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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40년 버텼다, 오스카에 다가가기까지

등록 2023.03.07 09: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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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40년 버텼다, 오스카에 다가가기까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인생 최고 전성기가 13살에 찾아온 사람의 삶이라는 건 어떻게 표현하는 게 맞을까. 13살 이후엔 내리막만을 걸어야 하니 불행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래도 전성기라고 할 만한 게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 할리우드엔 이런 인생 궤적을 가진 한 배우가 대세로 떠올랐다. 무려 4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베트남계 미국인 배우 키 호이 콴(Ke Huy Quan·52)이다. 콴은 최근 이렇게 말하며 눈물 흘렸다. "아주 오랜 시간 어린 시절의 성취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을 안고 살았어요."

콴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니셰린의 밴시'의 브렌던 글리슨과 배리 키오건, '커즈웨이'의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더 파벨만스'의 저드 허슈와 함께 오스카를 놓고 경쟁한다. 현지 언론은 이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콴이 아카데미의 최종 승자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인생 역전 만루홈런'이다.
[서울=뉴시스] '인디아나 존스2'에 출연한 키 호이 콴의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인디아나 존스2'에 출연한 키 호이 콴의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콴은 전 세계 그 누구보다 화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84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2'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존스'의 어린 조수 역할을 맡아 아역 벼락 스타가 됐다. 이듬해엔 스필버그 감독이 원안을 쓰고 리처드 도너 감독이 만든 영화 '구니스'에 나오며 다시 한 번 세계 영화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영광의 시대는 짧아도 너무 짧았다. 이후 몇 작품에 더 출연하긴 했지만 아역 배우의 한계, 동양인 배우라는 한계에 갇히며 콴은 '그때 그 꼬마'로 남은 채 잊혀졌다. 콴은 그렇게 성인 연기자가 되지 못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콴은 오랜 세월 할리우드 주변을 맴돌았다. 영화·드라마 제작 스태프로 일했고,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스턴트 일을 해 근근이 경력을 이어갔다. 콴은 최근 시상식에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게(아역 배우로서 경력이)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2018년, 40대 후반 나이에 다시 배우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연기라는 꿈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그해 그를 찾아온 영화가 바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대니얼 콴·대니얼 쉐이너트 감독은 당시 이 영화 캐스팅을 하던 중이었는데, '웨이먼드 왕'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때 오디션에서 콴을 만났고, 두 감독은 그를 출연시키기로 결정했다. 콴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서울=뉴시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키 호이 콴의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키 호이 콴의 모습. *재판매 및 DB 금지


멀티버스(mutiverse·다중 우주) 콘셉트의 이 작품에서 콴은 세 명의 각기 다른 웨이먼드를 맡아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주며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끌어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어설프고 무능해보이는 웨이먼드,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거친 카리스마의 웨이먼드, 아픈 과거를 딛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게 된 단단한 내면의 웨이먼드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콴의 입을 통해 나온 웨이먼드 대사 "모르겠어. 내가 아는 것이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때는"이라는 말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관통하는 명대사이기도 했다.
[클로즈업 필름]40년 버텼다, 오스카에 다가가기까지


콴은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고 있다. 골든글로브·크리틱스초이스·미국배우조합 시상식 등을 포함해 그가 받은 연기상만 60여개에 달한다.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눈물을 보이며 털어놓은 그의 진솔한 말들도 화제가 되고 있다. 콴은 최근 AP와 인터뷰에서 "요즘 하루하루 감정에 북받친다"며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선 "꿈을 품었지만,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 포기했던 이들에게 내 이야기가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해리슨 포드와 함께 연기했던 10대 소년은 40년 후 50대 신사가 돼 오스카를 품에 안으려 하고 있다.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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