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병헌의 절감, 관객의 실감
영화 '승부' 한국 바둑 상징 조훈현 맡아
이창호와 사제대결서 느끼는 감정 담아
"안 되나, 이 한 마디에 모든 것 담았다"
조훈현 모든 버릇 모사 디테일 인상적
"조훈현 외모보다 심정 따르고 싶었다"
![[인터뷰]이병헌의 절감, 관객의 실감](https://img1.newsis.com/2025/03/24/NISI20250324_0001799582_web.jpg?rnd=20250324224405)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세계 최고라는 말도 모자라 신에 가깝다고 불렸던 사람이 이제는 정점에서 밀려났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충격이란 어떤 것일까. 게다가 그 자리를 자신이 키운 제자에게 빼앗길 때 그 당혹이란 무엇일까. 최강이라는 칭호를 되찾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봐도 도무지 되지 않는다고 절감할 때 그 무력이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아마도 이 마음들은 어쩌면 글이나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마음을 정확하게 묘사해내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심정을 배우가 연기로 내보이려고 한다면 조금은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최대한 유사하게 이해하고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으로 드러낸다면, 보는 이는 그 내면을 어쩌면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종종 배우들의 눈에 관해 말하곤 하는 건 그 잊히지 않는 눈빛 하나에 오만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영화 '승부'(3월26일 공개)에서 배우 이병헌(55)의 연기는 아마도 이런 사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를 보고 있으면 너무 복잡다단해서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조훈현 국수(國手)가 이창호 9단과 대결이 거의 끝날 때쯤 '음…안 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어려운 연기였습니다. 그 한 마디로 조 국수의 마음 속 그 말 못할 감정을 관객이 느끼길 바랐거든요. 그 대사를 하고 대국장을 빠져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이제 하산해도 될 것 같다"고 한 뒤에 비로소 혼자된 그가 당황스러운 감정으로 먼 하늘을 볼 때 그 마음. 몇 번이고 다시 찍었습니다. 계속 다시 찍었어요. 며칠 뒤에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감독님에게 다시 찍고 싶다고 했죠."
이병헌은 한국 바둑을 세계 최고 자리에 올려놓은 전신(戰神) 조훈현을 연기했다. '승부'는 조훈현과 그의 제자이자 역대 세계 최고로 불리는 이창호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기사의 이야기이긴 해도 중심은 조훈현 쪽에 가 있다. 이창호의 기재를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서 키우며 가르친 조훈현, 제자에게 '잡아 먹힌' 조훈현, 한물 갔다는 평가와 처절한 열세 속에서 기어코 다시 승부를 보려는 조훈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병헌은 마치 조훈현을 집어 삼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연기한다. 그의 헤어스타일과 당시 그가 입은 의상을 똑같이 입는 건 당연하고, 수를 고민할 때 손의 위치, 손가락의 모양, 담배를 피우는 모습, 승리를 확신할 때의 버릇 등을 완벽에 가깝게 모사했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며 연구한 것 뿐만 아니라 조훈현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조 국수님께 제가 질문하고 말씀해주는 걸 듣는 것도 중요한데, 그보다는 말씀하실 때 느낌이나 버릇 등을 캐치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하나 씩 조 국수님을 따라 가면서 그가 되어 보려고 한 거죠."
![[인터뷰]이병헌의 절감, 관객의 실감](https://img1.newsis.com/2025/03/24/NISI20250324_0001799583_web.jpg?rnd=20250324224426)
이병헌에게 중요했던 건 조훈현과 얼마나 비슷하게 보이느냐였다. 그건 외모에 국한한 게 아니었다. 이병헌이 원한 건 그때 그 조훈현의 마음을 얼마나 비슷하게 느끼고 그걸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였다. "외적인 부분들, 실존 인물의 버릇 같은 걸 흉내 내는 건 배우에겐 큰 고민은 아니라고 봐요. 각 분야 스태프들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 국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저 혼자 해내야 하는 거죠. 대국을 앞둔 마음가짐, 졌을 때 느낌. 제가 고민했던 건 이런 것들이었어요."
이병헌의 '조훈현 되기'는 '나도 조훈현 같은 감정을 느껴본 적 있다'라는 생각으로 모아졌다. 조훈현처럼 극적으로 낙폭이 큰 건 아닐지라도 내면의 들끓는 불안과 고통을 삶의 매순간 느끼며 살아가는 게 필부필부의 인생이니까 말이다. "밖에서 볼 땐 모르죠. 내 안의 마음은 다른 사람이 잘 몰라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저 좋아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내 안에선 힘들어 미치겠는 거죠. 저 역시 그렇게 살고 있고요. 그런 때가 되면 다시 바닥에서 차근차근 올라가야 하는 거죠.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이병헌은 최근 박찬욱 감독과 함께 찍은 영화 '어쩔수가없다' 얘기를 꺼냈다. "'승부'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얼마 전에 '어쩔수가없다' 찍는데도 한 두 세 번 정도 그런 게 왔어요. '아, 정말 이 연기는 못하겠다' 싶은 순간이요. 연기를 30년 넘게 해도 이렇다니까요. 고민의 양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이창호 9단을 만난 조 국수님의 마음이 그러지 않았을까요."
지난 19일 '승부' 시사회엔 조훈현이 왔다. 이병헌은 조훈현이 오는지 모르고 있다가 그를 만나게 돼 무척이나 당황했다고 했다. "그날 영화를 처음 본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보실지 정말 걱정되고 긴장됐습니다. 그런데 조 국수님이 예고편은 봤다고 하시면서 '나인줄 알았어'라고 하시는 겁니다. 정말 다행이었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