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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윤광진·서충식, 연극 3편에 새 생명…'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등록 2016.03.23 19:33:46수정 2016.12.28 16: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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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윤철 예술감독

【서울=뉴시스】김윤철 예술감독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014년 오영진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를 시작으로 김우진의 '이영녀', 유치진의 '토막' 등으로 창작극의 레퍼토리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은 국립극단이 올해도 대표 기획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근삼의 '국물있사옵니다'(4월 6~24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연출 서충식), 김영수의 '혈맥'(4월20일~5월16일 명동예술극장·연출 윤광진), 함세덕의 '산허구리'(10월 8~30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연출 고선웅)으로 라인업을 짰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23일 오후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놀랍게도 근현대극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 훌륭한 업적이 담겼다"고 밝혔다. "현대 작가들이 포기하는 서사, 등장인물의 성격, 언어 등 희곡의 중요한 세 가지 요건이 담겨있다"며 "유치진의 '토막' 같은 작품은 일제시대 과거 이야기지만 충분한 동시대적인 담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창작극을 찾기가 어렵고 창작극을 개발한다고 해도 완전한 작품으로 발전시키까지 어려움이 따르는 현실적인 문제도 감안했다. 무엇보다 근현대극을 현대화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해외에서는 셰익스피어, 체홉, 희랍극 등을 동시대에 지역화하고 현재화하는데 역점을 둔다. 우리 역시 근현대극을 현대어로 우리 삶을 치환하는 것이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서울=뉴시스】고선웅 연출

【서울=뉴시스】고선웅 연출

 근대극의 형식이 다양한데 김 감독과 국립극단이 우선시 하는 부분은 '리얼리즘'이다. 올해 세 작품도 마찬가지다. 첫 자연주의 희곡으로 분류되는 '이영녀'를 발표 90년 만인 지난해 처음 무대에 올린 것도 역시 같은 자장 아래에 있다. 김 감독은 "'이영녀' 같은 좋은 작품을 한번도 공연하지 않은 것이 충격"이라며 "왜 지금까지 이런 작품들을 등한시해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시대에 반추해볼 수 있는 내용들로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의미도 있다. "언제까지 남만 탓하며 갈등을 빚어야 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봤으면 했다. 나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1966년 발표된 '국물있사옵니다'는 이근삼의 대표작으로 50년이 지난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코믹 풍자극이다. 이근삼은 오영진에 이른 한국 희극정신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한 청년의 세속적인 출세기를 통해 출세주의와 배금주의 풍조의 아이러니함을 묘사한다. 1960년대 후반 산업화 사회의 세태와 모순 풍자는 2016년 지금에도 와닿는다.

【서울=뉴시스】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간담회

【서울=뉴시스】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간담회

 연출을 맡은 극단 주변인들의 서충식 대표는 '국물있사옵니다'에 대해 "근대와 현대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라며 "20세 때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는 너무 과장되고 희화화되지 않았나 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으니 바로 우리의 이야기더라"고 말했다. "작품이 나온 지 딱 50년이 됐다. 임시직 등이 당시에도 큰 문제였다. 지금은 그런 부분이 더 처절하지만 가깝게 느껴진다. 절망할 수 있는 주제지만 어떻게든 웃겨보자라는 심정으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혈맥'은 사실주의 희곡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김영수의 작품이다. 광복 직후의 비극적 세태가 배경이다. 당시 가난하고 빈곤한 계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방공호에서 살아가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을 묘사했다.

 윤광진 교수(용인대 연극학과)가 연출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등 최근 번역극 등을 주로 선보인 윤 연출은 "좋은 우리 극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했다. '혈맥'은 "핏줄,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며 "사라진 기억을 불러내는 것이 연극의 힘이다. 어릴 때 서울에 살았는데 지금 그 기억들, 동네 이웃,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최초의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 과정이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또 불편하기도 하다. '혈맥'은 무엇보다 내가 있는 연극이고 우리가 있는 연극이다. 그런 우리가 담긴 연극을 만들고 싶다."  

【서울=뉴시스】연극 '국물 있사옵니다'

【서울=뉴시스】연극 '국물 있사옵니다'

 '산허구리'는 월북 극작가 함세덕의 첫 희곡이다. 자식을 바다에 잃은 어머니의 비극을 한국적으로 그린 극사실주의 작품이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를 모델로 했다. 1936년 '조선문학'에 발표된 작품으로 80년 만인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국립극단과 두 번째 협업작인 연극 '한국인의 초상'으로 호평 받고 있는 극단 마방진의 고선웅 대표가 연출한다.

 지난해 국립극단과 협업으로 중국 고전을 각색해 시상식을 휩쓴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의 주인공인 '각색의 귀재' 고선웅은 '산허구리'의 첫 인상에 대해 "쓰여진 그대로 올리고 싶다"고 했다. "(조정래의 동명소설이 바탕인) 뮤지컬 '아리랑'을 할 때도 그랬는데 일제강점기 사진을 보면 그 한 장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삶의 질곡과 아픔이 녹아들어가 있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살아 있는 존재들이 말을 걸어왔다. 연극이 허구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이 작품은 허구가 아닌 실존하고 있는 인물들이 말을 걸어오더라."

 프로 무대에서 리얼리즘 계열의 연극 연출은 처음이다. "감동적이고 뜨거워서 이번 작품을 하고 싶었다. 함세덕이 21세 때 이 작품을 썼더라. 그 나이 때 근근한 삶으로 절망을 극복하는 말을 썼다. 지금도 쉽지 않은 청춘이다. 인생을 사는 한국인들이 생각해보고 사유하고 짚어봐야 하는 일이다. 연극은 절망을 이야기하면 너무 절망적이라고 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면 도식적이라고 해서 이래도 저래도 어려웠다. '산허구리'는 절망을 보여줄 것 같다. 조장이 아닌 1936년도에 쓰여진 마음을 고스란히 담도록 애를 쓰겠다."  

【서울=뉴시스】연극 '혈맥'

【서울=뉴시스】연극 '혈맥'

 김 감독은 "고선웅 연출에게 '산허구리'는 해보지 않는 형식의 연극이라 도전이 될 것"이라며 "'혈맥'은 해설자를 만드는데 김영수를 비롯해 근현대극 작가들은 지문마저 시적으로 썼다. 그런 것을 살려내는 취지"라고 말했다. '국물있사옵니다'를 서 연출에게 의뢰한 것에 대해서는 "코미디를 연출하는데 적합한 연출"이라며 "배우들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끄는데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국립극단은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의 기획 행사로 4월23일 '혈맥' 공연 종료 후 '근현대극 심포지엄 90분 토론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를 말하다!'를 연다. 김 감독이 사회를 보고 윤 연출과 서 연출을 비롯해 '혈맥'의 드라마투르그 이재민씨, 서울대 국문과 양승국 교수 등이 참여한다. 국립극단. 1644-2003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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