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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전 깎아서 팔면 다행"…강남·용산 '토허제' 날벼락에 '분통'[르포]

등록 2025.03.20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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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삼·대·청' 중개업소 문의 쇄도

"5000만원 깎아줘 가까스로 계약"

"1~1.5억 호가 낮춰"…매수자가 '갑'

갈아타기 수요자 선매수했다 '난감'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단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5.03.19. ks@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단지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5.03.19. ks@newsis.com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배우자 반대에도 하루 일찍 계약금을 넣었다가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매수자도 있어요. 유예기간도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책을 갑자기 바꾸면 일선 현장은 혼란스러워요."

해제됐던 서울시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이 35일 만에 강남3구와 용산구로 확대 지정된 뒤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작정이라도 한 듯 하소연을 쏟아냈다. 별안간 날벼락을 맞은 공인중개사와 집주인들은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에 분통을 터트렸다.



20일 오전 뉴시스가 찾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인근 상가 3곳의 중개업소들은 한두 곳만 빼놓고 대부분 영업 중이었다. 지난 18일에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현장 점검을 피하려 불을 끄고 암막커튼까지 쳤던 공인중개업소는 이틀 만에 활짝 문을 열었다.

한 공인중개업소는 직원 3명이서 전화통을 붙들고 상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또 다른 부동산에선 장바구니를 든 주민이 불쑥 들어와 "24억3000만원까진 안 따라올까"라며 급매로 내놓은 매물 상황을 묻고 가기도 했다.

잠실동 A 중개업소는 "토허제 재지정으로 계약이 취소될 뻔했다가 가까스로 계약된 경우도 있다"며 "집주인이 25평 매물을 24억5000만원으로 고집하다가 토허제 해제로 매수자가 계약을 안 하려 하자 어젯밤에 5000만원을 깎아서 극적으로 팔았다"고 말했다. 이어 "엊그제까진 매도자가 갑이었는데, 이젠 매수자가 갑이고 매도자는 을"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역은 지난달 토허제 해제로 수혜를 본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의 대표격이었다.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30억 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경신했고, 트리지움 전용 149.45㎡도 직전 거래보다 1억5000만원 오른 38억원에 팔렸다.

하지만 전날(19일) 정부가 기존 해제 지역뿐 아니라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전체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확대 지정하면서 상황이 일변했다. 지정 면적은 서울 전체 면적(605.24㎢)의 27%인 163.96㎢로, 종전의 3배 수준이다.

재지정 이전 2~3억원씩 오르던 호가도 이제는 1억원에서 1억5000만원 이상 낮추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지역 부동산의 설명이다. 토허제가 적용되는 오는 24일 전까지 계약해야 전세를 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매도인들이 호가를 낮추고 있는 셈이다.

잠실동 B 중개업소는 "전세를 안고 갈아타기를 하려던 집주인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25평 집주인이 전세를 안고 33평을 27억원에 선매수했다가 살던 집을 팔 수가 없어 난리"라고 전했다.

이 중개업소는 "토허제 해제로 분위기가 좋았다가 뒤죽박죽이 됐다"며 "집주인 입장에선 한 달 사이에 집값이 3~4억원이 올라갔다가 이젠 그만큼 내려가게 생겼으니 기절초풍하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앞에 아파트 시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5.03.19. ks@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앞에 아파트 시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5.03.19. ks@newsis.com



토허제로 신규 지정된 용산구 동부이촌동 아파트 밀집 지역도 뒤숭숭한 기색이다. 이 지역 대장아파트인 LG한강자이 전용 171㎡는 지난 5일 42억원에 매매되며 신고가를 찍은 바 있다.

이촌동의 C 중개업소는 "갑자기 용산 전 지역을 토허제로 지정할 줄 누가 알았겠냐"며 "강남이 10억 오를 때 용산은 2~3억 오른 새 발의 피인데 핀셋 규제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하느냐"고 분개했다.

오는 9월30일까지 6개월로 정해진 토허제 지정 기간을 놓고도 믿을 수 없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반응이다. 한 중개업소는 "매도자도 매수자도 6개월 뒤에 전세를 끼고 사고팔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한 달 만에 엄청난 정책을 바꾸느냐" "오세훈은 서울시 행정을 자기 마음대로 하느냐" 등 토허제 대상지역 집주인들의 성토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도 토허제 재지정이 '악수'(惡手)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에 포함되지 않은 한강벨트 등으로 갭투자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해제된 지 한 달 만에 다시 지역을 확대해 재지정된 것은 정책 신뢰도를 훼손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7월 예정된 DSR 3단계 규제 강화, 금리 인하 여부, 정치적 불확실성과 맞물리며 시장 참여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formati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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