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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지역화폐, 대선 앞두고 '선심성 돈 풀기' 돼선 안 된다

등록 2021.12.10 16:07:28수정 2021.12.10 18: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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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지역화폐, 대선 앞두고 '선심성 돈 풀기' 돼선 안 된다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10만원을 충전하면 해당 카드에 11만원을 채워준다. 지역화폐라는 이름으로 10%를 더 얹어주는 것인데, 해당 예산을 모두 소진하기 전까지는 최대 50만원까지 매달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잘 활용하면 월 5만원씩 1년에 60만원의 나랏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동네에서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는 사람이라면 지역화폐 카드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확히 구분하면 이는 중앙정부 지갑에서 나오는 돈은 아니다. 그간 지역화폐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알아서 발행해왔다. 사업 총괄은 행정안전부에서 맡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 자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실제로 2019년 정부의 지역화폐 지원 예산은 844억원에 불과했다.

지역화폐에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은 소비 활성화를 위한 용도로 활용되면서다. 올해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지역화폐 지원 예산으로 1조2522억원을 편성했다. 2년 새 지원 규모가 15배가량 커진 셈이다.

그 사이 국고 보조율은 8%까지 늘어났다. 10만원을 충전할 때 얹어주는 1만원 가운데 8000원은 정부, 나머지 2000원은 지자체 몫이라는 얘기다. 자신들의 곳간을 풀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액을 2019년 2조2573억원에서 올해 20조2000억원으로 약 9배 늘렸다.

지역화폐가 최근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여당은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30조원어치의 지역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정부의 지원 예산은 앞서 제시한 2403억원에서 6053억원으로 늘어났다.

당초 올해 말까지만 지역화폐를 한시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었던 정부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3650억원에 달하는 지출이 더해진 것이다. 정부가 1년에 쓸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다. 결국 이만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업의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없앨 수밖에 없다.

'곳간지기' 기획재정부의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증액에 반대했던 이유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지역화폐 이슈로 여당과 각을 세우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도 나온다. 단지 정상화 차원에서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 예산을 줄였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자체도 내년 살림 꾸리기가 빠듯해졌다. 정부가 내년부터 15조원어치의 지역화폐에 한해 4%의 보조율만 적용하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10%의 혜택을 주려면 1만원 가운데 6000원은 지자체의 몫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나머지 15조원어치는 온전히 지자체 예산으로만 집행해야 한다. 여당에서 주장한 대로 30조원어치의 지역화폐를 발행하려면 총 3조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정부 지원분을 제외하면 약 2조4000억원은 지자체 곳간에서 꺼내 써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든 지자체든 나라의 곳간은 세금으로 채워진다. 언뜻 10%의 '조건 없는 혜택'이 제공되는 지역화폐로 느껴지지만 국민의 혈세로 추진되는 사업일 뿐이다.

6조원에 불과했던 내년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30조원으로 늘렸다고 공치사할 것도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더 뜯어낸 것은 성과가 아니라 그만큼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사업 규모가 더 커진 것으로 봐야 한다.

돈을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잘 써야 한다. 더욱이 나랏돈을 마중물로 삼아 시장에 30조원이나 되는 자금을 풀었다면 그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내년 나랏빚 규모가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지는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렇다. 일부의 우려처럼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뤄진 '선심성 돈 풀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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