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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비난 여론보다 실력, 두산의 한결같은 선택

등록 2022.09.19 10: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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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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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희준 기자 = 2023 KBO 신인드래프트가 열린 1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

2라운드 지명이 이어지다 전체 19순위 지명권을 가진 두산 베어스가 타임을 부르자, 장내가 술렁였다. 잠시 후 마이크를 든 윤혁 두산 스카우트 팀장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이번 신인드래프트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고려대 우완 투수 김유성이었다.

김유성은 2020년 8월 실시된 2021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NC 다이노스 지명을 받았던 선수다.

하지만 지명 직후 내동중 3학년 때 저지른 학교폭력(학폭)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인드래프트 직후 피해자 측에서 온라인을 통해 김유성에 받은 상처,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과 등을 토로했다.

NC의 자체 조사 결과 2017년 김유성이 1년 후배를 폭행해 내동중 학교폭력위원회로부터 출석정지 5일 처분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또 2018년 1월 창원지방법원이 피해자와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린 사실, 화해가 성립되지 않아 2월 김유성에게 20시간의 심리치료 수강과 40시간의 사회 봉사 명령을 내린 사실을 확인했다.

논란이 불거진 직후 "선수가 징계를 모두 소화했으며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고 김유성을 감쌌던 NC는 피해자 측이 재차 김유성과 그의 부모, NC 구단의 대처를 비판해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지명 철회를 택했다. 1차 지명 역사상 구단이 지명을 포기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프로 입단이 좌절된 김유성은 고려대 진학을 택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1년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고려대 입학 후 징계를 소화한 김유성은 올해부터 공식 경기에 나섰다. 구속이 시속 150㎞대까지 오르고 변화구 완성도가 높아지는 등 고교 시절보다도 기량이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해 드래프트부터 4년제(3년제 포함)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선수가 졸업연도 이전에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는 '얼리드래프트(조기 지명)' 제도를 도입하면서 아직 고려대 2학년인 김유성이 KBO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다만 김유성은 KBO 규약 제114조 '계약교섭권의 포기, 상실 등' 3항에 명시된 '구단이 여하한 사유로든 계약교섭권을 포기하거나 상실하여 당해 신인선수가 다시 지명절차를 거치는 경우 어느 구단도 당해 신인선수를 1라운드에서 지명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라 1라운드에서 지명될 수 없었다.

김유성은 기량만 놓고 보면 상위 지명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몇몇 구단이 그의 지명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가 뽑힐 수 있는 가장 높은 순번인 2라운드에서 그를 지명할 팀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학폭 전력이 있는데다 아직도 피해자와 합의를 이루지 못한 김유성의 지명은 구단 입장에서도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2라운드부터 구단들의 눈치 싸움이 시작됐지만, 2라운드 8순위까지 그의 이름은 불리지 않은 이유다.

이런 분위기 속에 두산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김유성을 지명한 당사자가 두산이라는 점에 장내는 더욱 크게 술렁였다. 두산은 최근 학폭 이슈에 시달린 팀이기 때문. 최근 두산 투수 이영하는 LG 트윈스 투수 김대현과 함께 선린인터넷고 시절 저지른 학교 폭력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영하와 김대현이 재판이 넘겨진 사실이 알려진 후 구단들은 김유성 지명을 한층 더 조심스러워했다. 두산과 LG는 한층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을 빗나갔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김유성 지명 이유에 대해 "김유성의 기량을 보고 뽑게 됐다. 두산이 지난 7년 정도 신인드래프트에서 9, 10번 선수들을 뽑다보니까, 올해는 기량이 좋은 선수를 뽑고 싶었다"고 했다. 또 "솔직하게 부담은 있다"고 털어놨다.

2년 전을 떠올려 보면 두산의 선택은 한결같다.

2020년 12월 두산은 프리에이전트(FA) 신분으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행을 택한 최주환의 보상선수로 음주운전으로 징계 중인 강승호를 지명했다.

강승호는 2019년 4월 음주운전 사고를 저질렀고, 해당 내용을 구단에 숨긴채 퓨처스(2군)리그 경기까지 출전해 물의를 빚은 터였다.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된 후 강승호는 KBO로부터 9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고, SK도 임의탈퇴라는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SK 구단이 임의탈퇴를 2020년 8월에야 해제해 강승호가 출전정지 징계를 마치기도 전이었지만, 두산은 논란을 감수하고 강승호 지명을 강행했다.

최근 수 년 동안 KBO리그는 클린 베이스볼을 강조하고 있다. 팬들도 '야구만 잘하는' 선수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 사건사고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선수를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산은 2년 전에도, 이번에도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렸다. 도덕적 결함보다 야구를 잘하는 것에 더 중점을 뒀다. 팀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져도 전력 강화를 우선시했다.

그러나 김유성 지명을 두고 비난 여론이 거세다.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이영하·김유성 원투펀치다'라는 비아냥도 떠돈다. 두산 팬들은 트럭시위를 준비할 정도로 깊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유성을 지명하는 팀이라면 어디든 감수해야했을 일이다. 아마 두산도 각오했을 것이다. 최근 이영하 학폭 사건이 불거져 김유성을 지명하면 후폭풍이 더 클 것도 예상했을 것이다.

비난 여론을 감당하는 것은 도덕적 이슈를 뒤로 하고 원하는 선수를 얻은 대가다. 두산은 2년 전에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김유성이 아직 피해자와 합의를 이루지 못해 논란이 더 커질 불씨가 남아있다. 이를 진화하는 것도 두산이 스스로 떠안은 숙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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