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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엔화의 추락, 남의일 아니다

등록 2022.04.25 09:44:01수정 2022.04.25 09: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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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엔화의 추락, 남의일 아니다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안전통화로 여겨졌던 엔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1년 전에만 해도 달러당 108~109엔선 이었으나 최근에는 129엔까지 오르면서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00엔당 1000원선도 무너졌다. '위기 시 엔화 가치가 오른다'는 공식은 이젠 옛말이 됐다. 달러, 유로화에 이어 3대 통화로 '기축통화' 대접을 받았던 엔화의 굴욕이다.

한때 엔저는 일본 정부의 경기 부양책으로 활용됐다. 엔화 가치를 낮춰 수출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소득과 소비를 늘려 경제도 성장시킨다는 '착한 엔저' 논리다. 경제 위기가 터졌을 때도 튼튼한 펀더멘털로 오히려 가치를 인정 받았다. 여기에는 수십년 간 일본 경제의 버팀목이 된 경상수지 흑자도 뒷받침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쁜 엔저'로 작용하고 있다. 급격한 엔화 약세로 구매력이 낮아지고 기업의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뛰어 오른 원가를 소비자에 전가하지 못하고 있어 기업 실적도 고꾸라지고 있다.

일본 경제의 버팀목이 됐던 경상수지마져 올해 적자가 예상된다. 1980년 오일쇼크 이후 42년 만이다. 이미 무역은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수출에서 수입을 뺀 무역수지는 5조3749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2년만의 적자이자 7년 만의 최대 적자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게 결정적인 이유지만, 더 이상 엔저가 일본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중앙은행은 시중에 돈을 푸는 완화적인 톻화정적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고강도 긴축을 예고했다.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금리인상 카드를 쓸수도 없다. 미국과 달리 경기 회복 속도가 느리고, 물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면 막대한 국채 발행으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달러당 원화가 연중 최고 수준인 1245원을 돌파했다. 기준금리 인상에도 힘을 못 쓰고 원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원화 약세는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까지 치솟고 있다. 실질 구매력을 낮출 수 있다. 

2월 경상수지는 64억2000만 달러 흑자를 보이긴 했지만 흑자 폭은 1년 전과 비교해 16억4000만 달러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경상수지 적자 전환도 이젠 시간문제다. 경상수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무역수지는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 1분기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40억4000만 달러다. 수출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가격 상승세는 쉽게 잡힐 기미가 없다. 1차 추가경정예산을 기초로 정부가 예측한 통합재정수지도 올해 70조8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3년 연속 적자다. 재정수지 적자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경상수지까지 적자를 적자를 보이게 되면 '쌍둥이 적자'도 현실화 될 수 있다.

우리는 수출 제조업 중심의 일본과 비슷한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큰 경제 여건도 닮은꼴이다. 일본처럼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가 오르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지급해야 할 비용이 늘어 무역이 적자가 커질 수 있다. 일본 경제가 휘청이는 것을 '남의 나라' 얘기라 여기고 팔짱 끼고 보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생산가능 인구가 줄고 있어 저출산·고령화 문제나, 가계·국가부채도 일본 못지 않게 심각하다. 성장을 갉아 먹는 주범이다.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인구고령화'를 우리나라 최대 리스크로 지목하며 "이러한 도전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해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다면 이로부터 헤어나오기 어렵다"고 우려를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경제가 1990년대 버블 붕괴 직전 일본과 비슷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 경제도 코로나19 이후 저금리로 시중에 풀린 돈이 크게 늘었고,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자산 거품이 붕괴된 후 일본은 20년간 경기 침체를 겪었다.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줄이면서 디플레이션도 불렀다. 장기 저상장 기로에 선 우리 경제도 '잃어버린 일본의 20년'을 답습하지 않도록 전략을 짜야 할 시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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