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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박지현 '자성· 쇄신'과 지도부 '돌출 행동' 간극 메워야

등록 2022.05.27 13: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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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닷새 전 선거 결과만 기억할 게 아니라 5년 간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내로남불이라 불린 행태를 더 크게 기억해야 한다.  47.8%라는 국민적 지지에 안도할 게 아니라 패배의 원인을 찾고 뼈저리게 반성하고 쇄신해야 하는 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민주당의 과제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3월14일 비상대책위원장 영입 후 첫 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민주당의 대선 패배 원인을 기득권 정치와 내로남불 행태로 진단하고 반성과 쇄신을 다짐했다.

윤호중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같은 자리에서 "오늘 시작하는 비상대책위는 국민의 과녁이 되겠다. 고치고 바꾸고 비판받을 모든 화살을 쏴주시기 바란다"며 "처절한 자기 성찰과 반성의 토대 위에서 뿌리부터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고 호응했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민주당은 박 위원장의 사과와 쇄신론으로 자중지란에 빠졌다.

따지고 보면 박 위원장은 그저 제역할을 했을 뿐이다. 0.73%포인차로 대선에서 아깝게 지고나서 반성과 쇄신을 임무로 주고 데려온 인물이다.

지난 두 달 박 위원장은 당최 그 강은 언제 건널 수 있을지 모를 조국 전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입법 강행으로 지지율 역풍을 맞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에서는 실리를 들어 신중하자고 했다.

수행비서 성폭행으로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부친상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화환을 보낸 것을 비판하고 당내 성비위 문제가 제기된 박완주 의원의 신속 제명을 주도했다. 회의 참석자는 'ㄸ'로 들었다는데 'ㅉ'이라고 해명한 최강욱 의원 징계 지시를 내린 것도 그다.

대국민 기자회견을 자청해 10초간 허리 숙여 사과하고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정치인 용퇴와 팬덤정치 극복 쇄신안을 당 지도부 회의에서 공개 거론한 것은 그래서 어쩌면 예고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능한 정권론' 대신 '견제받는 정권론'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야당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에서 박 위원장은 고립된 듯한 모습이다. "개인 차원의 입장 발표"라는 게 지도부 다수의 시각이다.

박 위원장을 비판하는 그들은 지도부와 충분한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공개석상에서 메시지가 나간 점을 문제삼는다. 'TPO'(시간·장소·상황)을 따지는 기존 정치문법상 박 위원장의 대국민호소문 발표나 지도부 회의 공개 부분에서의 발언은 분명 돌출행동처럼 비쳐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96년생 정치신인에게 당 대표급인 비대위원장을 맡겼을 때 민주당이 기대한 지점은 기존 정치인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다름'이었다. '민주당에 주저 없이 회초리를 드는 청년'이니 '과감한 혁신의 선봉장'이니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설마하니 정해진 각본만 따르는 쇄신 이미지용 '간판'으로 소비할 요량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박 위원장의 거듭된 사과를 문제삼는 이들도 있다. 내로남불에 수차례 사과했는데 또 고개를 숙이면 낙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9대 대선 당시 "내가 MB(이명박) 아바타냐"라고 했다가 진짜 그 프레임에 갇혀버린 안철수 후보처럼.

선거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가뜩이나 야당에 불리한 여건 속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쳤으니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따져볼 점이 있다. 민주당의 지난 사과들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졌다면 대선에서는 왜 졌을까. 대선에서 심판당한 것 자체가 국민들이 아직 민주당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반증 아닐까.

사과란 모름지기 잘못한 쪽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에서 '이쯤하면 됐다'고 해야 끝나는 것 아닌가.

대선 이후에라도 제대로 사과했다면 모를까 민주당의 대선 패배 원인 진단과 그 책임을 묻는 작업은 지방선거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박 위원장이 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지난 1월 말께다. 대선을 치를 당시 박 위원장은 선대위 주요 조직이 아닌 여성위원회 부위원장과 디지털성폭력근절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패배 책임과는 거리가 멀고 민주당의 지난 과오에 대한 지분은 더더욱 없다.

잘못한 사람 따로 있고 사과하는 사람 따로 있다. 그런데 사과한 사람이 욕을 먹는 형국인 셈이다.

박 위원장을 향한 강성 지지층들의 원색적 비난은 극에 달했지만 당내에서는 용기 있게 그를 감싸주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특히 씁쓸하다.

박 위원장이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저를 향한 광기어린 막말이 아니었다. 그 광기에 익숙해져버린, 아무도 맞서려 하지 않는 우리당의 모습이었다"고 토론한 바로 그 지점이다.

누군가는 당원권 증진이라고 옹호했지만 이는 당원 민주주의로 팬덤정치의 폐해를 호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권력 획득을 목표로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정당이라면 팬덤정치는 가치나 이상의 공유 대신 동일한 우상(idol·아이돌)으로 뭉친다. "우리 누구누구 하고 싶은대로 다해"라는 식이다.

맹목적 숭배가 바탕에 깔리다보니 내 아이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배척하고 공격한다. 문자폭탄이다. 바로 그 팬덤정치가 당을 망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을 민주당 구성원 다수가 공감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였다.

안정적 득표를 보장해주는 팬덤의 결집력과 화력을 놓칠 수 없어서였다. 어느 순간 민주당은 팬덤정치 폐해에 침묵했고 중도층은 조금씩 떠나갔다. 결국 남는 것은 팬덤 뿐이어서 그 의존도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다.

그렇기에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박 위원장의 목소리가 값지게 느껴진다. "사과로는 선거에 이길 수 없다"거나 "내부 비판하려면 자리에서 물러나서 하라"는 식으로 팬덤정치에 기생하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과는 대조된다.

일각에서는 박 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놓고 차기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자기 정치'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낸다. 박 위원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방선거 이후 8월 전당대회 당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앞으로 진로 등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난 이후에 조금 더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을 아껴 여지를 남겼다.

물론 박 위원장이 'n번방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 이상의 무언가를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떠하랴.

정치인은 누구나 자기 정치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민주당의 당대표급 인사는 공공연히 말해 왔다. 적어도 대선 때 본인이 먼저 586 용퇴론 제기해 놓고 '나만 빼고' 식으로 뒤로 쏙  빠진 민주당의 모 의원보다는 솔직하지 않은가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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