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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 1년]④"국회서 발의된 개정안만 21개, 허점투성이"…결국 법무부가 팔걷어

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오랜 논의 끝에 제정된 법률은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됐는데, 제도 시행 이후에도 신당역 살인사건 등 잔혹한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스토킹처벌법이 범죄를 예방하는데 한계가 있고, 응급조치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반의사불벌 조항은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하도록 만드는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이 높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법 시행 1년도 되지 않아 10개에 가까운 개정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아 허점은 여전하다. 정부는 신당역 살인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최근에야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등 개선에 나섰다. ◆반의사불벌 무엇이 문제?…"합의 종용→2차 가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한 스토킹처벌법 18조는 이 법률의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반의사불벌 조항으로 인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만 밝히면 재판을 받지 않고 공소가 기각되기 때문에 피의자들은 합의에 대한 유인을 갖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토킹 범죄는) 피의자가 사회적으로 힘이 센 경우가 많다"며 "물질적인 우위 등을 바탕으로 피해자를 계속 힘들게 하면, 피해자는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의에 나서곤 한다. 2차 가해를 조장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피해자가 처벌 의사만 번복하면 처벌을 받지 않으니까 피해자가 처벌 의지를 접도록 하기 위해 추가적인 위협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의사불벌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피의자 처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고, 피해자를 범죄로 모는 것"이라는 비판이 높다. ◆잠정조치 실효성도 물음표…무시해도 과태료 내면 끝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보호 등을 위해 스토킹행위자에게 법원이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잠정조치는 총 4가지인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1호는 스토킹 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 경고, 2호는 피해자 및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는 피해자에 대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다. 경찰서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하는 4호가 가장 강력한 조치다. 하지만 잠정조치 기간이 짧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행법상 잠정조치 1, 2, 3호는 2개월을 넘길 수 없고, 4호는 1개월을 넘길 수 없다.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1, 2, 3호 처분은 두 차례에 한정해 각 2개월 범위에서 연장이 가능하다. 권 변호사는 "재판받기 전에 보호기간이 끝나면 얼마든 다시 위협받을 수 있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스토킹 범죄는 집착성이 강하다는 특성이 있어 석방을 하더라도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조건부 석방 제도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토킹 피의자가 잠정조치를 위반하더라도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 처분을 받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법률은 정당한 사유 없이 긴급응급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과태료로는 재발을 막기 힘들다"며 "심지어 10명 중 7명이 과태료 미납인데, 이에 따른 제재 조치도 따로 없다. 강력하게 형사처벌할 필요가 있고, 범죄가 반복되면 가중처벌 해야한다"고 비판했다. 경찰이 잠정조치 4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신청하더라도 법원이나 검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잠정조치 4호의 기각률은 지난해 78%, 올해 71%로 집계됐다. 수사에 앞서 피해자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최 소장은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피의자가 제대로 구속되기 전까지, 재판이 종료되기 전까지 큰 불안에 시달린다"며 "신당역 살인사건처럼 구속영장이 잘 발부되지 않는 상황에서 피의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잠정조치는 재판 전까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법률 제정 후 개정안만 21개…논의는 지지부진 정치권에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일찍부터 거론됐다. 실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난해 3월 이후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만 21개에 달한다. 특히 이 가운데 8개 개정안은 반의사불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월10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건 외에는 소관 위원회에 상정 조차 되지 못했다. 사실상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그 사이 경찰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 8월까지 총 7141명을 검거했는데, 4554명만 송치했다. 나머지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이유로 불송치했다. 지난달에는 스토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전주환이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안겼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 주도로 법률 개정 작업이 시작됐다. 법무부는 지난 19일 피해자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법 시행 1년여 만이다. 법무부는 잠정조치 단계에서도 가해자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과 가해자가 잠정조치를 어길 시 긴급체포가,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할 시 과태료 부과가 아닌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윤희 기자 | 위용성 기자 |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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