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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만삭아내 살인 무죄' 남편의 돈벼락…걱정스러운 이유

등록 2023.06.12 14: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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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만삭아내 살인 무죄' 남편의 돈벼락…걱정스러운 이유

[서울=뉴시스]박현준 기자 = '보험 33개', '보험료 월 420만원', '사망보험금 95억여원'

최근 법원의 판결로 재조명되고 있는 '만삭아내 살인 무죄' 사건의 또 다른 키워드다. 교통사고는 2014년에 발생했지만 그와 관련한 사망보험금 소송은 10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이다.

남편이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모두 승소하게 될 경우 약관에 따라 수십억원을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이 남편은 살인 혐의 '무죄'가 확정됐기 때문에 그의 소송과 보험금 수령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섣불리 단정 지어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일반인 관점에서 상식선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사망보험 가입 규모, 그에 따른 거액의 보험금 수령이 법원의 판결로 현실화 돼 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죄와는 별론으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이 같은 형태의 범죄 양산 우려다.

사건은 2014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캄보디아 국적의 아내 B씨와 결혼한 A씨. 결혼 6년 차인 두 사람은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B씨가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승합차를 운전하던 A씨가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 교통사고라고 보기에는 정황이 석연치 않았다. B씨 앞으로 수십억원의 사망보험금 지급이 체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B씨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된 점 등을 근거로 사고를 가장한 보험 사기를 의심했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반면 A씨는 일 때문에 21시간 이상 숙면하지 못해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졸음운전을 해 사고가 났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1심은 간접증거만으로는 범행을 증명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했지만 2심은 A씨가 범행 전 다수의 보험에 가입한 점 등을 근거로 아내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고 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7년 "졸음운전인지 고의사고인지 단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결국 A씨는 살인 혐의는 무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재상고심에서 금고 2년 형이 확정됐다.

결국 B씨 앞으로 30개가 넘는 보험이 가입된 경위에 대해선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를 이용해 주는 보험설계사들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가입한 보험의 숫자가 너무 많다.

A씨는 1심 무죄 판결 후 2016년 다수의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냈는데, 2021년 살인 혐의 무죄 확정 이후 약 5년 만에 변론이 재개됐다. 그리고 형사 판결과 같이 민사 재판에서도 결과가 엇갈렸다.

보험금 소송 주요 쟁점 중 하나는 B씨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약관을 충분히 이해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A씨가 보험금을 부정취득할 목적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한 것인지에 관한 것도 쟁점이었다.

교보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소송 2심 재판부는 "B씨가 보험모집인 등의 설명을 듣고도 자신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체결에 동의한다는 점을 이해 못 한 채 자필로 피보험자란에 서명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1심과 같이 판단했다.

약 31억원 상당의 보험금이 걸린 또 다른 소송에서도 1심 재판부는 "보험은 사고가 임박한 때에 집중적으로 가입한 게 아닌 B씨와 결혼한 2008년부터 매년 꾸준히 가입한 것"이라며 "사망 보장 목적뿐 아니라 질병 치료, 예·적금 기능도 있는 보험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A씨는 B씨 외에 본인이나 다른 가족들을 피보험자로 해서도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며 "A씨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한 보험설계사들도 계속된 권유로 A씨 등이 보험에 가입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당시 A씨가 보험료 부담을 감당할 만한 경제적 상황에 있었던 점도 고려됐다.

반면 보험사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는 B씨가 한국의 보험제도나 계약 체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고, B씨의 진정한 동의 의사 확인에 필요한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라이나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소송 1심 재판부는 "B씨와 같은 사람은 한국어 능력도 부족하고 언제라도 도박보험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이러한 사람을 피보험자로 하는 거액의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도 지난 4월 A씨와 딸이 새마을금고중앙회를 상대로 낸 2억1000만원 상당의 보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하는 등 A씨의 보험금 수령이 현실화하고 있다.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형사소송의 대원칙이다. 1심과 대법원이 A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본 판단을 이제 와서 굳이 비판하고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한 범죄 가능성의 우려 만큼은 지울 수 없다. '대법원이 무죄라고 하는데 뭘 그러나'라며 눈길을 쉽게 거둘 수 없다.

'사망보험을 수십 개 들어 놓고 어떻게든 살인 혐의만 빠져나간다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을 현재도 누군가 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A씨의 말대로 보험설계사들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 수십개의 보험을 체결했고 졸음운전으로 아내만 사망했다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이 사건이 '범죄의 모티브'가 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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