업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의 연장선이다. 중국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무역 확대와 인프라(사회기반시설) 투자로 연결한다는 구상과 더불어 의료장비 지원과 관련 기술 협력을 핵심으로 한 '보건 실크로드'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산하 벨퍼스쿨은 중국의 백신 지원에는 ▲이미지 복구 ▲국제기구 내 입지 다지기 ▲국제적 보건 기여국으로 인정받기 ▲정치적 영향력 확대 ▲역내 국가들과의 경제적 통합 심화 ▲내부 산업 활성화 등 다양한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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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모르즈비=AP/뉴시스]파푸아뉴기니의 한 병원에서 중국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2021.7.14.


중국산 '물백신' 논란…백신 빌미 개도국 中종속 우려도
중국산 백신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엇갈린다. '물백신'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다. 태국, 인도네시아는 중국산 백신 접종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서구산 백신을 교차 또는 추가 접종하기로 했다. 중국산 백신으로 접종 완료율 70%를 이룬 칠레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유럽연합(EU) 27개국 중 유일하게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 헝가리는 '항체 미생성' 논란에 3차 접종을 시작했다.

백신과 관련해 중국이 제공하는 '수치'도 논란거리다. 중국 정부는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 높은 품질을 강조하고 있지만 서구 백신과 비교해 임상시험 자료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해외 보급 내역을 뜯어보면 '기부'보다는 '판매'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이징 소재 '브리지 컨설팅'은 23일 기준 중국의 백신 판매량을 11억1900만 회분, 기부량 4600만 회분, 보급량 6억5300만 회분으로 자체 집계하면서 "판매량이 기부량의 약 24배"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백신 공급 대부분은 '무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인프라 지원 사업을 빌미로 개도국을 중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종속시킨다는 우려를 키운 바 있다. 미국외교협회(CFR)가 운영하는 보건 이슈 분석 웹 '싱크 글로벌 헬스'(TGH)는 중국이 개도국들에 백신을 제공하고 홍콩, 대만, 티베트,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 자치구 등 외부 비판이 거센 문제들에 대해 지지를 얻으려 한다고 꼬집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동남아의 경우 중국이 백신 보급에 선발주자로 나서긴 했지만 미국·유럽산 백신에 대한 대중 선호도가 높으며 역내 접종을 위해선 수년 간의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이 주도적인 백신 외교를 펼친다면 국제 리더십을 재확인하고 다른 나라들이 백신 때문에 중국에 양보를 해야하는 상황 역시 막을 수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에겐 일석이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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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세네갈에 미국이 기부한 백신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 미 국무부) 2021.8.25. *재판매 및 DB 금지


백신 수출 통제·부스터샷…美, 자국 우선주의 못털어내
미국은 백신 외교에 나서면서도 '자국 우선주의'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국방물자생산법(DPA)을 활용해 미국 내 생산 백신과 백신 원료를 자국에 우선 공급하도록 했다. DPA는 전시 같은 위급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필수 물자 조달 강화를 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으로 1950년 한국전쟁 때 제정됐다.

미국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한숨 돌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백신의 지적재산권 일시 면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백신 개발업체는 물론 독일 등 몇몇 유럽국까지 기술 유출과 혁신 저해를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백신과 관련해 사실상 수출 제한이나 마찬가지인 조치를 더 많이 푸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앞장서서 전국민 백신 '부스터샷'(추가 접종)을 도입했다. 3억 명 넘는 미국 인구 대다수가 '3차' 접종을 받으면 다른 나라의 백신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높다. 백악관은 저소득국 백신 공유와 미국인 부스터샷은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국제사회의 눈총이 따갑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미국 같은 부자나라의 부스터샷으로 '백신 빈부격차'가 심화하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여전히 '미국 우선주의'와 '백신 민족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난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이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에 방역 물자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반면 미국은 전 세계 의약품을 독점하려 한다고 말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최근 해외 백신 공유를 늘리고 나선 데 대해서도 이웃 나라들을 중국 비방과 견제에 가담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의도라고 깎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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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신화/뉴시스]중국이 우간다에 기부한 코로나19 백신. 2021.8.1.




◎공감언론 뉴시스 ez@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