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송강호 "저도 이런 제가 반가워요"
영화 '1승' 무능한 배구감독 김우진 맡아
송강호 코미디 진수 "이런 모습 24년만"
"기생충 후 관객에 환한 기운 주려 선택"
한국영화 최초 배구 소재 "오랜 배구 팬"
"늘 도전적인 작품에 끌려 '1승'도 그랬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아마도 관객이 제 이런 연기를 보는 건 24년 만일 겁니다. 반갑지 않으실까요."
배우 송강호(57)의 데뷔 초기 필모그래피를 아는 관객은 그가 얼마나 빼어난 코미디 연기를 하는지 기억할 것이다. 물론 송강호의 연기엔 언제나 특유의 유머가 있다. 하지만 초창기 대놓고 코미디를 할 때완 결이 다르다. 요즘으로 치면 수도 없는 버전의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양산한 '넘버3'(1997)에서 연기라든지,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에서 보여준 그 탁월한 코미디는 그를 현재 위치에 있게 해준 기반이 됐다. 그런 송강호식(式) 코미디를 새삼 다시 맛볼 수 있는 작품이 오는 4일 공개된다. 신연식 감독이 연출한 '1승'이다. "저도 제 이런 모습이 반가워요. 그동안 이런 연기를 일부러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겁니다.(웃음)"
이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김우진은 무능한 배구 감독. 이겨본 적이라곤 없는 그가 역시 이겨본 경험이 없는 프로여자배구팀 핑크스톰의 감독이 돼 1승 사냥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괴짜 구단주이자 재벌 2세인 강정원(박정민)은 김우진과 선수들에게 1승을 하면 20억원을 쏘겠다고 선언하고, 김우진과 핑크스톰 이 오합지졸은 승리를 위해 모든 걸 던진다.
오해하지 말 것. 김우진은 무능해 보이지만 비범함을 숨긴 인물 같은 게 아니다. 그는 정말 별다른 능력이 없다. 지도자로서 카리스마 같은 게 있을리도 없다. 선수들에게 화풀이하고 짜증 내기 일쑤고, 어떤 때는 경기 양상을 선수보다 더 모른다. 이 희한한 배구 감독을 송강호는 특유의 넉넉한 재치로 끌어 안는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송강호만의 코미디 감각에 아마도 관객은 상영 시간 107분 간 내내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제 가족 중에 한 어르신이 그러더라고요. '네 영화 중에 제일 재밌다'고요. 그 전에 좋은 작품 많이 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좋은 작품인 건 알지만 재미는 이게 제일'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개봉은 2024년에 하지만 '1승'은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촬영한 작품이다. 송강호가 '기생충'(2019)으로 연기 경력 정점에 올라선 뒤 선택한 영화라는 얘기다. "뭐랄까요. 그동안 어딘가 억눌리고 쥐어짜여지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물론 진지하고 깊이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런 인물이 있는 영화를 하는 건 중요하고 좋죠. 하지만 관객에게 시원한 박하사탕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기생충'을 끝내놓고 잠깐 쉬고 있었는데, 마침 이 작품에 관해 알게 된 겁니다."
송강호는 2016년 영화 '동주'를 보고 나서 각본을 쓴 신연신 감독이 궁금했었다. 윤동주 시인을 보는 그 새로운 시각이 독특해서 좋았다. 다만 신 감독과 특별한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0년 신 감독에게 각본을 봐달라는 연락을 갑작스럽게 받았고, 그가 준비 중인 작품 중에 '1승'이라는 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원래 제가 그런 연락을 받으면 대본 보고 연락 드린다고 말씀드린 뒤에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다시 연락을 합니다. 그게 정석이죠. 근데 신 감독님이 연락을 준 그날 제가 바로 만나자고 했어요. '동주'를 너무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만나서 '1승'을 하기로 한 거죠."
송강호는 '1승'을 하기 전부터 배구 팬이었다. 오랜 시간 중계 방송을 일일이 챙겨볼 정도로 배구라는 스포츠의 묘미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여자배구팀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스포츠 영화엔 어쩔 수 없는 전형성이 있잖아요. 우리 영화에도 그런 부분이 있죠. 다만 전 '1승'이 큰 도전이라고 봤습니다. 한국영화 중에 배구가 소재인 작품은 없었으니까요. 이 배구라는 스포츠가 참 다이내믹하고 풍성한 종목인데, 이걸 영상화 했을 때 재미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본 겁니다. 물론 참 어렵겠지만 '한 번 해보자'며 의기투합한 겁니다."
결국 송강호가 '1승'을 택한 건 바로 이 도전적 요소 때문이었다. 그는 새 작품이 나와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빼먹지 않고 말하는 게 바로 도전이다. 선택 기준은 언제나 해보지 않은 것, 새로운 것, 그래서 도전해볼 만한 게 있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영화에 안전한 선택이라는 것도 없지만, 안전하다고 하는 선택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 모험심이랄까, 저한텐 새로운 것을 향한 갈증이 늘 있어요."
"흥행이 될 거다, 안 될 거다, 이런 기준으로 작품을 골라본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렇습니다. 흥행이 잘 됐던 구간이 있고, 잘 안 됐던 구간이 있어요. 사실 요즘 제 작품들이 잘 안 되기도 했죠. 하지만 누가 봐도 (흥행이) 될 것 같아서 작품을 선택할 일을 없을 거예요."
그는 '1승'이라는 제목이 너무 좋다고 했다. 단순히 배구의 1승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1승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란다. 살다 보면 일이 안 풀릴 때도 있고, 자신감을 잃을 때도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1승 혹은 내 삶의 1승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퇴근 후에 통닭 한 마리 사서 들어가는 것도 1승일 수 있잖아요."
배우로서 송강호의 첫 1승의 기억에 관해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초록물고기'(1997)를 골랐다. 송강호의 영화 데뷔작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긴 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단역이었고, 사실상 진짜 데뷔작은 '초록물고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제가 연극을 딱 그만 두고 '초록물고기'에 전념했어요. 당시에 하고 있던 연극이 있었는데, 연출님이 저를 배려해줬죠. 이번 영화에 올인 해보라고요. 제 분량이 많지 않으니까, 연극과 병행할 수 있었거든요. 정말 모든 걸 다 걸고 연기했습니다. 올인 한 거죠. 그렇게 했던 영화가 '초록물고기'라서 저한테 1승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송강호 차기작은 내년 4월부터 촬영을 시작하는 시리즈 '내부자들'이다. 그에게 또 너무 진지한 작품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시리즈 '내부자들'이 시즌1과 시즌2가 있는데, 그 사이에 간격이 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또 '1승' 같은 작품을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 물론 정해진 건 아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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