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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전세 사기 특별법' 국회 통과를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

등록 2023.05.26 09:38:54수정 2023.05.26 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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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특별법이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은 재석 272명 가운데 찬성 243명, 반대 5명, 기권 24명으로 가결됐다. 특별법이 발의된 지 28일 만이다.

여야 모두 원칙적으로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지원하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피해 보증금 보전(보증금 채권 매입)과 방식 등을 두고 평행선을 달렸다. 야당은 피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정부가 먼저 피해자들의 보증금 채권을 매입한 뒤 구상권을 나중에 행사하는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방식을, 정부와 여당은 국가가 피해자를 직접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야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다섯 차례 논의 끝에 절충안에 합의했다. 공공기관이 보증금 채권을 사들여 피해 임차인에게 보전하자는 야당과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한 정부와 여당 모두 한발씩 양보해 접점을 찾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피해자들의 '최우선변제금'을 최대 10년간 무이자로 빌려주기로 했다. 최우선 변제금은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순위가 앞선 담보권자보다 먼저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말한다. 최우선 변제금(서울 5500만원·인천 4800만원)까지 10년간 무이자로,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연 1.2∼2.1%의 금리로 2억4000만원까지 대출을 지원한다. 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신용 회복 프로그램을 위해 최장 20년간 무이자 분할 상환이 가능하도록 하고, 연체 정보 등록·연체금 부과도 면제된다.

특히 쟁점이었던 보증금 채권 매입이 빠지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경·공매 원스톱 대행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했다. 정부가 경·공매 비용의 70%를 부담한다. 또 전세 사기로 인정하는 보증금 기준도 기존 4억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 조정했고, 원하면 해당 주택을 먼저 살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특별법에는 애초 정부안보다 피해 대상을 넓히고,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방안이 담겨 다행이나, 다른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고, 사기 피해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게 이례적이라는 정부와 여당의 설명이 일리가 없지는 않다. 다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도, 집이 경매에 넘어가 낙찰되면 한 푼도 못 받고 거리에 나앉을지도 모를 피해자들의 불안과 고통이 절대 가볍지 않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정치권이 정쟁에 몰두하는 사이 인천 미추홀구에서만 꽃 같은 청년 세 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올해 전세 사기를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다섯 명에 달한다. 예견된 비극이다.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거래량이 뚝 끊기고, 전셋값까지 크게 하락하면서 '역전세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자금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사고 피해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실제 인천 미추홀구에서만 보증금을 떼인 사람이 700여명으로, 이른바 '인천 건축왕' 일당이 가로챈 보증금이 380억원을 넘는다. 올 하반기에 빌라 10채 중 6채에서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크다는 암울한 통계도 나왔다.
 
전세 사기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호소엔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 적지 않다. 전세 사기 위험이 곳곳에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는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이들은 이자 대출을 받더라도 전 재산과 다름없는 보증금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예견된 비극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별법 통과가 여야 정치인들의 면을 세우는 데만 그친다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는 6개월마다 정부 보고를 받고, 보완 입법을 하기로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을 위한 대출 규제 완화와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보증금 예치제도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전세 사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예견된 비극을 반복한 우를 다시는 반복해선 안 된다. 예견된 비극을 막는 게 국가의 도리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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