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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영화잡지 ‘은영’의 짧지만 굵은 발자취

등록 2022.10.2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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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잡지 은영 (사진 = 한상언 영화학 박사·영화사가 제공) 2022.10.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잡지 은영 (사진 = 한상언 영화학 박사·영화사가 제공) 2022.10.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해방 후 서울의 극장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영미구축’(英米駆逐)을 외치던 작품들은 일제히 간판을 내렸고 일본인 극장주들은 자산을 정리해 조선에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극장 주변의 눈치가 빠른 인물들은 일본인 극장주를 대신해 극장관리인이 되었다. 그 사이 명치좌나 낭화좌, 조일좌와 같은 일본식 극장 이름은 국제극장, 명동극장, 한성극장과 같은 우리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들 극장에서는 해방 분위기에 걸맞은 작품들이 공연되기 시작했다.

영화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은 해방 이후 새롭게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기다렸다. 미군을 통해 전해진 몇 편의 영화들은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 얼마 후 할리우드 주요 영화회사와 독점 계약을 맺은 중앙배급소가 등장하여 할리우드 영화들을 극장가에 쏟아냈다. 이에 맞춰 군정청에서는 한 달 4주 중 3주는 의무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토록 했다. 영화를 통해 미국의 문화와 민주주의 사상을 전파하려고 한 이러한 조치로 남한의 극장가는 할리우드 영화가 점령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설 무대가 없어진 연극인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무렵 많은 수의 연극인들이 무대를 찾아 북한으로 건너간 데에는 군정청의 불합리한 조처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부 수립 후 이러한 극장 운영 조치가 크게 개선됐다는 점이다. 특히 중앙배급사가 걷어드린 수익을 미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제한하면서 할리우드 영화가 일시 상영 중단되기도 했다. 독점적 지위의 할리우드 영화에 의해 거의 소개될 기회를 잃었던 영국, 프랑스, 중국 등 다른 외국영화들도 하나씩 하나씩 상영될 수 있었다. 당시 영국 영화는 은영사, 프랑스 영화는 한영사와 같은 외국영화 수입 전문회사들을 통해 국내에 수입됐다. 이제 극장은 다수의 영화가 경쟁하는 경쟁의 장이 되었다.

이중 영국 영화 수입사인 은영사는 자사 영화를 선전할 목적으로 ‘은영’(銀映, The Silver Screen)이라는 이름의 영화잡지를 발간했다. 은영사 대표 유제백을 비롯해 최성하, 이철혁 등이 편집을 책임진 이 잡지는 단순히 은영사의 선전지 혹은 기관지의 모습을 넘어 전문적이며 수준 높은 영화잡지를 지향했다. 그 주요 내용을 살피면 당시 은영사에서 수입한 영국 영화에 대한 소개 기사를 비롯해 안철영, 김영화, 윤용규, 김소동 등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영화감독이 쓴 글과 채정근, 이태우, 최영수, 이영준 등 영화평론가의 글이 실린 ‘영화평론가의 태도’라는 제하의 기획기사 등이 돋보인다. 이를 비롯해 해방 후 만들어진 우리 영화를 화보로 꾸민 것은 이 잡지가 영국 영화에 대한 수입 외에 우리 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영화잡지 은영은 지면관계상 준비했던 기사를 다음호로 연기한다는 내용을 실었으나 더 이상 발간되지 못한 것 같다. 1949년 말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과거 좌익단체에 가입했던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해야했다. 이는 영화동맹에 가입했던 대부분의 영화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에서 누구도 영화잡지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여기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은영사는 중국의 공산화로 상해를 통해 들여오던 필름의 수입이 막힌 데다가 전쟁으로 인한 혼란으로 더 이상의 운영이 불가능했다. 1952년 전쟁 전에 수입해 가지고 있던 ‘헨리 5세’를 상영하기도 했지만 그 영화가 염전사상을 내포하고 대사가 불온하다며 의심을 받기도 했다. 흥행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었다. 이 영화의 상영을 마지막으로 은영사의 운영은 막을 내렸다. 더불어 영화잡지 은영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업계지의 성격과 본격적인 영화전문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려던 영화잡지 은영의 짧은 역사는 이렇게 슬그머니 마무리 되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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