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카타르월드컵이 강자들에게 남긴 교훈

등록 2023.02.20 17:46:41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타조 흉내 내던 독일, 일본에 역전패 수모

춤판 세리머니 하던 브라질, 8강서 짐 싸

패자 조롱하는 승자, 향후 존중 받지 못해

[기자수첩]카타르월드컵이 강자들에게 남긴 교훈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2022 카타르월드컵이 끝나고 해가 바뀌었지만 지난 월드컵에서 느낀 감동은 아직 생생하다.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역대 최고 선수 리오넬 메시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축구팬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카타르에서 4강 진출 이변을 연출한 모로코는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을 주최하며 축구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카타르월드컵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변이 잦았다. 약체로 평가되던 나라가 예상을 깨고 전통의 강호를 격침시키는 장면은 축구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강팀 선수들이 약팀을 조롱하다가 참패하는 장면들은 인생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독일과 일본이 벌인 조별리그 E조 경기였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독일이 일본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공격 점유율이 74% 대 26%일 정도로 독일은 일본을 가둬 놓고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독일의 1-2 역전패였다.

독일은 방심했다. 방심했음이 드러난 결정적인 장면이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독일 국가대표팀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는 1-0으로 앞서던 후반 19분 일본 공격수 아사노 타쿠마와 속도 경쟁을 벌였다. 수비수이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주력을 자랑하는 뤼디거는 골라인 근처에 근접하자 타조처럼 보폭을 넓히고 양 발을 교차로 높이 들며 우스꽝스럽게 뛰었다. 공은 골라인을 넘어갔고 독일 소유가 됐다. 뤼디거는 웃으며 돌아섰다.

뤼디거가 상대보다 앞서있음을 보여줘 공 소유를 명확히 하려 했다는 관측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뤼디거가 아사노를 조롱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신의 주력이 더 뛰어남을 과시해 아사노에게 좌절감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뤼디거의 이 같은 행동 이후 일본이 각성했다. 역습에 나선 일본은 도안 리츠와 아사노의 연속골로 경기를 뒤집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반대로 독일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한국전에 이어 월드컵 무대에서 2경기 연속으로 아시아팀에 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또 다른 우승후보 브라질 역시 16강전에서 한국을 조롱했다가 그 대가를 치렀다.

브라질은 조별예선에서 체력이 소진된 채 16강에 올라온 한국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4골을 터뜨렸다. 브라질은 득점에 성공할 때마다 작정한 듯 신명나는 춤판을 벌였다. 브라질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세르비아전에서도 춤 세리머니를 했지만 이때는 한국전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선제골 때는 골을 넣은 비니시우스를 비롯해 네이마르와 파케타, 하피냐가 늘어서서 손동작이 가미된 흥겨운 춤을 췄다.

 3번째 골이 들어가자 득점자 히샤를리송이 브라질 벤치 쪽으로 가서 치치 감독과 함께 단체로 춤을 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장면을 벌였다. 득점 직전 공을 머리 위에서 튕기며 마크맨인 황인범을 조롱했던 히샤를리송은 감독까지 동원해 춤을 추며 한국에 더욱 큰 좌절감을 안겼다.

우승이라도 한 듯 춤판을 벌이던 브라질은 다음 경기인 8강전에서 탈락했다. 한국을 대파한 브라질은 16강에서 일본과 승부차기까지 치른 크로아티아를 체력 면에서 압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 내용은 딴판이었다. 크로아티아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며 브라질에 맞섰다. 브라질은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8강전 탈락 징크스에 시달려온 브라질은 크로아티아전 내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짐을 싸고 말았다.

이처럼 강팀이 약체를 무시하는 사례는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광주FC 이정효 감독은 지난해 K리그2 초보 감독으로 부임한 뒤 2부 리그 감독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고 최근 털어놨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무시를 당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감독들로부터 멸시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움을 겪은 이 감독은 부임 첫 해 25승11무4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K리그2 역대 최단 기간 우승을 확정했고 K리그2 최다승-최다승점(기존 20승, 73점), K리그2 홈 최다 연승(10연승), 홈 전 구단 상대 승리 등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부로 승격한 이 감독은 올해는 2부가 아닌 1부 리그에 출전한다.

이 같은 사례는 승자가 왜 겸손한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어느 누구도 영원한 강자일 수 없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어느 영역이든 승자가 패자를, 강자가 약자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며 존중하지 않으면 훗날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지금 권력을 손아귀에 쥐었다고 해서, 지금 우세하다고 해서 힘으로 약자를 짓누르면 일시적으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필히 약자의 승부욕과 분노를 자극하고 언젠가 입장이 바뀌는 날이 오게 된다.

더욱이 다원화된 현 사회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자리를 바꿀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자리가 바뀌는 간격도 좁아지고 있다. 영역을 막론하고 승리의 시간은 짧고 패배의 시간은 길어졌다. 승자일 때 패자를 존중해야 추후 자신이 패자가 됐을 때 존중을 기대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