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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자수첩]백선생 집밥은 엄마 집밥과 다르다

등록 2015.08.30 13:25:30수정 2016.12.28 15: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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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아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tvN '집밥 백선생’에서 다양한 달걀 요리가 소개됐다. ‘백선생’ 백종원이 선보인 요리 중에서 특히 관심있게 지켜본 건 달걀 프라이다.

 5살짜리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백선생의 단순한 조리법을 보고 당장 따라 만들어봤다. 적당량의 기름을 부은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쇠고기를 굽듯 ‘지지직’ 소리나게 굽는 게 조리의 핵심이었다.

 작은 차이 하나가 명품을 만든다더니 평소보다 훨씬 맛있게 조리된 듯 했고 아들은 프라이를 폭풍 흡입했다. 백선생의 '꿀팁’ 위력을 실감했다.

 이날 방송에는 호텔 조식 스타일 오믈렛, 대파를 이용한 달걀 볶음밥도 소개됐다. 달걀 볶음밥은 백선생표 만능간장과 고춧가루로 간을 해 완성됐다.

 잠깐 고개를 갸우뚱했다. 볶음밥에 왜 고춧가루를 넣지? 느끼함은 잡겠지만 매콤한 맛이 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잖아. 여기에 포장 김까지 곁들이는 ‘한그릇 플레이팅’을 보고 ‘집밥의 개념’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집밥’이라곤 하지만 백선생의 음식은 엄마표 집밥과 다르다. 무엇보다 음식을 만들 때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백선생이 '간편한 조리법과 맛'을 중시한다면 엄마들의 레시피는 가족의 건강에 훨씬 더 민감하다.

 최근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는 백종원씨의 음식에 대해 “모두 외식 레시피를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 40대 지인도 백선생이 프로그램에서 된장국에 ‘설탕’을 넣는 순간 식당음식을 떠올렸다고 했다. 엄마의 집밥을 먹고 자란 40대 기자 역시 ‘맵고 짜고 단맛이 강한 음식= 식당 음식’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백선생 레시피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진간장과 국간장도 구분 못하는 요리 초보도 2~3가지 재료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 블로거의 표현처럼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맛을 이끌어내는 실용주의 요리'가 바로 백선생의 무기다. 집에서 뚝딱 해먹는 간편식에 가깝다는 점에서 ‘1인 가구 500만 시대’에 걸맞는다.

 최근 홍연식 작가의 자전적 만화 ‘마당씨의 식탁’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작품은 집밥의 가치를 절절하게 느끼게 해준다.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작가의 어머니는 늘 따뜻한 집밥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어머니가 떠난 뒤 난생 처음 포장만두로 설을 쇴다는 슬픈 이야기도 나온다.

 홍 작가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둘러 두려움에 떨던 때가 많았다. 하지만 홍 작가의 불행한 기억은 늘 엄마의 집밥으로 희석됐다. 엄마의 집밥은 ‘비극이 7할’이었던 팍팍한 삶을 견디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만화를 보면 작가는 매일 부엌에서 밥을 한다. 가난이 대물림 돼 홍 작가의 살림살이도 넉넉지 않았지만 그의 팍팍한 삶을 위로해주는 것이 바로 아내, 아들과 함께 맛있게 해먹는 집밥이기 때문이다.

 가끔 아들이 훗날 엄마의 집밥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하고 두렵다. 하루에 한 두끼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급식으로 해결하는 아이가 급식과 집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때때로 늦게라도 냉장고 문을 열고 요리를 준비하는 까닭은 그래도 집밥의 명맥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집밥의 개념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은 백선생식 집밥보다는 엄마표 집밥이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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