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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폐유리도 재활용 못 해" 제주 '유리무덤' 가보니

등록 2023.06.10 14:43:28수정 2023.06.10 21: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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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내 유일한 폐유리 처리 업체 '한라공병'

한 해 7500t 들어와 …재활용률 구분 없이 처리

혐오시설 낙인…주민 반대에 인허가 족족 무산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전 제주 유일한 폐유리 처리 업체인 '한라공병' 내 작업장에 폐유리가 쌓여있다. 2023.06.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전 제주 유일한 폐유리 처리 업체인 '한라공병' 내 작업장에 폐유리가 쌓여있다. 2023.06.10.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자원 업계에서는 상태에 따라 폐유리병을 재활용률이 높은 A부터 C등급까지 나눠서 처리합니다. 2~3㎜ 정도로 분쇄하면 깨끗한 원료로 쓸 수 있어 별도로 처리하는 게 A급이고, B급이나 C급은 병뚜껑이나 안에 들어있는 이물질에 따라서 나뉩니다. 그런데 제주에선 원료로 쓰기 좋은 유리병이어도 A등급을 처리할 시설이 열악해서 B·C급과 같이 한 데 모아서 처리합니다."

제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유리 약 7500t. 본래 유리 제품은 깨끗하게 '잘'만 버리면 용광로에 녹여 또 다른 제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온전한 원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설이 열악한 제주에선 쉽지 않다. 상태가 깨끗해 재활용이 용이한 폐유리가 있어도 '처리'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도내 모든 폐유리의 재활용 여부를 선별하는 곳, '유리 무덤'을 지난 7일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함께 살펴봤다.

◇폐기물이냐 원료냐…폐유리들의 갈림길 '유리 무덤'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한 '한라공병'. 제주도 내 유일한 폐유리 처리 업체다. 이날 현장에선 컨베이어 벨트 작동과 작업자들의 유리 선별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편에선 지게차가 큰 바가지로 자잘한 무언가를 퍼 올리고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이 이뤄질 때마다 천둥이 치는 듯한 큰 소리가 났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한라공병' 양광호 대표가 7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소재 작업장에서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기후위기대응위원회 관계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라공병은 제주도 내 유일한 폐유리 처리 업체다. 2023.06.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한라공병' 양광호 대표가 7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소재 작업장에서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기후위기대응위원회 관계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라공병은 제주도 내 유일한 폐유리 처리 업체다. 2023.06.10. [email protected]

도내 클린하우스 등에서 회수한 유리들을 분쇄해 아파트 2~3층 높이로 쌓은 '유리 무덤'이다. 재가공할 수 있는 원료인지 버려지는 폐기물인지는 이곳에서 결정된다.

양광호 한라공병 대표는 이날 환경 활동가들에게 "제발 사기나 그릇은 종량제봉투에 버려달라고 홍보 좀 해달라. 유리 냄비도 그렇고, 이것들은 용광로에서도 녹지도 않는다. 특히 젓갈류나 된장 등 반찬이 있는 것을 그대로 버리면 좋은 유리라도 재활용이 안 된다. 저희가 일일이 골라내서 씻어서 하는 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시설 열악해 무조건 '일방통행' 처리…혐오시설 '낙인'까지"

환경 활동가들은 이 유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양 대표는 "이 유리들을 부숴서 굉장히 고운 가루로 만든다. 그러고 나선 전북 군산에 제병사(유리병 제조업체)로 간다. 제조업체가 유리를 다시 사용하는 것"이라며 "컨베이어벨트 두어개만 있으면 통상 A급이라고 하는 재활용률이 높은 유리를 확보해 좋은 값에 팔 수 있지만, 보다시피 컨베이어벨트가 하나여서 등급에 상관없이 똑같이 갈아버린다"고 말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전 제주 유일 폐유리 처리 업체인 '한라공병'에서 작업자들이 폐유리를 선별하고 있다. 2023.06.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전 제주 유일 폐유리 처리 업체인 '한라공병'에서 작업자들이 폐유리를 선별하고 있다. 2023.06.10. [email protected]

내용물이나 이물질이 있거나 뚜껑이 닫히지 않은 유리들은 재활용률이 떨어져 매입 업체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 재활용이 용이한 원료일수록 업계에서도 비싼 값에 넘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에선 별도의 구별 없이 폐유리들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 대표에 따르면 컨베이어벨트를 2개 정도만 추가로 설치해도 제주에서 상태에 따라 유리를 선별할 수 있다고 한다. 필요한 돈은 대략 30억원 정도다.

하지만 재원이 마련돼도 더 큰 문제는 부지 확보다. '혐오시설'이라는 낙인이 찍혀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족족 부딪혔다.

◇주민 반대 무산되는 폐기물 처리 시설 인허가…행정, 가교 역할 절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전 제주 유일 폐유리 처리 업체인 '한라공병' 내 작업장에 폐유리들이 쌓여있다. 이 곳에서는 연간 7500t 가량의 폐유리들이 처리된다. 2023.06.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전 제주 유일 폐유리 처리 업체인 '한라공병' 내 작업장에 폐유리들이 쌓여있다. 이 곳에서는 연간 7500t 가량의 폐유리들이 처리된다. 2023.06.10. [email protected]

제주시청에 따르면 도내 몇몇 폐기물 처리 업체에서 유리를 처리하겠다고 수차례 인허가 신청을 했다. 어렵사리 허가가 났지만,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지난  2018년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서도 900억원을 투입해 폐유리 재생센터를 추진하려 했지만 부지 확보에 난항을 겪고 3년 만에 백지화됐다. 현재까지도 내실있는 폐유리 처리에 대한 방안은 없다.

당장 폐유리를 취급하는 곳도 한라공병이 유일한 데다 열악한 환경과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탓에 연간 7500t가량의 폐유리들이 비효율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업체와 주민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행정의 가교 역할이 요구되는 이유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 2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8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폐막 세션에서 '제주선언'을 통해 "선도적인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 중인 제주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청정환경이 공존하는 녹색도시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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