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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없는 '보라카이 보험 살인'…재판부가 무기징역 선고한 이유는?

등록 2025.01.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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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 받은 40대

채무변제·고액 사망보험금 노려 범행 저질러

재판부 "졸피뎀 투여해 항거불능상태인 피해자 살해"

[부산=뉴시스] 부산 연제구 부산법원종합청사 전경. (사진=뉴시스DB)

[부산=뉴시스] 부산 연제구 부산법원종합청사 전경. (사진=뉴시스DB)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수억 원에 달하는 생명 보험금을 노리고 고교 동창을 필리핀에서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A(40대)씨. 범행 직후 피해자의 시신은 현지에서 곧바로 화장됐었다. 시신을 찾지 못하거나 없는 살인 사건의 재판에서는 살인죄 적용 여부가 엇갈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어떤 판단에서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을까.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용균)는 강도살인 및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A(40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 A씨와 함께 생명 보험금 서류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보험설계사 B(40대)씨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40여 분 동안 A씨의 모든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며 유죄의 정황들을 나열했다.

수상한 사망보험…수익자는 가족 아닌 '친구'

[부산=뉴시스] 피고인이 보험 청약서에 위조 기재한 피해자의 서명. (사진=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 피고인이 보험 청약서에 위조 기재한 피해자의 서명. (사진=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0년 1월 초순경 고등학교 동창 A씨와 보라카이 여행을 떠난 C(39)씨는 호텔 객실 침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유족들에게 알코올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C씨가 숨졌다고 설명하면서 C씨의 시신을 곧바로 현지에서 화장하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A씨의 행동이 미심쩍었지만, 당시 C씨의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 현지에서 화장하기로 했다.

이후 C씨 유족들은 화장 절차에 썼던 경비를 A씨에게 건넸고, A씨는 C씨가 자신에게 6000만원을 빌렸다며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A씨가 유족들에게 건넸던 공증서는 허위 공증서였고, 실제로는 A씨가 타투샵 운영비를 명목으로 C씨에게 6000만원을 빌렸었다. 더구나 A씨를 C씨에게 고액의 생명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최대 6억9000만원에 달하는 사망보험금의 수익자는 가족들이 아닌 A씨로 기재돼 있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유족들은 C씨의 사망과 관련해 수사를 요청했다. A씨는 유족들에게 공증서 관련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수사를 통해 허위 공증서임이 드러나 소송을 취하했다. A씨는 또 보험회사에 C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되려 사기미수죄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수사기관은 A씨가 C씨로부터 채무변제를 피하고, 거액의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 보라카이에서 C씨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뒤 질식시켜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시신 없는 살인 사건…법원이 판단한 피해자 사망원인은?

[부산=뉴시스] 피해자의 운구함. (사진=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 피해자의 운구함. (사진=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부는 현지에서 피해자의 시신이 화장돼 법정에 법의학자와 전문심리위원, 부산경찰청 과학수사과장 등을 불러 피해자의 모든 사망 원인에 대해 면밀히 살펴봤다.

먼저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과 '제3자에 의한 타살' 가능성에 대해 배제했다. 피해자의 시신에서 자해나 음독 등 자살과 관련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피해자가 사망한 객실에 A씨 외에 출입하거나 침입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또 현지 검안의가 피해자 사망원인으로 지목한 '급성알코올중독'에 의한 사망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결국 피해자의 사망 원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피고인의 의도적 개입에 의한 사망, 즉 살인의 가능성이 가장 유력했다.

재판부는 지속적으로 바뀌는 A씨의 진술에 대해 주목했다. A씨는 ▲피해자가 술을 마치고 잠든 시각 ▲호텔에서 피해자의 자세를 변경한 시점과 이유 ▲아침에 일어나서 짧게 외출한 목적 ▲피해자의 사망사실을 발견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한 진술이 전혀 일관성이 없었고, 신빙성 또한 없었다.

아울러 A씨는 자신의 아내에게 보라카이 여행 경비를 요청하면서 카톡으로 "묻따말(묻고 따지지도 말고) 200만원만 보내줘. 얼른 작업해서 벌어다 줄게"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강도살인 범행을 의미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A씨는 또 ▲피해자가 사망한 지 불과 4일 만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한 점 ▲피해자 유족과 만나는 걸 대비해 거짓말 연습까지 해가며 허위 채무 변제를 요구한 점 ▲피해자의 유품인 카메라 렌즈를 팔며 아내에게 외식하자는 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보면 최근 보라카이에서 절친한 친구를 잃은 사람의 일반적인 행동으로 보기 어려웠다.

재판부는 "피해자로부터 6000만원 변제를 독촉받은 점과 A씨가 피해자를 설득해 피해자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사망보험을 체결하게 하고, 보험설계사 B씨와 공모해 피해자 몰래 사망 수익자를 자신으로 지정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살의를 품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며 A씨의 살인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가 불상의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투여해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살해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봤다.

피해자가 사망 당일 입었던 의류에서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으며, 국내에서 졸피뎀이 든 수면유도제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구할 수 없다. 하지만 피해자는 졸피뎀이 든 약품을 처방받은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A씨가 간호조무사인 아내를 통해 졸피뎀 성분이 든 알약 127정을 수수한 범죄사실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또 현지 검안의는 피해자에 대한 목 위쪽 울혈, 부은 혀, 주변 손톱이나 손자국 등 전형적인 질식사의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경부압박 없이 코와 입을 막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소견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A씨는 공범인 B씨에게 '질식사 사망보험금 상해·재해 인정 여부'라는 제목의 웹사이트 링크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A씨의 주장과 같이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 아니면 현지 검안의가 작성한 사망증서에 나온 '알코올 중독' 또는 '급성심장사'를 원인으로 하는 보험금 지급 사유를 조사·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질식사를 사인으로 하는 내용을 보낸 것은 A씨가 최초 '질식사'로 사인을 추정할 수 있을 만한 사정을 B씨에게 이야기하면서 사망보험금의 지급 여부를 문의했음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사정"이라면서 A씨의 강도살인에 대해 유죄로 인정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A씨. 법정 구속되기 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억울하다"였다. 마지막까지 반성하지 않는 A씨의 모습을 본 유족들은 굵은 눈물을 쏟아낼 뿐이었다.

1심에 불복한 A씨는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공감언론 뉴시스 kwon9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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