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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혐오 정치가 우연히 준 순기능에 '씁쓸한 뒷맛'

등록 2022.03.28 15:27:11수정 2022.03.28 20: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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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진형 정치부 기자

[서울=뉴시스] 정진형 정치부 기자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장애인 시위로 2호선이 멈췄대." 지난 목요일 퇴근한 아내가 코트를 건네주며 말했다. "지하철 타는 팀원들은 더 힘들었을 거야" 아내는 자가용으로 통근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통근길 이동권 시위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28일까지 25차례 열렸다. 지금까지는 동선이 겹치지 않았거나 그마저도 재택근무로 마주칠 일이 줄어들었으니 운 좋게 비켜간 셈이다.

여느 때처럼 모르고 지나갔을 시위는 예비 집권여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엄정 대응' 입장 덕에 수면 위에 올라왔다. 이 대표의 장애인 혐오가 예상도 못한 '씁쓸한' 순기능을 한 모양새다. 뒷맛이 개운치 않지만 이슈는 된 셈이다. 이 당대표와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역사의 92.3%(254개 역)는 엘리베이터가 단 한 곳이라도 설치됐고, 2024년까지는 전 역에 100%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 올해만 10개 역에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된다.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100% 들어선다면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단칼에 해결되는 걸까. 정확히는 더이상 장애인 단체가 시민의 출퇴근을 '볼모'로 삼을 명분을 잃는 것일까.

서울연구원이 2020년 연구한 '서울시 대중교통시설 교통약자 접근성 평가지표'는 종래의 개별시설의 설치율에 집중한 지표로는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이 반쪽에 그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연구에서 도시철도 역사 반경 500m의 접근성 수준을 동선별로 따져본 결과 고속터미널역은 C0~C+, 서울역은 C0~B-에 머물렀다. 역사 내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은 확충돼가고 있지만 교통약자들은 좀처럼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면 지하철역까지 가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의 장애인 콜택시(특별교통수단) 이용자수는 지난해 기준 3만7000명에 달하지만 운영 대수는 699대(콜택시 619대, 다인승 버스 1대, 서울장애인버스 2대, 개인택시 77대)에 그친다.

이마저도 법정 기준대수인 장애인 150명당 1대 기준에 비춰보면 서울시의 운영 형편은 나은 수준이다. 국토부의 2020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기, 경남, 제주를 제외한 광역시도는 모두 특별교통수단 보급률이 50~70%선에 머물렀다.

저상버스 도입률도 열악하다. 그나마 높은 편인 서울시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지난해 기준 65.6%다. 경기도의 도입률은 14% 수준이다. 이재명 후보가 경기지사 시절 도입률 40%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설령 지자체나 공사가 '해결'을 약속해도 예산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재정당국의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삭감되거나, 막상 사업비가 편성돼도 이를 공동 부담해야 하는 지자체의 재정여력이 안 돼 불용되기 일쑤다. 전장연이 대선 과정에서 각 후보들에게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촉구한 이유다.

결국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가 들어선다 한들 거기까지 다다르는 장애인의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지하철이 여전히 시위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들로선 그나마 쉬운 접근성 속에 수많은 사고에 맞닥뜨려야 했던 교통수단에 대한 답답함이 담긴 셈이다.

이를 대하는 정치권의 자세도 생각해볼 지점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대표 시절 두차례의 명절 귀성인사에서 전장연의 기습시위로 곤욕을 치렀다. 행사가 아수라장이 됐지만 그게 엄단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야당 정치인을 '정신 장애인'으로 빗대 설화를 자초했던 부채감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지도부가 이들과 면담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민을 가르진 않았다.

하지만 기성 정치가 가졌던 염치마저도 내던진 요즘이다. 예비여당 대표는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초래한다"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했다. 그가 비난한 시위에 같은 당 시각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이 참석했다. 이 의원은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에 불편을 겪게 했다"면서 지하철 역사에서 무릎을 꿇었다. 장애인의 심정을 잘 아는 이 의원이 시위에 참석해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새삼 조망받게 됐다. 지난 대선처럼 '혐오 정치'가 우연하게 주는 역설적 순기능이 개운치 않은 이유는 예비여당 대표의 구태정치 때문일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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