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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25년①]외환위기를 아시나요

등록 2023.01.01 07:00:00수정 2023.01.09 09: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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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국가부도의 날'. 2018.12.17. (사진=영화사 집,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국가부도의 날'. 2018.12.17. (사진=영화사 집,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1997년 11월 21일.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나라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5년 달성한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시대'의 샴페인을 터트린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찾아온 위기에 기업들은 문을 닫고 은행은 줄 도산했다. 주식도 휴지 조각이 됐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경제 곳곳에 위기의 징후가 드리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는 외환보유액도 충분하고, 펀더멘탈(기초체력)도 튼튼해 당시 위기 때와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며 외환위기가 다시 재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뉴시스는 IMF 25년을 되돌아 보며 현재의 우리 경제 상황과 향후 위기 재연 가능성 등을 진단해 봤다.

1997년 태국 화폐인 바트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시작된 동남아 경제 위기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아시아 국가들로 번졌다. 화폐가치 하락에 위기감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은 앞다퉈 단기자금을 회수 했고,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 12월 외환 보유액이 39억 달러까지 내려가며 바닥을 보이면서 국가 부도를 맞을 위기에 처했다. 국제신용평가사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내려 잡았다. 당시 IMF는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동아시아 국가에 10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배정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같은해 12월 3일 2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했다. 구제금융 진행 당시 고금리, 구조조정, 공공재 영리화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우리가 IMF 사태를 맞은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 자본시장 자유화를 진행하면서 단기자본을 쉽게 빌려 올 수 있도록 한 영향이 컸다. 은행들은 해외에서 저금리로 1년 미만 단기자금을 빌려와 기업들의 재무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고금리로 대출해 줬다. 이로인해 외채 규모가 1991년 391억 달러에서 1996년 1047억 달러, 1997년 1208억 달러로 3배 가량 급증했다. 이 가운데 58% 가량은 단기 채무였다  

또 우리 경제의 주력이었던 수출이 줄면서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영향도 컸다. 우리나라는 IMF 전인 1995년 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2년 4개월 간 연속으로 무역적자가 이어졌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204억 달러로 1997년 7월 전고점(336억 달러) 대비 39.4%나 줄었다.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11월까지 900원대 수준에서 머물었던 원·달러 환율도 같은해 12월 23일 1962.0원까지 치솟았다.

IMF 3개월 전 노동부에 신고된 전국 사업장 체불임금 금액도 6480억원에 달하면서 많은 근로자들이 임금도 받지 못하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주가 하락폭도 사상 최대 폭을 기록했다. IMF 이듬해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공공기업 108곳을 민영화시키고 공공부문 인력 14만명을 감원했다. 한보, 기아, 대우 같은 대기업이 부도를 맞는 등 하루 동안에만 회사 1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1998년엔 실업자가 92만명 늘었다. 실업률도 7%까지 치솟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당시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5.1%로 혹독한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다.

부족한 외화를 채우기 위해 전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이어갔다. 국민들은 장롱 속에 넣어 뒀던 결혼반지와 돌반지, 금두꺼비, 금메달 등 금붙이를 꺼냈다. 불과 두 달 만에 350만명이 참여했고, 아무런 대가 없이 모인 금은 227t에 이르렀다. 

이런 노력 덕분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3년 8개월 만인 2001년 8월 23일 IMF로부터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 중 IMF를 조기 졸업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200억 달러 안팎에서 머물던 외환보유액도 경상흑자,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등으로 꾸준히 늘면서 2001년 9월 1000억 달러, 2005년 2월 2000억 달러를 처음으로 넘었다. 마이너스로 추락했던 경제 성장률도 1999년 2.5%, 2000년 3.1%로 급격히 상승했다. 

IMF 위기 당시 1900원을 넘어섰던 원·달러 환율도 2009년 초까지 1400~1500원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같은해 9월 1200원대 아래로 내려가며 안정을 찾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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