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요소수 이어…우크라 사태에 韓 공급망 또 시험대
정부, 우크라 사태 영향 제한적으로 판단
다만 에너지값·일부 품목 등은 영향 우려
무역 의존도 커 또 다른 공급망 위기 상존
"수입 다변화·지역 공급망 강화 이뤄져야"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의 모습. 2021.08.01.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고은결 기자 = 우리나라가 반도체 소재, 차량용 반도체, 요소수에 이어 또 한 번의 굵직한 공급망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위기감 고조로 세계 공급망에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이 닥친 것이다. 일단 정부는 러시아, 우크라와의 교역 규모가 크지 않아 현재까지 직접적 영향은 크게 받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서는 러시아발(發) 원자재 쇼크로 인한 영향은 물론, 다른 나라가 받은 공급망 타격이 우리나라에 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러시아, 우크라보다 교역 규모가 큰 나라에서 공급망 리스크가 불거질 수도 있어, 수입 다변화와 우리 기업 중심의 공급망 강화 필요성이 거듭 제기된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사태가 실물경제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러 진출기업은 현지 비즈니스를 유지 중이며, 지난 16일까지 우크라이나 진출기업 13개사의 주재원 43명이 한국 또는 주변국으로 전원 대피를 완료했다. '무역투자24' 내 수출입기업 전담 창구, 수출상황점검회의를 통해 점검한 결과에서도 수출 중단 등 피해 사례는 없었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단기적으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와의 교역 비중이 크지 않고, 금융 부문에서도 전체 해외 익스포저(특정국가·기업과 연관된 금액 규모) 중 0.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태가 길어지면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차질,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 실물경제 회복세 제약 등 부정적 영향은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러시아발(發) 에너지 가격 쇼크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부각되며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군사 개입과 주요 7개국(G7)의 대(對) 러시아 고강도 금융·경제 제재가 이뤄질 경우 국제유가가 100~12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국제유가 강세는 전기·도시가스 요금, 휘발유 가격 등에 즉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도 자극하게 된다. 아울러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액 상승도 불가피하다. 이미 우리나라는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가격이 뛰며 2개월 연속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우리 기업의 수출길과 일부 희귀 품목 수급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에 상대적으로 다수 포진한 화장품(444개사), 기타 플라스틱(239개사), 자동차부품(201개사), 합성수지(137개사) 등 업종을 중심으로 교역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네온, 크립톤, 크세논 등 일부 희귀 가스에 대한 대(對) 우크라이나 수입 의존도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 밖에 러시아로의 수출이 차단되면 현지에서 부품 조달에 난항을 겪거나, 국제금융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금융기관이 퇴출되면 한국 기업이 대금 결제 지연, 중단에 따른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의 교역 규모를 떠나 얽히고설킨 글로벌 공급망에서 어떤 위험이 언제 불거질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당장은 영향이 없어 보여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유럽 등이 영향을 받으면 간접적으로 우리 측에도 (타격이) 돌아와 사실상 같은 수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뉴시스】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2019.09.03. [email protected]
이런 가운데 정부도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2020년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지난해 요소수 사태 등 숱한 공급망 위기에 단련된 만큼 선제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전날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수출·에너지·공급망·곡물 등 수급 상황과 주요 경제지표 동향을 점검해 신속히 대응하기로 했다.
또한 수출·현지기업 대상으로 수출신용보증 무감액 연장과 1개월 내 보험금 신속보상, 가지급 등 피해가 발생한 기업을 위한 무역금융 지원방안도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특히 산업부는 미국의 대(對) 러 제재 발표·시행과 동시에 전략물자관리원 내 '러시아 데스크'를 개설해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 절차 등 상세내용을 공유하고 업계 대응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미국의 러시아 대상 수출 통제에 대한 영향을 심층 분석하고 우리 측 민감 사항은 제재 시행 시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한국은 무역액(수출액+수입액)이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만큼, 또 다른 공급망 위기가 숨어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우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보다 한국과의 교역 규모가 더 큰 나라가 특정 품목에 수급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때는 수출입에서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한국 기업이 생산 거점을 둔 나라에서 코로나19로 공단이 봉쇄되는 등 상황이 벌어지거나, 해당 국가와 다른 나라 간 갈등이 우리 측에 불똥을 튀길 가능성 등도 있다.
안덕근 교수는 "공급망 문제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수입 다변화와 우리 기업 중심의 지역 공급망 강화가 근본 해결책"이라면서도 "기업, 산업별로 상황이 달라 변수는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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