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英 비번공개법' 팩트체크 했더니…한동훈과 무슨 상관?

등록 2020.11.13 17:01:00수정 2020.11.13 18:52:51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국가안보, 중대범죄 방지, 경제영향에 적용

"영국과 한국, 법 시스템 달라 적용 어려워"

"도입하더라도 한동훈은 대상 요건 안 돼"

영국도 '인권침해' 논란…국내선 "반헌법적"

[서울=뉴시스]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한동훈 검사장. (자료=뉴시스DB).

[서울=뉴시스]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한동훈 검사장. (자료=뉴시스DB).

[서울=뉴시스] 천민아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피의자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강제로 해제할 수 있는 법안 검토를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사실상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받고 있는 한동훈 검사장 저격용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인데, 법조계 일각에서는 추 장관이 근거로 든 영국 법안은 국내법상 도입하기 어려울 뿐더러 정작 한 검사장의 경우에 적용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추 장관은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어떤 검사장 출신 피의자가 압수대상 증거물인 휴대전화의 비밀전호를 알려주지 않아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다고 한다"며 "영국 수사권한 규제법과 같이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에 대한 실효적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법에 따르면 암호를 풀지 못할 때 수사기관이 법원에 암호해독명령허가 청구를 하고, 피의자가 이에 불응시 국가안전이나 성폭력 사범은 5년 이하, 기타 일반 사범은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 장관이 언급한 영국 법안은 '수사권한 규제법'(Regulation of Investigatory Powers Act 2000)으로, 실제 영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조항이다.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특정해서 다루고 있는 조항이 아닌 모든 암호(protected information)의 해제 조건 등을 다룬다.
'
이 조항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비밀번호에 대한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이를 검토한 뒤 허가 판단이 나와야 하고, 법원의 허가 명령을 피의자가 어길 경우 '법원명령위반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1.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1.12.  [email protected]

그런데 이 조항은 이 같은 처분이 인권침해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국가안보 목적(in the interests of national security) ▲중대한 범죄 방지(for the purpose of preventing or detecting crime)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 미칠 경우(in the interests of the economic well-being of the United Kingdom) 중 한 가지에 해당할 경우에만 영장이 발부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기관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세 가지 성격의 범죄 중 하나에 해당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 검사장과 같은 케이스는 해당 법률과는 사실상 무관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국제법 전문가 A씨는 "한 검사장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안보가 저해되거나 경제에 심각한 침해가 될 사안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미리 방지해야 할) 추가적 범죄 우려도 없는듯 하다"며 "우리 실정에 맞는 디지털 수사 법제를 검토한다는 건 원론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특정 사례를 지목해 논의한다면 제대로 된 토론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애초에 영국과 한국 법제 시스템이 달라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영국은 법원 명령 위반에 대해서 별도의 형사처벌을 하고 있지만, 국내법상에는 법정에서의 소란이나 난동 같은 법정모욕죄 외에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다.

법정 증인으로 채택된 이가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했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형사소송법 조항이 있을 뿐이다. 이는 결국 영국처럼 '법원명령위반죄'와 같은 형법 조항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자와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1.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자와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1.12. [email protected]

전문가 A씨는 "한국과 영국은 검·경과 형사법원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서 일대일 적용이 어렵다"며 "법원명령위반죄와 같은 입법도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해당 법 조항에 대해서는 영국 등 해외에서도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암호를 국가가 강제로 제시하도록 하는 건 위헌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추 장관의 발언 후 "반헌법적"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헌법상 묵비권과 진술거부권 등을 무시한다는 취지로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이날 법무부는 입장문을 내놓고 "이 같은 법안 연구를 추진하게 된 건 n번방 사건과 한동훈 연구위원 사례 등을 계기로 디지털 증거에 대한 과학 수사가 날로 중요해졌기 때문"이라며 "인터넷상 아동 음란물 범죄와 사이버 테러 등 새로운 형태의 범죄에 대한 법 집행이 무력해지는데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향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영국과 프랑스, 호주, 네덜란드 등 해외 입법례 연구를 통해 인권보호와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법원 공개 명령시만 (비밀번호를) 공개하도록 하거나 과태료 등 다양한 제재 방식을 검토하는 방안, 인터넷상 아동 음란물 범죄나 사이버테러와 같은 일부 범죄에 한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