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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주4·3 희생 1천여명 '억울함' 해결 장찬수 부장판사 "연대정신 잊지말길"

등록 2023.02.07 14:36:13수정 2023.02.07 15: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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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4·3 전담 재판부 맡아 재심 대상 수형인 권리 구제

"2021년 3월 군사재판 수형인 335명 8시간 재심 기억 남아"

형사합의부 시절엔 파렴치 범죄 엄벌·‘따끔한 일침’으로도 유명

장 부장판사 "관광객들에 '역사적 피해 장소' 알리는 교육 바람도"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3년여간 제주4·3사건 재심 대부분을 맡아온 장찬수 부장판사가 7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대회의실에서 법원 출입 기자단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2.07.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3년여간 제주4·3사건 재심 대부분을 맡아온 장찬수 부장판사가 7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대회의실에서 법원 출입 기자단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2.07.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지금의 제주4·3 재심은 많은 분이 수십 년간 노력해온 결실이 맺어진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 연대의 정신을 잊지 말고 제주4·3에 관해선 연대의 힘으로 쭉 나아가길 바랍니다."

3년여간 제주지방법원에서 제주4·3 재심 대부분을 맡은 장찬수 부장판사가 제주를 떠나기 전 4·3 관련 단체와 유족들에게 남긴 말이다. 그는 '한 덩어리로 서로 굳게 뭉침'을 뜻하는 연대를 강조했다.

장 부장판사는 2500명이 넘는 재심 대상 수형인들의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다. 제주4·3 전담 재판부인 제4형사부를 이끌었고, 희생자 1191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 말미에는 항상 70여 년 전 국가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한 제주4·3 수형인과 남은 유족들을 위로하는 말도 남겼다. 아울러 무죄 판결이 이뤄지는 제주4·3 재심을 역사적인 기록물로 남겨놓기 위해 이례적으로 법정 안에서 촬영을 허가하는 등 제주4·3 명예회복 및 진상규명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오는 20일 광주지방법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장 부장판사는 7일 오전 제주지법 대회실에서 제주 법원·검찰 출입 기자단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장 부장판사는 인터뷰에서 "제주4·3 재심 사건에 관한 업무를 맡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제주4·3사건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도 부족한 상태였기에, 부임하고 난 후 300명이 넘는 군사재판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청구서가 접수됐을 당시에는 너무 막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법정에서 직접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하면서 관련 재판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특히 제주4·3 재심 사건을 다루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난 2021년 3월16일 군사재판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을 꼽았다. 장 부장판사는 당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335명 수형인을 21개 사건으로 나눠 20분 단위로 재심을 진행했다.

장 부장판사는 "사건의 규모뿐만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서 법적으로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풀어줬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주지방법원 출입기자단 간사가 7일 오전 제주지법 대회의실에서 장찬수 부장판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2023.02.07.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주지방법원 출입기자단 간사가 7일 오전 제주지법 대회의실에서 장찬수  부장판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2023.02.07. [email protected]

제주4·3 재심을 맡으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선 "당시 재판에 관한 기록이 온전히 보전돼 있지 않아 재심 절차에서 문제 되는 세세한 쟁점에 관해 판단하기가 어려웠다"고 답했다. 70여년전 제주4·3 당시 시대 상황이 극도로 혼란했고 이념의 대립이라는 문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장 부장판사는 "일반재판 수형인에 관해서는 아직도 직권재심에 관한 규정이 명시적으로 도입돼 있지 않다"며 "물론 형사소송법상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명시적인 입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일반재판과 군사재판을 따지지 않고 희생자나 유족에게 자유롭게 그 정보를 열람하고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할 것"이라며 "유족이 없어 희생자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수형인들에 관한 직권재심에 있어서도 기준과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장 부장판사는 제주지법에서 제주4·3 전담 재판부를 맡기 전에 형사합의부 재판장을 맡기도 했다. 제2형사부 재판장 당시에는 '따끔한 일침' 판사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지난 2020년 6월께 열린 제자 유사강간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제주대학교 소속 A교수에 대한 첫 공판 때다. 장 부장판사는 "교수 지위를 이용한 전형적인 갑질"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을 사유로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한 해당 교수를 이례적으로 법정구속한 바 있다.

장 부장판사는 같은 해 12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원 전 제주지사는 가까스로 제주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장 부장판사는 "벌금 90만원이 그냥 숫자가 아니다.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만원도 아니다.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장 부장판사는 올해 2월을 끝으로 광주지방법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제주의 바닷가, 중산간 등 어디를 가봐도 좋지 않은 곳이 없다. 제주 풍광이 가장 애착이 남는다"고 소회했다. 이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날씨 좋은 날 제주에 와서 예쁜 풍광을 두고 사진을 찍는 데, 저분들에게 '옛날에는 여기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적인 피해 장소였다'는 점을 알리는 관광 내지는 교육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피력했다.

한편 이날 인터뷰에 앞서 제주 법원 출입기자단은 장 부장판사에게 제주4·3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감사패를 수여했다. 기자단은 감사패에 '폭삭 속앗수다'(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제주어 문구를 남겼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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