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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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⑳ 조선 정종 후릉·제릉 2기만 유일하게 북한에
20. 개성 인근에 있는 2기의 조선 왕릉 개성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80km 정도다. 개성에서 임진각까지는 22km다. 개성에서 한국의 가장 서쪽에 있는 강화도 평화전망대까지 직선거리로 20km에 불과하다. 75년간의 분단으로 마음으로는 멀리 느껴지지만, 지리적으로는 굉장히 가깝다. 송악산(489m)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용수산(178m)을 거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⑲100명 넘는 왕후·왕비묘는 어디 있을까
19. 대부분 능주를 알 수 없는 왕비릉 고려 시대에는 태조 왕건부터 공양왕까지 34명이 왕위에 올랐다. 그중 강화도 천도 이후 왕위에 오른 21대 희종(熙宗), 22대 강종(康宗), 23대 고종(高宗)은 강화에 묻혀 있거나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강종의 무덤이 개성 동북쪽에 있다는 설도 있음). 그리고 32대 우왕(禑王)과 33대 창왕(昌王)은 시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⑱왕비를 기리며 설계한 공민왕 부부 쌍릉 '현·정릉'
18. 조선 시대 왕릉의 모본(模本)이 된 공민왕릉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이 잠들어 있는 현릉(玄陵)은 태조 왕건릉에서 서쪽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봉명산의 남쪽 봉우리인 무선봉과 아차봉 사이에 있으며, 개성 남대문에서 10km 정도 거리이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개성시 해선리에 속한다. 공민왕릉의 외관상 특징은 왕비의 능인 정릉(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⑰15살 때 독살된 충정왕 묘 협소, 표석도 없어
17. 강화도로 귀양 갔다 독살당한 충정왕(고려 30대 왕)의 무덤 총릉(聰陵) 1905년 7월 고려 30대 충정왕(忠定王)의 무덤이 도굴됐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방금 개성 부윤(開城府尹) 최석조(崔錫肇)의 보고서를 보니, 음력 6월 11일 밤에 부(府)의 남쪽 배야동리(排也洞里)에 있는 고려조 충정왕(忠定王)의 총릉(聰陵)을 파헤쳤는데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⑯'명릉군(明陵群)' 3개 왕릉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16. 고려 29대 충목왕의 무덤 명릉(明陵)과 두 개의 왕릉 고려 23대 고종(高宗)은 1218년(고종 5) 고려에 침입한 거란족을 몽골군과 연합해 물리친 후 이듬해 몽골과 형제맹약을 맺었다. 그러나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까지 고려는 몽골과 ‘30년 전쟁’을 치른다. 전쟁을 끝내고 화친을 주도한 원종(元宗)이 즉위했지만 무신 권력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⑮5개 왕릉은 누구 무덤인지 '감감'
15. 몽골에 항복하러 갔다 온 원종(元宗)의 무덤 소릉(韶陵) 개성 고려궁궐(만월대)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고려 성균관에서 동북쪽에 있는 개성성 탄현문터를 지나면 송도 저수지가 나온다. 여기서 송악산 동쪽 능선을 끼고 3~4km 정도 올라가면 서쪽으로 매봉산(매봉, 442m) 능선이 나오고 그 남쪽에 ‘소릉군’이라고 부르는 5기의 왕릉급 무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⑭신종 양릉서 고려 두 번째로 시책(諡冊) 출토
14회 최충헌이 옹립한 고려 20대 신종(神宗)의 무덤 양릉(陽陵) 1122년 예종(睿宗)이 사망한 후 장남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고려 17대 임금 인종(仁宗, 재위:1122~1146)이다. 인종 때는 외척인 이자겸(李資謙)의 난, 서경(西京, 평양) 천도를 주장한 묘청(妙淸)의 난 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이때부터 고려가 내리막길을 걷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⑬예종 유릉서 다양한 청동제품 쏟아져
13회.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은 고려 16대 예종의 유릉(裕陵) 고려 3대 정종(定宗)이 개성 외성(나성)의 경계를 이루는 용수산 남쪽에 묻힌 후 이 주변에는 여러 왕들의 무덤이 조성됐다. 정종의 (安陵) 서쪽 옆으로 20대 신종의 양릉이 있고, 용수산이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30대 충정왕의 총릉과 16대 예종의 유릉(裕陵)이 자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⑫ 발굴 후 국보 유적으로 격상된 숙종의 무덤
12. 부국강병을 꿈꾼 숙종의 영릉(英陵) 2017년 북한은 개성시 선적리에서 고려 제15대 국왕 숙종(肅宗)의 능으로 전해오는 왕릉을 발굴한 후 이 왕릉이 숙종의 영릉(英陵)으로 확증됐다고 발표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제15대 숙종은 1105년(숙종 10년) 10월 기축일에 승하하여 개성 동쪽 송림현(松林縣)에서 장례
[사진으로 보는 北 고려왕릉] ⑪짧은 재위 기간만큼 초라한 순종묘
11. 4개월 단명한 순종의 협소한 무덤 성릉(成陵) 고려 12대 순종(順宗)은 고려 전체를 통틀어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왕이다. 그는 문종(文宗)의 장남으로, 원래 이름은 왕휴(王烋)였으나, 뒤에 왕훈(王勳)으로 고쳤다. 순종은 1047년(문종 1)에 태어났고, 어머니는 인예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였다. 그가 왕태자로 책봉된 것은 8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