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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가 없으면 윈턴 마살리스도 없네

등록 2023.03.21 11:09:46수정 2023.03.21 14: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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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LG아트센터 서울서 4년 만에 내한공연

기량 과시를 넘어선 기교의 정서 교감능력

[서울=뉴시스] 윈턴 마살리스(윈튼 마살리스) 셉텟. 2023.03.19.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윈턴 마살리스(윈튼 마살리스) 셉텟. 2023.03.19.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를 테면 '밸럿 박스 바운스(Ballot Box Bounce)' 같은 곡이다. 뛰어난 연주 기술을 선보였지만, 그게 기교 자랑으로 수렴되지 않는 훌륭한 보기 말이다.

미국 재즈 트럼펫 연주자 윈턴 마살리스(62·Wynton Marsalis·윈튼 마살리스)의 설명을 빌리면 해당 곡은 속도가 빠르고 코드가 어렵다. 하지만 그는 고난도 곡에 대한 소화력을 기량 과시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재즈 셉텟(7중주)으로 지난 19일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에서 4년 만에 내한공연한 마살리스는 대신 위트를 장착했다.

그가 재빠르게 손가락으로 트럿펨 버튼을 눌렀다 뗐다 하는 풍경은 곡의 난도가 높음을 방증하는 동작이었지만, 재즈를 인식하게 만들지 않고 정서적으로 껴안는 묘를 발휘했다. 

무엇보다 댄 니머(피아노), 카를로스 엔리케스(베이스), 오베드 칼베어(드럼), 크리스 크렌쇼(트럼본), 크리스 루이스(알토 색소폰), 압디아스 아르멘테로스(테너 색소폰)의 라인업은 무대에 여유 있는 그림을 만들어줬다. 이들은 연주 가운데도 종종 대화했고 몇 번 웃었다. 

마살리스라는 거장의 이름 탓에 공연 초반 다소 분위기는 다소 경직됐으나, 무대 위 연주자들의 넉넉한 모습에 금세 누그러졌다. 어려운 재즈일지라도 연주자와 청자 사이에 우열관계가 형성하지 않는다는 걸 이들은 뽐내지 않고 증명했다.

이날 1부에서 마살리스는 재즈의 본고장 미국 뉴올리언스 출신답게 그루브 넘치는 실험적인 사운드를 들려줬다. 부드러운 분위기의 '디퍼 댄 드림스(Deeper Than Dreams)'에서도 느슨한 순간은 없었다.
[서울=뉴시스] 윈턴 마살리스(윈튼 마살리스) 셉텟. 2023.03.19.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윈턴 마살리스(윈튼 마살리스) 셉텟. 2023.03.19.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데드 맨(Dead Man)'으로 시작한 2부는 1부와 비교해 비교적 대중적인 사운드를 들려줬다. 근사함이 귀에 익숙한 '스타더스트'가 예다.

특히 발군은 본 공연 마지막곡인 '프리 투 비(Free to Be)'였다. 마살리스 트럼펫의 박진감 넘치는 리드도 좋았지만 베이스, 드럼 등 리듬 파트가 안정감 있게 뒤를 받쳐줘 기분 좋은 포근함이 들었다. 여기에 패턴을 달리하는 피아노의 타건은 곡에 대한 인식의 문을 여러 번 유려하게 열어 젖혔다. 이날 공연 전체적으로도 베이스·드럼·피아노의 지원사격은 놀라운 관 섹션에 못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들 연주자들의 연주 모습을 보고 그것이 빚어내는 음을 들으면서도, 음악에 대해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여백이 일품이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음과 리듬이 사실 언젠가 내가 들은 적이 있는 삶이며, 재즈가 음악과 삶 사이의 거리를 축소할 수 있는 위트 넘치는 장르라는 걸 마음껏 탐구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LG아트센터는 역삼에 있을 때부터 재즈의 성지이기도 했다. 재즈는 삶에 대한 실험실이고, 청자는 그곳에서 관찰한다. 이날 앙코르곡 '아웃 어몽스트 더 피플(Out Amongst the People)'이 증명하듯,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기는 재즈로부터 그걸 깨닫는다.

재즈 아티스트 첫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재즈 엘리트 가(家)' 출신인 마살리스가 '재즈 정통성'을 강조하는 데다가 '재즈 마니아' 무라카미 하루키마저 그에 대해 심심하다고 표현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연주는 완벽해도 딱딱하지 않을까라는 인상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은 그런 편견을 사정 없이 깨뜨렸다. 페이소스와 함께 유머를 동반한 채 재즈에 대한 자의식적 탐구를 부담 없이 펼쳐냈다. 

하루키는 음악 에세이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를 쓰기도 했다. 이날 만큼은 유머가 없다면 마살리스도 없었다. 마살리스와 연주자들은 21일 오후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무대에도 오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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