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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진화하는 주가 조작…대책없나

등록 2023.05.24 09:34:15수정 2023.05.24 11: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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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진화하는 주가 조작…대책없나

[서울=뉴시스] 김경택 기자 = 주가조작의 역사는 곧 증권 시장의 역사다. 주가조작은 우리나라 증권 시장이 출범한 1956년 이래 잊을 만하면 늘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이들 작전 세력은 끊임없이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고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번 SG증권발(發) 주가조작 사태를 뜯어보면 과거와 달리 지능화된 형태의 주가조작이 이뤄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금융당국의 감시 시스템을 역으로 파고들었다. 투자자 명의의 핸드폰을 수백대 개통하고, 명의자의 집이나 직장 근처 등지에서 매매하는 수법을 썼다. 거래자가 다수여도 한 곳에서 매수와 매도가 집중돼 일어나면 IP(인터넷프로토콜) 추적이 이뤄질 수 있는데, 전담 매매팀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거래함으로써 이를 분산시킨 것이다.

또 익명성이 보장되는 CFD(차액결제거래)를 활용해 대주주 공시 의무 등 법의 감시망을 피해갔다. CFD를 활용할 경우 투자 주체가 외국인으로 된다. 장기간 동안 CFD를 통해 주식을 매입할 경우 누가 얼마나 샀는지 파악이 어렵다.

과거와 달리 법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다는 평가다. 따라서 금융당국이 작정하고 파더라도 잡아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한국거래소의 시장 감시 시스템에서는 단 한 번도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 주가조작 세력이 유사투자자문사, 투자자문사 등 설립과 폐업을 반복하고 미등록 상태에서도 투자자를 모집하는 동안에도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파악이 불가했다.

일련의 사태를 놓고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 수위를 진작에 높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가조작이 과거와 달리 날로 지능화되고 있는 반면, 금융당국의 규제는 대부분 사후적 조치에 그치고 있고 처벌 또한 솜방망이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제2의 SG증권발 주가조작'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단순 예방책 마련과 규제 강화 만으로 작전 세력의 탐욕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현재 CFD에 대한 실제 투자자 유형을 표기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등 규제를 강화한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듯 주가조작 세력이 마음 먹고 치밀하게 설계할 경우 주가조작은 분명 언제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난다.

현행법은 주가조작으로 얻은 이익에 따라 최대 무기징역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 등락에 따른 금액 산정이 쉽지 않아 현실적으로 중형이 나오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또 부당이득에 대한 환수 규정도 미흡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한번 크게 땡기고, 처벌 받고 나오면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만연하고 과거 불공정거래행위에 연루됐던 사람이 다시 주가조작에 가담하는 사례도 빈번히 목격되고 있다.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주가조작 사범에 대해 징역 150년형을 선고한 바 있는 등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중국은 1조원 규모의 벌금을 부과한 선례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위법적 행위에 대해 패가망신할 정도의 중형으로 다스려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된다면 주가조작은 조만간 새로운 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선의의 투자자들이 입게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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