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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철·김도균·김태원 그리고 이근형이 있었다

등록 2023.04.02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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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6년 만에 첫 솔로 음반

1980년대 중후반 풍미한 헤비메탈 밴드 '작은하늘' 기타리스트

1990년대 신성우 앨범 작업 등 프로듀서로 변신

임재범 '너를 위해' 등 대중음악 히트곡 다수 기타 세션도

[서울=뉴시스] 이근형. 2023.03.31.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근형. 2023.03.31.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때론 가사 없는 연주가 노래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 이근형(57)이 데뷔 36년 만인 최근 발매한 첫 솔로 작품집 '얼론… 낫 얼론(Alone…Not Alone)'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2세대 K팝 그룹 '뉴이스트' 출신 종현이 피처링한 '패닉 디스오더'를 제외하고 나머지 9개 트랙 모두가 연주곡이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 안에서 지극히 소수인 연주음악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기타 장인'이 내로라하는 베이스(신현권·장태웅), 드럼(장혁·나성호) 주자들과 함께 보여주는 실험이다.

이근형은 1980년대 중후반 국내 헤비메탈 신(scene)을 풍미한 '시나위'·'백두산'·'부활'과 함께 한 축을 이룬 '작은 하늘'을 이끌었다. 1984년 결성돼 1987년 정규 1집을 낸 작은하늘은 안정된 기량이 돋보인 팀이었다. 시나위에 몸 담았던 보컬 김종서, 베이스 강기영(달파란) 등 멤버들도 화려했다.

당시 헤비메탈은 젊은 층 사이에서 가장 유행한 '뜨거운 음악'이었다. 그 가운데 솔로 테크닉을 자랑한 이근형은 시나위 신대철, 백두산 김도균, 부활 김태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 기타리스트였다. 특히 작은 하늘의 '은빛 호수' '깨어진 약속' 기타 솔로는 지금까지도 기타 연주자들 사이에선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근형에겐 록 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후 프로듀서와 기타 세션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꾀했다. 특히 동생인 프로듀서 이근상과 함께 가수 신성우의 1집부터 3집까지 앨범 제작을 총괄하기도 했다. 앨범 수록곡 작·편곡 및 전곡 연주를 맡았다. '내일을 향해' '노을에 기댄 이유' '서시' 등을 히트시키는데 힘을 보탰다. 특히 '내일을 향해'를 미디로 찍어서 만드는 등 일찌감치 미디 음악에 관심을 갖고 실험적 행보도 거듭해왔다. 

'얼론… 낫 얼론'에도 록적인 성향보다 다채로운 색깔의 트랙이 담겼다. 음악평론가인 성우진 경인방송 '한밤의 음악여행' PDJ는 "이근형의 첫 솔로 곡들은 스탠더드하며 클린톤의 기타 성향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간 오랫동안 좋아한 제프 벡(Jeff Beck)의 느낌이나 일부에서는 에릭 존슨(Eric Johnson) 같은 기타 성향도 느껴지는 편이다. 부담 없고 어렵지 않은 진행 속에서 일부 곡에서는 살짝 현대적인 접목과 실험성이 더해져 있는 편"이라고 들었다.

그렇게 이근형은 연주 음악이 어떻게 해서 완성도를 갖출 수 있는지, 왜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는지 근거를 제시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에서 이근형은 "솔로 음반을 낸 뒤 책임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우선 앨범을 내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서울=뉴시스] 이근형 솔로 앨범 커버. 2023.03.13.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근형 솔로 앨범 커버. 2023.03.13.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스튜디오 레코딩 뮤지션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가혹해져요.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계속 커지니까 솔로 음반 발매를 주저하게 되는 거죠. 록 밴드 출신인 만큼 솔로보다는 밴드를 만들어 앨범을 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계속 했어요.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은 많이 해요. 다만 솔로 음반이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았어요."

-장르가 다양해요. 처음엔 지레짐작으로 록 위주의 음반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모든 게 섞여 저를 통해 나오는 걸 제 장르라고 생각해요. 블루스든 록이든 재즈든 제가 만들어서 밖으로 꺼내 놓는 것이죠. 팻 메스니, 조지 벤슨, 에릭 클랩턴처럼 특정 장르에 갇힌 뮤지션이 아닌 밖으로 자기 스타일을 끌어낸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편견 없이 장르를 받아들인 다음에 그걸 보여주게 된 거죠. 그렇다 보니까 어릴 때 했던 강력한 헤비메탈은 도태가 되더라고요. 사실 음반에서 10분 동안 기타 솔로를 하면 누가 듣겠어요. 하하. 그건 라이브에서 하면 되고 앨범에선 퍼포먼스보다 함축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어릴 때 어떤 음악을 좋아하셨고 기타는 어떻게 연주를 하게 되셨나요?

"형 친구가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저희 집에 가져다놓은 레드 제플린 LP가 있었어요. 그걸 듣다가 기타라는 악기에 자연스레 손을 댔죠. 놀이기구처럼 시작한 거예요. 본격적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 건 좀 시간이 지난 이후였죠."

-1980~1990년대엔 헤비메탈이 인기였죠?

"당시엔 그게 유행 음악이었어요. 젊은 친구들이 '뉴 웨이브'라면서 멋있다고 받아들였죠. 진보적이고 멋있는 최신의 음악이었습니다. 경쟁이 심할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았어요. (백두산의) 도균이 형은 제가 기타 연주를 잘한다면서 서라벌 레코드 홍창규 사장님에게 저를 소개해줬죠. 그래서 '작은 하늘' 음반이 나왔어요."

-작은하늘은 1998년 2집을 냈는데 동생 분인 이근상 씨가 기타를 맡고 프로듀서로 빠지셨어요.
[서울=뉴시스] 이근형. 2023.03.31.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근형. 2023.03.31.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동생이랑 김재기(보컬), 장혁(드럼) 씨가 팀이 됐고 프로듀서를 제가 한 거예요. 전 그 때 '카리스마'(이근형·김종서에 드러머 김민기, 베이스 박현준으로 결성됐던 팀으로 진보적 헤비메탈을 들려줬다)를 하고 있기도 했죠. 기타를 반 정도 연주했어요."

-카리스마의 음반은 지금까지 명반으로 통합니다.

"사실 이후 스튜디오 녹음을 하면서 그 시절에 만든 걸 '흑역사'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배운 게 '음악은 시간의 기록'이라는 거예요. 당시 했던 걸 새로 해봤는데 그 때 느낌이 사라지더라고요. 테크닉은 좋아졌지만 날 것의 느낌이 없는 거죠. '옛날 거라고 무조건 안 좋다고 치부할 필요는 없구나'라는 걸 느꼈죠. 그 뒤로는 들어줄 만했어요. 베이스를 맡았던 박현준 씨는 H2O·삐삐밴드에도 몸 담았는데 기타를 어마어마하게 잘 쳐요."

-카리스마 이후 프로듀서로 나서게 된 건가요? 로큰롤 플레이어로서 욕심은 없었나요?

"당시 음향기기, 미디 작곡 등에 대해 흥미로워했어요. 그렇게 다 미디로 만든 곡이 '내일을 향해'였어요. 당시 기타 연주보다 '이게 더 맞다'는 생각을 했지만 록 음악을 버리진 못하고 계속 꿈 꿨어요. 록 밴드는 하지 않지만 노래를 만들어서 다른 가수에게 줄 수 있는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게 신성우 씨의 곡들인 거예요. 운이 좋았죠. 가요 형식의 곡들이 아니었거든요."

-임재범 '너를 위해'와 '고해', 김범수 '보고 싶다', 이은미 '애인 있어요', 브라운 아이즈 '벌써 1년', 김건모 '서울의 달', 엠씨더맥스(MC The Max) '잠시만 안녕' 등 히트곡들의 세션으로도 유명하십니다.

"세션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작곡가 윤일상 씨에요. 일상 씨가 김태영 씨의 곡을 썼고 제가 기타 솔로 부분을 연주했거든요. 이후 일상 씨에게 전화가 와 같이 음악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본인이 만든 노래를 들려줬는데 끝내줬어요. 미국 팝스타 프린스 음악 같은 게 있었어요. 일상 씨는 히트곡이 없던 시절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일상 씨랑 작업이 재미있었던 게 제가 잘 모르는 흑인 음악, 테크니컬한 음악을 들려주니까 신기하더라고요."

-앨범에 실린 곡들이 다 좋았는데 소방공무원에게 헌정한 '파이어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뉴시스] 이근형. 2023.03.31.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근형. 2023.03.31. (사진 =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평소 목숨까지 걸고 일하시는 소방 공무원에 대한 존경심이 컸어요. 공무 중에 돌아가신 소방관을 추모하는 공연에 함께 한 적도 있었거든요."

-김종현 씨와 작업은 어땠나요?

"엄청나게 열심히 하더라고요. '저렇게 열심히 하니까 유명한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죠. 또 곡에서 들어가고 빠지는 타이밍을 잘 알아요. 랩 가사도 다 써왔어요. 무엇보다 착했습니다."

-앨범엔 예전에 만드셨던 곡들도 실린 거죠?

"네 예전부터 쌓아온 것들이에요. 10년 전에 만들어 놓은 것도 있고요. 가장 오래된 곡이 첫 트랙 '더 파이널'이에요. '패닉 디스오더'도 오래됐고요. 신성우 씨랑 작업할 때 스케치해 놓은 것들을 에버모어 엔터테인먼트 권기욱 대표가 들으시고 '솔로 한번 해보시죠'라고 제안하신 게 힘이 됐어요. 전 제 음악이 좋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주변 분들 반응을 보고 움직이고 싶었죠. 무엇보다 제 음악엔 예전부터 좋아하는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주가 있어요. 레드 제플린, 밴 헤일런, 저니, 핑크 플로이드, 에릭 클랩턴, 팻 메스니… 등이요."

-이번 앨범을 낸 뒤 뮤지션으로서 달라진 게 있나요?

"음악 속에 늘 살고 있어서 환경이 크게 달라진 거 아니에요. 다만 책임감이 더 생겼어요. 후배들이 좋게 평가해주고 자신들 제자들에게 곡들을 소개하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죠. 사실 제 위치가 록 연주자와 세션 연주자들 사이에 있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제 색깔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어요. 복잡한 테크닉을 연주하는 사람은 가요의 간략하고 담백한 걸 갈망할 때가 있고, 가요 연주자들은 반대로 테크닉을 갈망하죠. (둘 사이를 아우를 수 있는 선생님은 유연한 것이 아니냐고 묻자) '토토'의 스티브 루카서 토토가 그렇죠. 마이클 잭슨 '비트 잇'을 비롯해 라이오넬 리치, 리처드 막스 등 다른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를 많이 했죠. 저 역시 음반 작업뿐 아니라 공연도 많이 했으면 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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