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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과연의 우주발사체 주도권, 민간 이양 고려할 때

등록 2022.04.08 11:00:00수정 2022.04.08 11: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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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과연의 우주발사체 주도권, 민간 이양 고려할 때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가 지난 30일 순수 한국 기술로 개발한 고체 연료 추진 우주 발사체 성능 검증을 위한 첫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이는 지난해 5월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에 따른 것이라는 게 국과연의 설명이다. 지침 종료로 한국은 미국 허락 없이도 고체 연료를 활용한 우주 발사체를 쏠 수 있게 됐다. 국과연은 지침 종료 후 2개월 만인 7월 고체 추진 기관 연소 시험에 성공하더니 이로부터 8개월 만에 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를 우주 공간에 쏴 올렸다.

국과연은 추가 검증을 완료한 뒤 이르면 2024~2025년에 소형 위성 또는 다수의 초소형 위성을 우주 발사체에 탑재해 지구 저궤도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런 국과연의 질주를 바라보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시선이 곱지 않다. 항우연은 액체 연료 우주 발사체인 누리호를 만드는 기관이다.

항우연이 국과연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간 항우연이 우주 개발 사업을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강공 속에 이뤄진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를 계기로 국과연이 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를 손에 넣게 된 국과연이 이제 직접 우주 개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각종 무기 체계 개발 사업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국과연은 우주 개발 사업을 먹거리로 여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과연은 항우연을 상대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눈총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군 기술 협력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국과연은 군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 공유에 인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항우연은 우주 발사체 관련 공동 플랫폼을 만들어 민간에 이전하고 염가에 대량 생산하자는 등 제안을 했지만 국과연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연의 독점욕이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과연의 이런 태도는 기관들 사이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국과연은 민간 방위 산업체들과 일하는 과정에서도 고압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자칫 국과연에 밉보였다가 사업을 수주하지 못할까봐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국과연은 우주 발사체를 포함해 다양한 연구 개발 사업에서 설계 등 핵심 과업을 독점하고 있다. 방산 업체는 체계 통합 등을 맡아 경험을 쌓고 싶어 하지만 국과연은 설계 등 핵심적인 부분을 민간 업체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국과연은 설계를 하고 방산 업체는 제작만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업체들이 체계 통합 역량을 키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국과연은 우주 발사체 사업으로 확보한 기술을 민간으로 이전(스핀 오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업체는 많지 않다.

다른 무기 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보통 기본 설계를 국과연이 하고 제작을 위한 상세 설계를 방산 업체가 맡다 보니 국과연이 원하는 수준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국과연은 원가(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고사양 부품을 원하지만 업체는 정해진 예산으로 이 사양을 맞추기 쉽지 않다.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이너스 수주를 하기도 한다. 국과연이 주도하는 무기 개발이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방산 업체들이 촉박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국과연의 이런 태도에 업체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국과연 연구원들은 은퇴 후 방산 업체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전관예우까지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처럼 국과연이 방산 업체들을 수평적인 관계로 여기지 않는 이상 관 주도 우주 개발과 무기 개발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처럼 스페이스X나 버진갤러틱 등 민간 우주 기업들이 혁신적인 기술과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우주 개발 시장을 혁신하는 일은 한국에서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나아가 국과연이 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방부 산하 무기 개발 기관인 국과연이 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 개발을 홍보하면 외국은 이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국과연이 지금처럼 고체 연료 우주 발사체 기술을 독점할 경우 북한처럼 위성을 핑계로 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과연이 지금이라도 스스로 우주 발사체 개발 주도권을 민간에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권위주의 체제인 중국마저도 우주 개발 사업에 민간 스타트업을 10여개 참여시키고 군은 뒤에 물러서 있다고 한다. 현재 방식으로는 적어도 우주 개발 분야에서는 한국과 북한이 별로 다를 바 없다는 비웃음을 사게 된다. 국과연은 우주 발사체 성과를 자화자찬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집중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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