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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아판 제네시스는 왜 안 나올까?

등록 2023.06.23 09:10:00수정 2023.06.23 09: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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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무 산업부 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안경무 산업부 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안경무 기자 = 최근 기자가 쓴 기아의 대형 SUV인 EV9 시승기에 일부 독자들이 단 댓글이 의미심장했다. 주행 성능과 승차감, 가격 정책을 정리한 시승기였는데 100건이 넘는 댓글 중 상당수가 "이 차를 사면 호구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광고성 글'이라며 폄하하는 내용도 눈에 띄었다. 시승기라는 특성 상 기자의 주관을 배제할 순 없지만 자동차 담당으로 객관적인 정보 전달을 했는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고객들에게 이 정도로 '평가절하' 받을 정도인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일부 독자들은 댓글에서 "그 돈 주고 벤츠나 BMW를 사지, 왜 기아를 사냐"거나 심지어 "호구 모집중", "실내는 싼티 난다" 같은 비난에 거침 없었다.

이처럼 야박한 평가의 근간에는 현대차그룹의 내연기관차 시대, 안좋았던 경험들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소비자들은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 5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엔진과 변속기, 마감, 디자인 등 종합적인 성적표 측면에선 아직 독일 유명 브랜드와는 격차가 있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이 내연기관차의 격차는 전기차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할까.

내연기관차에서 실력차를 보였던 엔진과 변속기는 전기차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자리는 전기모터와 인버터, 감속기 같은 '전동화 파워트레인'이 차지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껍데기만 같고 내부는 사실상 완전히 다른 차인 것이다.

이런 전기차 시대에 현대차그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이오닉6는 '2023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됐을 정도다. 수상 후보로 전 세계 30개 차종이 올랐으며 아이오닉6는 BMW X1·iX1 등과 경합을 벌여 최종 수상했다.

기아 EV6는 지난해 호주에서도 '올해의 차'로 선정됐고, 올 초에는 미국에서 '올해의 차'로 뽑히기도 했다. 앞서 2021년에는 아이오닉5가 자동차 본고장인 독일에서 '올해의 차'에 올랐다. 급기야 한국차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올해의 수입차'로 선정됐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강력한 전동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전기차 시장만큼은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내연기관차의 리더들을 따돌리겠다는 각오다.

현대차는 최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베스터데이'에서 2032년까지 10년간 109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전동화 투자는 전체 투자비용의 33% 수준인 35조8000억원으로 책정했다. 나아가 2025년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 개발 체계를 마련하고, 사실상 모든 차급에서 공용 개발이 가능한 2세대 전용 전기차 플랫폼을 도입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제 남은 것은 '마케팅의 시간'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를 타면서 "정말 좋은 차"라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기아의 고급 브랜드 출범이 절실한 이유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제네시스'라는 훌륭한 단일 브랜드 성공 노하우를 갖고 있다. 아직까지 다수의 소비자들은 대중 브랜드인 기아의 차 값이 1억원을 넘는다는 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EV9에 대해 '전동화 시대 기아 브랜드 고급화를 이끌 차' 같은 긴 수식어는 임팩트가 없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머리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넥스트 기아'에 대한 고민이 이제 현실로 나와야 한다. 2015년 그가 부회장이던 시절 제네시스 출범을 주도하며 '정의선 시대'를 연 것을 다시 주목해야 한다. 제네시스 못지 않게 기아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 '신의 한수'를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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