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 인터뷰]김성욱 "듀스 김성재 태양만들기 프로젝트 시작합니다"
24년 전 의문사 김성재의 동생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995년 의문의 사망사건으로 데뷔 2년만에 세상을 떠난 그룹 듀스(Duex) 출신 가수 고(故)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4일 저녁 서울 성수동 베일드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8.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최지윤 기자 = 슬픔과 분노로만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다.
듀오 ‘듀스’의 김성재(1972~1995)가 세상을 떠난 지 24년째다.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지만 밝혀진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동생인 김성욱(45)씨와 어머니 육미승(73)씨 등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진실뿐이다.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가 희망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2일 김성재의 옛 여자친구인 김모씨가 제기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방송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채권자(김씨)의 인격과 명예에 중대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알’이 결방된 것은 13년 만이다. 또 다시 좌절하지 않았을까 예상했지만, 김성욱씨는 “방송금지를 당할 줄 알고 있었다”며 담담해했다.
“방송금지를 당했으면, 한 부분이 있었죠. 다들 ‘어떡해요’라고 걱정해도 ‘괜찮다’고 한 이유가 있어요. 김씨가 ‘그알’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사회현상으로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죠. 제작진과 법원 외에는 아무도 ‘그알’을 못 봤는데, 김씨 스스로 범인으로 몰렸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요? 방송이 나갔으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겠지만 관심은 1주일 정도 갔을까요? 오히려 방송금지가 된 후 젊은 세대들도 ‘‘그알’이 결방됐대’ ‘듀스가 누구야? 죽었어?’라며 관심을 가져줘요. 의혹을 증폭시켜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사법부가 아직도 썩어 있다’는 것도 보여줬고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995년 의문의 사망사건으로 데뷔 2년만에 세상을 떠난 그룹 듀스(Duex) 출신 가수 고(故)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4일 저녁 서울 성수동 베일드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8.15. [email protected]
김씨는 “지금은 계속 달려가야 할 때다. 내가 만든 계기도 아니고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사회현상이 되지 않았느냐. 잘 풀어나가면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성공 못해도 좌절하지는 않을 거다. 19만9000명에서 멈춰도 다른 길이 있을 테니까”라는 긍정적인 자세다.
SBS도 반격에 나설 전망이다. 항소를 준비 중이며, 제작진은 추가 제보도 받고 있다. 12일 SNS에 김성재 해시태그를 달고 “1980~90년대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구도심과 고군산군도 일대의 개발 과정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또한 군산지역에서 일명 ‘15자매’라고 불린 분들에 대한 제보를 기다립니다”라고 알렸다.
그 동안 영화·드라마에서는 고인의 사망사건이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도 그때뿐,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알’이 고인의 사건을 다루게 된 데는 팬들의 힘이 컸다. 김씨가 5년 전부터 함께하고 있는 모임 ‘늘 함께 해 성재’다. 매년 4, 11월에 모여 김성재와 함께 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멤버 한명의 집념이 강해요. 거침없고 많은 정보를 알아서 경찰도 안 하는 걸 해내죠. 정말 ‘어메이징’해요. 이 팬이 2년 전부터 (그알) 배정훈 PD에게 자료를 주기 시작했죠. SBS가 취재를 했지만, 계기는 이 친구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저와 어머니까지 삼위일체가 됐다고 할까요. 이번에도 강하게 느끼지만, 오래 살다보니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게 없더라고요. 몇 년 전 1990년대 가요 붐이 다시 일어났잖아요. 모든 일이든 시기가 맞아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995년 의문의 사망사건으로 데뷔 2년만에 세상을 떠난 그룹 듀스(Duex) 출신 가수 고(故)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4일 저녁 서울 성수동 베일드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8.15. [email protected]
“형은 직업적으로 가수를 한 게 아니에요. 춤추고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즐겼죠. 설렁설렁 춤을 춰도 미친 듯이 열심히 추는 사람보다 눈에 띄어요. 엄청 열심히 출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많이 틀리더라고요. (웃음) 근데 아무도 몰라요. 즐기는 사람한테는 당해낼 수가 없죠. 그만큼 연습을 열심히 해 즐기기 위한 준비가 돼 있었던 거에요. 그 사람 만이 가진 유니크함이 있잖아요. 뭐라고 설명이 안 되는데 그냥 김성재라는 말밖에 없어요. 조용필 선배를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요.”
김성재의 사망은 충격 자체였다. 1995년 11월20일 서울 홍은동 스위스그랜드호텔(현 그랜드힐튼 서울) 별관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른팔에는 28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고, 시신에서는 동물 안락사용 마취제인 ‘졸레틸’이 검출됐다. 오른손잡이인 김성재가 오른팔에 주사를 꽂기 힘들었을 터다. 더욱이 사망 하루 전인 19일 김성재는 SBS ‘TV가요 20’에서 솔로 데뷔곡 ‘말하자면’을 선보였다. 어머니에게도 ‘곧 얼굴 뵈러 간다’고 전화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김씨는 1심에서 사형이 구형됐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 3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김성욱씨는 2005~2006년께 우연히 김씨를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친한 선배를 따라 치과에 갔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보니 김씨였다”면서 “밖에 나가 어머니에게 전화했는데, 아들이 사고 칠까봐 걱정해 그냥 돌아갔다. 며칠 뒤 친구가 찾아가보니 병원은 문 닫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씁쓸해했다.
김씨에게 ‘고소를 당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변호사라도 나올테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복수하고 싶은 게 아니”라며 “범인이라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못 잡는다. 이 나라에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무리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못 풀어낼 수도 있지만, 형의 사건을 꼭 마무리 짓고 싶다”고 바랐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995년 의문의 사망사건으로 데뷔 2년만에 세상을 떠난 그룹 듀스(Duex) 출신 가수 고(故)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4일 저녁 서울 성수동 베일드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8.15. [email protected]
“형이 뚜껑을 모은다고 맥주 ‘밀러’를 마셨어요. 호텔에 밀러 반 정도 마신게 남아 있었는데, 그걸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입을 댔는지도 모르고, 뭐 탔을 수도 있으니 검사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당시 CCTV인 베타테이프가 일정 시간대만 사라졌어요. 의심을 받는 부분을 다 없앴으니 오히려 스스로 의심을 사는 거죠. 처음 이 사건을 맡은 수사관들을 만나고 싶어요. 최초로 현장에 간 이들이 현장을 훼손한 거잖아요. 마치 증거를 다 없애러 간 것 처럼요. 이번에 ‘그알’을 하면서 알았어요. 그때 저는 군대에 있었는데, 어머니가 한번도 재판이 언제 열리는지 통지를 못 받았다고 해요. 자기네들끼리 재판을 한 거죠. (한숨)”
인터뷰 내내 김성욱씨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형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행복해보였다. 김성재의 얼굴이 겹쳐 보여 추억에 잠기게 했다. ‘형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느냐’고 묻자 “저랑 비슷하겠죠. 밝고 장난기 많고, 즐겁게 살지 않았을까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가장 후회되는 게 있어요. 형은 ‘나 좋아하지?’라며 계속 표현하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싫어’라며 툴툴거렸죠. 주위에서 ‘너희 형, 오빠 최고야’라고 하면 ‘어디가 멋있어?’라고 묻곤 했어요. 실제 형제들은 그렇잖아요. 형의 솔로 데뷔곡 ‘말하자면’ 무대를 보고 처음으로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 동안 표현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편지를 썼어요. 그 편지를 못 보고 형이 떠난 게 지금까지 한이에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995년 의문의 사망사건으로 데뷔 2년만에 세상을 떠난 그룹 듀스(Duex) 출신 가수 고(故)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4일 저녁 서울 성수동 베일드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8.15. [email protected]
‘김성재 동생’이라는 말이 버거울 때도 있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힘들었다”면서도 “1집 발표하고 가수 활동하면서 떨쳤다”고 한다.
“나중에 알았어요. 아, 자랑스러운거구나. 엄마들이 자기 이름은 사라지고 ‘성재 엄마’라고 불려도 자랑스러운 것과 마찬가지에요. 나를 아는 사람은 성욱이라고 부르니까. 자존감이 낮으면 힘들 수 있지만, 스스로 김성욱인 걸 알아서 호칭은 중요하지 않아요. 김성재의 동생은 유일한 나라서 특별한 거라고 생각해요. 형은 보는 사람마다 ‘내 동생 멋있어’ ‘우리 엄마 예술이야’라고 말했어요. 형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 돼야죠. 제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형의 억울한 점과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고 저도 좀 살아야죠. 사는 게 사는거 같지 않거든요.”
물론, 형 이름 위에 올라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형이 세상을 떠난 후 “계속 형인 척 하면서 살와서 혼돈이 왔다”고 한다. 3년 전쯤 다시 스스로를 찾았다며 “중심에는 내가 있고, 형이 들어왔다. 형이 있고 내가 녹아든 게 아니다.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나빠지든 좋아지든 또 어떤 내가 나올지 기대하고 있다”며 웃었다. “지금은 성재 형 이름 속에 내가 녹아버렸으면 좋겠다. 형의 짙은 그림자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995년 의문의 사망사건으로 데뷔 2년만에 세상을 떠난 그룹 듀스(Duex) 출신 가수 고(故)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14일 저녁 서울 성수동 베일드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8.15. [email protected]
김성욱씨는 어머니 이름으로 ‘더 김성재’도 설립했다. 아이들에게 춤, 노래를 무료로 가르쳐주고 장학금 등도 전달할 계획이다. 11월에는 김성재 피규어도 출시된다. 영화배우 이소룡(1940~1973)의 브루스리닷컴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이소룡도 인생의 굴곡이 많은데 노란 트레이닝복, 쌍절곤 등 밝은 이미지만 떠오르지 않느냐. 성재 형도 만화 캐릭터처럼 살아 움직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저는 엄마와 딸 그리고 태어날 아이도 있지만 먼지처럼 사라지는 게 꿈이에요. 저를 점점 지우면서 성재 형을 돋보이게 하고 싶죠. 형을 태양으로 만들고, 저는 달도 아니고 바람이나 구름이 되고 싶어요. 김성재 태양 만들기 프로젝트를 할 겁니다. 저는 잊되 ‘김성재를 기억해주세요’가 메시지에요. 사망사건 미스터리를 풀지 않으면 형은 항상 슬퍼요. 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도 따라 다니죠. 듀스 무대도 무대지만, 솔로무대를 보면 말이 필요없어요. 이제 눈물은 사라지고 감탄만 남았으면 좋겠어요. 형이 떠난 후 싸울 상대는 제 자신이 됐어요.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지치면 끝이니까요. 성재 형이 살아 있다면 분명히 지지해줄거에요. ‘역시 내 동생 재미있는 짓 하는구나’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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