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캐스팅 약하다고 했지만"…닥터차정숙 흥행비결

등록 2023.06.08 08:25:09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MBC 편성불발·JTBC서도 6개월 밀려

김대진 PD, 연속극 연출 내공 발휘

경력단절 여성이야기 공감…18% 종방

"이타적인 엄정화·뻔하지않은 김병철"

"단순히 트렌드만 쫓지 않을 것"

김대진 PD

김대진 PD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JTBC 종방극 '닥터차정숙' 흥행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스타 PD·작가 작품이 아니었을 뿐더러 "캐스팅이 약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MBC 편성이 불발됐고, JTBC에서도 '재벌집 막내아들'과 '대행사'에 방송이 밀렸다. 지난해 10월 전파를 탈 예정이었지만, 6개월 뒤인 올해 4월부터 선보였다. 첫 방송 후 분위기는 반전됐다. 많은 시청자들이 경력단절 여성 이야기를 공감했고, 1회 4.9%(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시작해 16회 18.5%로 막을 내렸다. MBC 출신인 김대진 PD의 첫 흥행작이나 다름없다. 그간 주목 받는 감독은 아니었지만, 퇴사 후 닥터차정숙으로 20여 년간 쌓은 내공을 보여줬다.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사실 편성 단계에서 MBC에 갔다가 거절 당했다. MBC 사장님이 그 사정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국 사람들은 알 거다. 결과적으로 아쉬운 사람들이 있을텐데, 당시 MBC 기준에서 볼 때 안 되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겠느냐. 난 MBC 출신이지만 특혜를 받은 적이 없다. 후배들은 미니시리즈로 입봉 하는데, '왜 나는 만날 연속극만 시킬까?' 싶더라. 그 때는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닥터차정숙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 드라마는 연속극 감정이 있지 않느냐. 공교롭게도 MBC 퇴사 후 숱하게 학습한 게 도움이 됐다."

이 드라마는 20년차 가정주부에서 1년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엄정화)의 인생 봉합기를 그렸다. 지난해 12월 내부 시사회에서도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주연 배우와 제작·방송사 관계자들이 모여서 본 후 "서로 눈을 쳐다보지 않고 피했다. 다들 '누가 말을 먼저 꺼내나' 눈치를 봤고, 주저하다가 보완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라. 당시 나와 정화 누나가 제일 불편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작가님은 자신이 생각한 톤이 나왔다면서 '이 극본이 이렇게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쓰지 않았다'고 했다. 내 기준에서도 이야기가 잘 흘러가는데, '꼭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며 웃겨야 할까?' 고민했다. 의견을 담아서 수정하겠지만, 다들 뭔가 불안한 기운이 들었을 것"이라며 "후반 작업할 때도 정화 누나가 '잘 되고 있느냐'면서 문자가 계속 왔다. 시청률이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방송 나가고 나서 재미있어 해줬다. 방송 끝날 때마다 정화 누나랑 통화했는데, '쫑파티 다시 하자'고 하더라. 그때 책임감 때문에 너무 불편해서 즐기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당대 톱가수이자 배우인 엄정화(54)와 호흡도 부담됐다. 더욱이 여성 서사 드라마가 연이어 히트를 쳐 압박감이 심했다. 김혜수 주연 '슈룹'을 비롯해 전도연 '일타스캔들', 이보영 '대행사', 송혜교 '더글로리' 등이다. "학교 다닐 때 정화 누나는 슈퍼스타였다. 가수와 배우로 동시에 탑까지 올랐는데, 나랑 일하는 게 믿기지 않았다"며 "김혜수, 전도연씨 등 연차있는 배우들이 다 대박을 치니 엄정화 등판 시기를 앞두고 어떡하나 싶었다. '여기서 '삑사리'가 나면 안 되는데···'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캐스팅 약하다고 했지만"…닥터차정숙 흥행비결


닥터차정숙은 정여랑 작가의 데뷔작이다. 정 작가는 40대 초반 기혼녀인 점 외에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자신이 경력단절 여성으로서 겪은 경험을 캐릭터에 녹이지 않았을까. 김 PD는 "작가님이 MBC 기획팀 출신"이라며 "처음에는 작가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극본을 봤는데, '이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작가님이 MBC에 있을 때도 의학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후 결혼과 출산, 육아 과정을 거쳤더라. 아무래도 본인 경험이 많이 투영됐고, 조리원에서 나온 다음 날 제작사와 계약했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모성에 관한 이야기"라며 "여성 환자들도 모성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가 많았다. 내가 얘기하니 작가님도 '어? 그런가'라고 하더라. 시청자 입장에서 못 느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성애가 깔려있었고 서서히 스며들었다"고 짚었다.

2회 7.8%로 약 두 배 오르며 입소문을 탔다. 20% 벽은 넘지 못했지만, JTBC 드라마 역대 시청률 4위다. "나중에는 무섭기도 했다. '시청률이 이렇게까지 가도 되나?' '과연 그럴만한 드라마인가?' 싶었다"면서도 "공감의 힘이 컸다. 코로나19로 집 안에만 갇혀 있던 사람들이 심각하게 머리 쓰고 집중해서 보는 드라마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찾았다. 차정숙이 보여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지만, 말 한마디로 터뜨려주지 않았느냐. 억눌린 게 발산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다 결과론이다. 그 전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운이 좋았다"고 웃었다.

정숙 남편 '서인호' 역의 김병철(49)도 한 몫했다. 가정의학과 교수 '최승희'(명세빈)와 불륜을 저지르고, 정숙에겐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내 욕 먹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김병철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톤을 조절, 허당기 가득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뽐냈다. "김병철씨를 보고 굉장히 안심했다. 뻔한 연기를 하지 않고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며 "이 드라마는 재미있다가 슬프거나 진지하고, 또 재미있게 바뀌지 않느냐. 작가 욕구를 알지만, 연출자 입장에선 난감하다. 자칫 잘못하면 중구난방에 흐름이 들쑥날쑥, 엉망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데 '김병철씨 톤을 맞추면 되겠구나' 싶었다"고 돌아봤다.

"김병철씨가 코미디를 해서 재미있는 게 아니라, 톤앤매너의 베이스를 깔아줬다. 그 발판 안에서 엄정화씨가 들어와서 어우러졌다. '연기 구멍이 없다'는 얘기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뽑았고, 난 놀이터만 제공하면 됐다. 우리 팀 모두가 '현장이 좋았다'고 하는데, 정화 누나 덕분이다. 정화 누나는 정말 이타적이다. 카리스마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감싸 안아주니 다른 배우도 마음을 열고, 내 것 따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의견을 내면서 찾아갔다. 처음에는 '캐스팅이 약하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화제성 지수 1~3위 차지하고 박준금 선배까지 10위에 들었다."
[인터뷰]"캐스팅 약하다고 했지만"…닥터차정숙 흥행비결

특히 '전소라' 역의 조아람(23)을 발굴한 데 보람을 느꼈다. 소라는 정숙·인호 아들인 '서정민' 여자친구이자 외과 레지던트 3년차다. 레지던트 정숙에게도 할 말 다하는 인물이다. 그룹 '구구단'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캐스팅디렉터가 소위 '라이징'이라고 알려주지만, 오디션 들어가기 전 각 소속사 프로필을 다 받았다. 이 캐릭터의 필요한 요건을 갖춘 프로필을 다 찾아본 뒤 조아람을 발견했다"고 귀띔했다. "조아람이 정말 열심히 해줬다. 의사인 사촌언니를 만나서 연습하고, 회장님 살리는 신에선 자문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전체 극본리딩 때 조마조마했는데, '따다다닥~' 하는 순간 게임 끝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와~뭐하던 애야. 어디 있었어?'라는 반응이었다. 엄정화 선배한테도 기 죽지 않고 다그치지 않았느냐. 업계에서 벌써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더라. 준비가 돼 있어서 몇 년 안에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승희 역은 "캐스팅이 가장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불륜녀인 만큼 시청자들이 불편해 할 걸 알았다며 "승희를 많이 다룰수록 시청자들이 불쾌하지 않겠느냐. 욕하면서 보면 시청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작가님이 이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JTBC에서도 주말에 편성하니 '가족 전체가 봐도 불편하지 않게 신경써달라'고 했다. 원래 호텔방 신도 있었지만 걷어냈다. 그러다 보니 승희가 매회 한 두신 정도 밖에 안 나와서 캐스팅 난항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명세빈씨는 조금씩 나와도 긴 서사를 채워줄 것 같았다. 명세빈씨도 연기 변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잘 안 되면 욕만 먹고 끝날 수도 있었다. 난 승희 캐릭터에 애정이 있었고, 이전 드라마에서 소구한 (불륜) 캐릭터와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승희가 딸과 싸우면서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라며 눈물 흘리지 않았느냐. 그 한 줄로 승희 캐릭터 설명이 돼야 했고, 시청자를 흔들고 싶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떠나서 엄마라면 어떠한 역경을 견뎌서라도 아이를 보고 싶어서 낳지 않았을까. '이 캐릭터를 사랑해달라'까진 아니지만, 시청자들이 '저럴 수도 있을 것 같네' 등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껴주길 바랐다."
[인터뷰]"캐스팅 약하다고 했지만"…닥터차정숙 흥행비결


김 PD는 20년 넘게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만, 마음은 변함이 없다. '호텔킹'(2014) 연출을 맡았을 때 작가 요구로 하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다모'(2003) 조연출 때 "열정이 최고였다"며 "지금은 그만큼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대하는 열정은 같다"고 했다. 차기작은 검토 중이라며 "요새 산업 자체가 안 좋고 편성피도 많이 안 준다"며 "아무리 촬영이 일찍 끝나도 후반작업을 하느라 다른 극본은 눈에 안 들어오더라. 슈룹, 일타스캔들 등 하나도 못 봤다. 왠지 정화 누나를 배신하는 것 같더라. 이제부터 마음 편하게 보고 싶다"고 웃었다.

"단순히 트렌드를 쫓기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창피하지 않고, 시대에 동떨어지지 않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스타워즈'도 '내가 니 애비다'라는 대사가 가장 유명하지 않느냐. 결국 막장 가족 드라마이고, 출생의 비밀이 들어있는데 어떻게 포장하고 끌고 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장르 상관없이 사람과 관계를 잘 표현한 드라마를 하고 싶다. 이번에 배우들이 '꿈꾼 현장'이라고 해서 좋더라. 날마다 직장에 와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일하다 가길 바랐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겠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