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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어떤 경우라도 선박 건조 지연 행위 없어야…왜, 약속이니까

등록 2022.07.20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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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어떤 경우라도 선박 건조 지연 행위 없어야…왜, 약속이니까


[서울=뉴시스] 옥승욱 기자 = 보통 홈런이 나왔을 때 비판을 받는 쪽은 투수다. 그런데 이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장’ 토니 라루사는 타자를 비판했다. 그것도 상대 팀이 아닌, 같은 팀 타자를 말이다.

라루사 감독의 비판의 화살을 맞은 선수는 메이저리그 2년차 포수 예르민 메르세데스였다. 메르세데스는 지명타자로 출전한 2021년 5월18일 미네소타 방문 경기 때 팀이 15-4로 앞서고 있던 9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1점 홈런을 때렸다.

라루사 감독이 문제 삼은 건 ▲이미 팀이 11점차로 앞서고 있는 상황 ▲상대 팀 마운드는 주전 투수가 아니라 포수 겸 내야수인 윌리안스 아스투디요 ▲볼카운트도 3볼 0스트라이크(3-0)였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는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경기에서는 더는 홈런을 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라루사 감독은 ‘메르세데스가 이 불문율을 위반했다’며 비판을 했다.

불문율.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사회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지켜야하는 약속이다.

어느 집단이나, 단체에는 이 ‘불문율’이 존재한다. 이는 기업에도 마찬가지다. 우리(언론)의 경우 취재원들이 오프로 말한 것은 기사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서로의 신뢰가 깨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 관계 지속도 불가능하다.

산업현장을 들여다 보자.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24시간 용광로(고로)를 가동한다. 고로가 임의적으로 한번이라도 멈추는 날엔 그 피해가 수백억원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강성에 속하는 철강 노조원들은 파업을 하더라도 고로만은 건들지 않는다. 설령 사장실을 점거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의 1도크 선박 점거는 산업현장의 불문율을 깬 최초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난달 2일부터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불법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달 22일부터는 조선소 1도크와 선박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다.

강성 노조원들조차 불문율을 지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지회의 선박 점거로 29일째 진수(進水)가 멈춰 있다. 그간 피해액은 7000억원을 넘어섰다. 조만간 피해 규모는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사태 악화에 윤석열 대통령은 공권력 투입을 시사했다. 공권력을 투입할 경우 ‘유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점거 농성 중인 노조원 중 한 명은 선박 바닥에 ‘쇠창살 케이지’를 설치하고 용접으로 출입구를 막아 스스로를 감금한 상태다. 6명은 20m 높이의 ‘수평 프레임’ 위에서 고공 농성 중이다. 주변에는 시너를 담은 페인트 통과 소화기가 비치됐다.

다행히 하청지회가 임금 인상폭을 기존 30%에서 10%로 낮추면서 협상의 여지는 생겼다. 현재 조선하청노조와 협력사협의회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합의안 마련에 한창이다. 내주부터 대우조선해양은 2주간 하계 휴가가 시작된다. 이번주 안에는 어떠한 결론이 나야 한다.

이번 사태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불문율을 어기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조선업은 원청만으로 선박을 건조하기 불가능한 구조다. 때문에 수많은 하청 직원들이 필요하다. 이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또 다시 도크 점거라는 강수를 두지 않을지 걱정이다. 선주들이 국내 조선사들을 바라볼 때 건조 지연이라는 리스크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정부는 선박 건조 지연에 대해서는 공권력 투입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는 법적 조항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 조선업도 노조 리스크에 언제 경쟁력을 잃을 지 모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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