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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양쯔충, 오스카 유리천장을 저격하다

등록 2023.03.06 0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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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양쯔충, 오스카 유리천장을 저격하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배우 윤여정이 2021년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건 아카데미 역사를 새로 쓴 대사건이었다. 윤여정 이전에 아시아 국적을 가진 배우가 오스카 연기상을 받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벤 킹즐리처럼 아시아 피가 섞여 있거나 우메키 미요시처럼 아시아계 배우들은 있었지만, 이들은 결국 영미권 배우였다. 아시아 국가에서 나고 자라 모국에서 배우 생활을 해온 배우가 오스카를 거머쥔 사례는 윤여정이 이전 92년 간 없었다.

아마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 부문에선 다시 한 번 새로운 역사가 쓰일 거로 보인다. 윤여정이 뚫어놓은 유리천장을 말레이시아 배우 양쯔충(楊紫瓊·60)이 완전히 박살낼 기세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양쯔충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브리씽')로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더 파벨만스'의 미셸 윌리엄스, '블론드'의 아나 데 아르마스, '투 레슬리'의 앤드리아 라이즈버러와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고, 이 백인 배우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간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중엔 범아시아계로 분류할 수 있는 배우들이 있긴 했다. 비비안 리는 인도, 셰어는 아르메니아, 내털리 포트먼은 이스라엘 피가 섞여 있다. 다만 이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굳이 따지자면 아시아계로 볼 수 있는 것이지 국적 등을 보면 결코 아시아인이라고 할 수 없는 배우들이었다. 만약 양쯔충이 받게 되면 아시아 배우로는 사실상 최초로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된다.
[클로즈업 필름]양쯔충, 오스카 유리천장을 저격하다


수상 확률은 양쯔충이 가장 높다는 게 중론이다. 그는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 미국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SAG) 시상식 등 주요 행사에서 수차례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현지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건 SAG 수상 결과다. 아카데미 회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직군이 배우이기 때문에 동료 배우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 '에브리씽'이 대부분 시상식에서 작품·감독상을 휩쓸고 있다는 점도 양쯔충의 수상 확률을 높인다. 오스카 레이스 '대세 영화'로 떠올랐다는 건 영화 모든 부문에서 할리우드와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을 열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아카데미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 역시 아시아인 양쯔충의 수상 확률을 높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케이트 블란쳇이다. 블란쳇은 앞서 열린 각종 시상식에서 양쯔충과 여우주연상을 나눠 갖고 있다. 골든글로브에서 양쯔충은 뮤지컬·코미디 부문, 블란쳇은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블란쳇은 SAG 시상식에선 수상하지 못했지만, 영국 아카데미와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선 양쯔충을 제쳤다. 블란쳇이 영화 'TAR 타르'에서 배우 인생 최고의 연기를 했다는 점은 양쯔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장담할 수 없게 한다. 양쯔충이 대세인 건 맞지만, 블란쳇의 연기가 더 뛰어났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다만 블란쳇은 이미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86회)과 여우조연상(77회)을 모두 받았기 때문에 수상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클로즈업 필름]양쯔충, 오스카 유리천장을 저격하다


양쯔충은 오스카를 향한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끝난 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선배 아시아인 여성 배우들의 어깨를 딛고 이 자리에 섰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며 "(오스카를 품에 안아) 빌어먹을 그 유리천장을 어서 깨버리고 싶다"고 했다. 양쯔충의 이른바 돌직구 인터뷰에 현지 언론과 영화 팬은 환호하고 있다. 그는 '에브리씽'에서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여성 '에블린'을 맡아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한다. 양쯔충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할리우드에 처음 왔을 때 꿈이 실현된 줄 알았지만, '넌 소수자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놀라운 여정과 믿기 힘든 싸움을 했찌만 충분히 가치가 있었어요. (제 수상으로)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많아지고 기회는 줄어들지만, 언젠가는 최고의 선물이 온다는 걸 여성들은 모두 이해할 겁니다."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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